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공립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원을 다니고, 의과대학을 다니는 동안
질문은 지’양’하는 문제가 있었다.
일부는 정말 수업을 열심히 듣는 친구들은
교수님이 인사차 의례 얘기하고 수업 종료를 위해 말씀하신다고
내가 받아들이는
질문 있어? 라는 작별 인사에
손을 번쩍 들며 다른 친구들의 쉬는 시간과 공강 시간을 뺏는
눈총을 받게 되었다. 누구도 모범적인 내 친구를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그 교실의 암묵적인 룰은 빨리 수업을 끝내고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자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었다.
즉, 수업에서 얻는 지식과 그에 따른 즐거움보다
수업이 끝났다는 사실과 쉬는 시간이 더 큰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전공의 수련을 받으면서는,
조금 더 전문적이고 실제적인 직업 훈련을 받으면서
그에 맞게 더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질문을 멋지게 하는 경우에는 허락 되었지만,
단순하고 엉뚱한 질문에 대해서는 업무시간과 퇴근시간을 빼앗는 눈치 없는 사람이라는
명성을 가져다 주기 좋은 분위기였다.
30년간의 나의 질문에 대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나의 태도는
이와 같이 변명할 수 있겠다.
이후 질문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되었는데,
군의관을 대체하는 전문연구요원 병역을 위해 카이스트에 진학하게 되었다.
먼저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것에 적응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고,
또한 자유롭게 - 아주 단순한 것일지라도 질문하는 것이 아주 권장되는 것이었다.
학생 뿐만 아니라 교수님도, 다른 교수님의 특강이 있을 때 - 왜 그 단백질은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단순하지만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을
편하고 자유롭게 하는 분위기였다.
이는 카이스트 뿐만 아니라 외국의 정신의학, 뇌과학, 분자생물학, 유전학 등
모든 학회에서 동일하게 관찰되는 현상이었으며,
내가 겪었던 질문에 소극적인 사회가 오히려 우물 안이었고,
자유롭게 질문하는 학회와 교실이 더 학문 세계에서는 보편적임을 깨달았다.
한번은 미국에서 100명 이내의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 1주일 가량
지속적으로 연구를 공유하고 강의를 듣는 심포지엄에 참여한 적이있었는데,
한 대학원생이 거의 매시간마다 강의 시간에 질문을 하는 일이 있었다.
단순한 질문도 있었고, 연구와 관련된 질문도 있었고,
발표자의 연구 보다는 자신의 연구와 관련이 있는 질문도 있었다.
나중에는 또 저에요(it’s me again)라고 말정도로 다들 그 학생의 이름과 얼굴을
알게 되었다. 심포지엄이 마무리 될 때쯤 그 학생은 최고의 참가자상 - 질문을
가장 많이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 을 받았고, 나도 그 학생이 당연히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를 마치고 나서, 다시 병원에 돌아오고
나는 더 쉽게 질문하고, 더 단순한 걸 질문할 수 있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물론 다시 소극적인 환경으로 회귀하면서 눈치를 보기는 하지만,
쑥쓰러운 건 잠시 뿐이고, 질문하지 않고 넘어갔을 때 잃게되는 기회와 지식에
대해 더 높은 가치를 주는 것으로 내 계산기를 수정하였다.
나도 더 빨리 30년이라는 세월이 다 가기 전에 더 일찍,
아니 아주 어릴 때부터 더 많이 질문하고, 그 순간에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면
내 질문이 더 편해지고, 더 다양해지고, 더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
미래 시대에는 결과와 답변을 잘 만드는 사람보다는
질문을 잘 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