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사회 처벌사회
80년대 중반생인,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체벌을 사랑의 매라 생각하며,
숙제를 안 하거나 지각을 하거나 기관의 규칙을 어기게 되면
응당 그냥 맞고 말지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친구들도 같은 반응이었고,
한순간 체벌이 - 심지어 질서와 규칙에 따라 - 그 교실과 공간의 적절한 것으로 여겨졌었다.
즉, 그 시공간에는 처벌에 대한 관대함이 존재하였다.
맞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그냥 한번 맞거나 얼차려를 받거나 훈계를 듣고 털면 모든 갈등이 해결되는 양상이 적어도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별 일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정신과 - 당시에는 정신건강의학과로 바뀌기 바로 직전이었다.
전공의 수련을 시작하였고,
정신과의 중요한 교육 내용 중 하나인 ‘무의식에 대한 이해’에 대한
강의와 수련 과정 중 기존 내가 알던 프로이트 (Sigmund Freud)의 정신분석 뿐만 아닌
융 (Carl Jung)의 분석심리라는 영역이 존재하고, 둘은 무의식을 다루지만
그 태도와 관점이 다름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수련 의국의 특징은 프로이트로 대표되는 주류인 그렇기 때문에 정통으로 여겨지는
정신분석학보다는 프로이트의 제자이자 결국 견해의 차이로 갈라지게 되는 융의 분석심리학을
중심으로 무의식과 정신치료에 대한 교육을 받고 교육분석도 받았다.
내가 정신분석에 대한 심화 전공을 하지는 않았으나,
정신과 전문의로서 가지고 있는 교양에 따라 구분하면
프로이트와 융의 가장 큰 차이는 무의식에 대한 부정적, 긍정적 관점이라고 본다.
프로이트는 트라우마 - 즉 심리적 외상에 따른 의식에서 처리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과 경험이
무의식이 되고 욕동과 함께 자아라고 하는 내가 의식하고 현실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심리적 부분과
갈등하는, 따라서 그 갈등을 찾고 중재하는 정신치료의 관점을 말하고,
융은 무의식은 인류의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집단무의식을 포함한 원형적인 관념이 나의 자아를
자극하고 결국 참다운 자기(self)가 되기 위해 잘 살펴봐야하는 보물창고이자 창의력의 원천이기
때문에 잘 살펴보고 무시하지 말아야하는 개념이다.
나의 방식대로 단순하게 정리하면,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부정적이고 나를 처벌하는 대상으로 여겼고,
융은 무의식을 긍정적이고 나를 돕는 대상으로 여겼다.
이는 두 인물의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 빈이라고 하는 독일어권에서도 가톨릭이 융성한
종교개혁의 영향을 적게 받은, 유럽의 귀족적이고 위계가 안정적인 사회에서
의사로서 유능하고 열심히 일했으나 유대인이라는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배경에서 성장하였고,
융은 종교개혁의 중심지 중에 하나인 스위스 취리히에서 자랐고, 독일어권에서 독일계통으로,
목사의 아들이지만 또한 학문적으로 유능했고, 부유한 딸과 결혼하여 풍족한 인생을 살아왔다.
사회학 고전인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서유럽의 자본주의 발전과 부를
칼뱅주의의 예정설로 설명하였는데, 융의 배경은 이와 일치하고 세속의 성공이 결국 신의 축복으로
받아들여져 더 열심히 일하고 성공하는 것에 대해 우호적인 사회적 관점을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조심스럽지만, 전통적인 중세에서 이어지는 가톨릭 문화에서는 현세보다는 내세를 중시하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라는 성경 구절 및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금융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교회의 관점이 또한
부와 성공에 대해 사회적으로 경계하고, 고리대금업 등을 통해 부정적으로 부를 얻었다는
오명을 사게 하는 부정적이고 처벌적인 관점을 가졌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살았던 사회의 배경이라 여겨진다.
유발 하라리 교수가 지은 사피엔스 책에서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할 때 지식이 많아지고 확장되는 그 근거에 경제적인 확장이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중세에는 빚을 지지 않아 경제가 확장하지 않고, 사회에서든 대학에서든 질문은 사제가 성경의 지식에 따라
대답하고, 새로운 세상을 확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식의 확장이 일어나지 않았다.
근대로 이행하면서, 새로운 무역로를 개척하기 위해 선박을 개량하고, 별자리와 항해술을 익히고, 지리를 넓히는
지식의 확장은 빚과 자본의 역할이 크며, 이 성장이 선순환을 이루며 지식의 확장과 과학혁명을 이룩했다는 해설이다.
나는 이 선순환과 성장이 현재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고, 유효하다고 믿으며,
그 기저에는 보상과 칭찬 그리고 이득이 있어, 그로 인하여 사람이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보상과 칭찬, 그리고 이득이 없어지는 사회는 사람이 움직이는 동력도 없어지고, 지식과 과학의
확장에도 제한이 생긴다고 믿는다.
기본적인 욕구에 닿아있는 무의식에 대한 관점이 두 연구자에서 다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사회문화에 밑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두 무의식의 개척자는 각기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음을 - 두 사람의 뇌가 성장하면서 다른 두 환경에 있으면서 다른 가치 체계를
가질 수 밖에 없음을 나는 최근에 깨닫게 되었다.
부와 세속에 대한 긍정적이고 격려, 칭찬하는 사회와, 부정적이고 처벌하려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뇌와 가치체계,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정치와 법의
결정들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그리고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자세와 변화를 받아들이면
좋을지에 대해 여기에서 여러가지 최근의 실제 예들과 과거의 역사적 사례들을 함께 살펴보며
논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