처벌과 잔소리를 부드러운 설득과 작은 보상으로 행동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해질까.
특히 남자라면 화장실 소변기 바닥에 그려진 벌 모양의 그림을 보았을 것이다. 더 가까이 오세요. 더럽히지 마세요. 등 명령이나 잔소리 같은 글귀도 없이, 나는 그 벌 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소변기를 보면 더 가까이 다가가고 깨끗하게 용변을 보게 된다.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Richard Thaler) 교수의 명저 넛지Nudge는 법적 강제나 처벌 없이 선택 구조를 설계해서, 사람들이 설계자가 원하는 행동을 스스로 선택해서 바람직한 행동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특히 세일러 교수는 더 일찍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의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aman)과 같은 행동경제학의 선구자와 함께, 행동경제학 분야를 성장시킨 대가이기도 하다. 다른 경제학 분야와 거리가 먼 나도 행동경제학을 좋아하는데, 우선 심리학적 용어와 개념를 이용하여 인간의 선택 - 특히 경제적 선택을 연구하고, 기존 합리적 인간이라는 주류 경제학의 관념을 뇌과학이라는 밑바탕의 구체적인 과학적 근거를 이용하여 새롭게 보완 개선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모든 정보를 파악할 수 없고, 또한 모든 정보가 있다고 해도 최고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너무도 인간적인 행동양상이 선택과 경제에 미치는 과정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흥미로운 분야이다. 행동경제학은 경제 뿐만 아니라,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등에 거꾸로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한다.
넛지의 핵심은 환경을 설계하고, 그 환경 안에서 참가자가 자율성을 유지하여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 바닥의 벌 그림과 같이, 구체적이고 즉각적이며 왠지 벌을 맞추면 득점을 할 것 같은 보상 심리를 이용한다. 또한 소속감과 모방심리를 이용해서 ‘지역 주민의 90%가 재활용에 참여한다’는 문구로 정확히 추산은 어렵지만 나도 90%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재활용에 참여하게 하고, 전기 사용량을 줄이면 웃는 표정의 이미지가 화면에 뜨거나 환경 보상 포인트를 제공함으로써 행동을 유도한다, 그리고 지하철 계단에서 한 걸음에 몇 kcal 운동 수명이 몇 초 늘어난다 문구가 설마라는 잠시 스쳐가는 생각과 함께 걷는게 더 좋겠다 행동으로 이끈다. 이와 같은 넛지 설계는 보상이 작아도 즉각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하고 -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는게 좋다. 당연히 너무 소변이 급한 사람,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올라가야 하는 바쁜 사람 등 급격한 행동이나 변화가 필요할 때는 한계가 있지만, 서서히 작지만 꾸준한 변화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결과가 쌓여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 사회에 급히 조정하고 제제해야하는 부분도 많지만, 이제 어느정도 안정이 되고 시스템이 잡힌 영역에 대해서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말로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 여유는 우리 사회가 가져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느 정도 사람들은 넛지를 맡아서 소변기 벌그림 이외에 더 많은 넛지가 사회에 퍼져 있으면 어떨까.
넛지가 보상에 대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한다면, 전망이론은 처벌에 민감한 인간의 경제적 행동을 설명한다. 전망이론은 불확실한 위험성이 있는 환경에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고 손실을 피하려고 하는 일종의 인지편향에 의해 경제적 행동을 포함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면, 100% 확률로 5만원을 받는 게임 A와 50% 확률로 10만원을 받고 50% 확률로 0원을 받는 게임 B 중 선택을 하는 경우 게임 A를 더 선호하는 것과 같다. 천천히 생각해보면 게임 A, B 모두 수학적 기대값은 5만원인데 A는 더 확실하고, B는 50% 확률로 0원이라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A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상대 정당이 세금 인상을 해서 월 10만원을 잃게 되었다고 프레임을 설정하고, 지금 탄소를 줄이지 않으면 인류가 멸망을 한다고 홍보하는 게 더 강한 인상과 행동변화를 가져다 주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분리수거를 안 하면 과태료를 내는 정책이 분리수거를 했을 때 환경 포인트를 받는 것보다 해당한다. 전망이론은 긍정적인 넛지보다 부정적인 내용을 기반으로 빠르고 강력한 처벌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나 또한 관리에 비용이 들고 불만이 있는 개인들은 곧 편법과 회피 방법을 찾고 이에 대응하게 된다.
넛지가 사회에 가득하고, 바람직한 행동으로 이끌 수 있는 정책이 그 사회에 풍부하다면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만 같다. 하지만 넛지를 통한 보상을 계획, 설계하는 것은 대상 집단, 보상의 시기, 강도, 형평성, 그리고 보상의 방식 (현금, 바우처, 사회적 인정) 등 세밀히 조정할 것이 많다.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고, 행동경제학 또는 심리학적인 지식과 필요 시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하다.
처벌은 그에 비해 한가지만 목표하고 정하면 된다. 집을 한채 이상 사면 세금을 많이 걷거나,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면 벌금을 걷거나, 한강변에서 드론을 날리면 처벌을 하기만 하면 된다. 메시지도 단순하고, 기준에 정책을 설립하던 공직자들도 익숙하다. 규제를 일단 발표한 이후, 그 다음 규제를 통해 정책을 조정하면 된다. 그렇게 규제가 쌓여서 규제 공화국이 될 수도 있지만, 현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빠른 정책을 내기에는 규제만큼 쉽고 빠른 방법이 없다.
그리고 보상은 자원이 필요하다. 바람직한 행동변화를 위한 보상 - 인센티브, 혜택을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하고, 예산은 바로 늘릴 수 없다. 적어도 2년 전에 예산 수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하고, 논의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는 더 오랜 시간과 준비가 필요하다. 처벌은 그에 비해 당장 발표만 하면 되고, 정책 당국 입장에서는 벌금 및 과태료를 통한 보상을 얻을 수도 있는 기회이다. 정책을 집행받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처벌이지만, 정책을 수립하는 공직자 입장에서는 보상일 수 있다.
즉, 보상 기반 넛지는 처벌을 기반으로 한 규제보다 장기적 행동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형평성 논란을 피하고 행동변화 효과를 지속적으로 갖기 위해서는 세밀한 심리학과 행동경제학 기분의 높은 설계 난이도를 갖는다. 그리고 보상을 위한 물질적 자원은 예산, 즉 세금의 공정하고 효과적인 사용을 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정책 입안자 및 실행자의 보상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신뢰가 필요하다. 처벌은 현상태에 대해 빠르게 파악하여 규제안을 만들 수 있고, 예산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며, 심지어 정책 당국에게 과태료 등 보상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정부의 오랜 전통이 규제로 지속되어 왔다면, 보상에 대한 심리적 불편감과 불신이 우선 타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