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유연하게, 삶은 단단하게

by 미네르바의 올빼미

"올해는 꽃길만 걸으세요~!"


한때 카*오톡 메시지로 지인들에게 건넸던 새해 인사말이다.

돌아보면 얼마나 허황되고 무책임한 말이었는지, 지금은 한없이 부끄럽다.

아무리 ‘긍정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보아도, 그 말속에는 삶에 대한 깊이 없는 가벼움이 숨어 있었다.

어찌 인생이 꽃길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기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기쁨의 그림자처럼, 곧이어 두 차례의 폭풍우가 지나갔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 뒤에는 늘 시련이 따른다는 말이 떠올랐다.

인간의 마음이란 참 간사해서, 기쁠 땐 그 순간이 영원할 것 같다가도

뜻하지 않은 고난 앞에서는 금세 무너져 내렸다.

예정대로라면 여유 있게 글을 써두고, 찬찬히 퇴고하며 예약 글을 차근차근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유롭다’고 느꼈던 시간은 어느새 처리해야 할 일들에 잠식되었고,

브런치를 시작하며 다짐했던 ‘글 쓰는 일상’은,

고작 3주도 채 되지 않아 신기루처럼 사라진 기분이었다.





君子 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음식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주거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일을 성실하게 하고 말을 삼가며, 도를 지닌 사람을 가까이하여 자신을 바르게 한다.
가히 호학이라 이를 만하다." —『논어』_현대지성클래식 23_소준섭 옮김



흔들리지 않으려 온 마음을 다해 일상을 지켜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부모 상담하고, 동료들과 협업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붙잡으며 폭풍우를 견딘 뒤,

나는 조금 다르게 삶을 바라볼 수 있었다.



어려움은 때때로,

내가 얼마나 고집스러웠는지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방식, 계획했던 이상적인 일상—

그 모든 것이 흔들릴 때 비로소,

나는 배우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 묻게 된다.

‘무엇이 옳은가’보다,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군자호학(君子好學).

군자의 배움은 배를 불리거나, 안락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도를 지닌 사람을 찾아 스스로를 바르게 하고,

일에 민첩하고, 말을 삼가며 살아가는 것.

그 길 위에는 고통이 따르고,

반드시 좋은 것을 얻는 보상도 없다.

배우면 배울수록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순간, 오히려

진정한 도가 무엇인지 더 알 수 없게 된다.



공자는 군자란 그런 사람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단단해지기보다 유연해지는 사람.

정답을 고집하기보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사람.


배움으로 세상의 조건을 바꾸긴 어렵다.

그러나 배움은 나 자신을 바꾼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겸허한 인정에서 출발한다.

그 유연함이 나를 새롭게 하고,

내 삶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만든다.


Agnes Obel - Famili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