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고 싶은 모습

논어가 내게 남긴 것.

by 미네르바의 올빼미

어릴 적 나는 ‘절대적인 지(知)’가 있다고 믿었다.
더 많이 알면, 내가 모르는 것이 줄어들 거라 생각했다.
막연히 아는 것이 많아지면 어느 순간, 어느 경지에 도달한 초월적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착각.
이 어리석은 믿음이 어린 시절의 내가 책을 계속 읽게 만든 이유였다.


하지만 아는 것이 많다고 해서
지혜로워지는 것도,
욕망을 다스리는 것도,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도 함께 많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욕구와 욕망이 많은 사람이 아는 것이 많을 때,
그 ‘앎’은 삶과 분리되기도 하고,
자신을 포장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이
얼마나 모순되고 위선적인지를 자각하게 된다.


결국 갈림길에 선다.
과거의 나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나를 인정할 용기를 가질 것인가?



아는 것이 늘어나도
여전히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이 같은 눈으로만 보이는 것들이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을 떠나 여행을 하며 진정으로 자기 별과 장미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식이 아닌 지혜란,
자신의 배움을 환경과 관계 속에서 꿰뚫고,
그 책임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용기다.


어린 왕자뿐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나에게 영감을 준 인물들 또한 그러했다.

그레고리, 윌, 나루토, 샘 와이즈 갬지, 윤동주…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많은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이혼했어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어요.”
“실패를 겪었어요.”

그들은 그 마음을 안고도 말하고,
하루를 살아내며,
타인과 소통하며 자신을 가꾸려 한다.


아집에 사로잡히고,
사욕에 흔들리고,
불의를 외면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사람이기에.


하지만 그 상태에 머무를 수 없는 마음—
나는 그 마음이 귀하다.

타인을 판단하거나 평가하려 들기보다는 그가 가진 사연과 상처를 먼저 떠올리는 마음.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더 자주 흔들리는 그런 마음.


그리고 진짜 용기란, 모른 채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하고, 후회했던 과거의 나를 끌어안고,
그럼에도 오늘을 선택하는 것.


그렇다.
모든 걸 알아야 두렵지 않은 게 아니라,
두려움을 인정하고도 나아가는 것이 용기다.


지(知)를 지키려 노력하되,
완벽한 앎에 얽매이지 말고,
인(仁)을 품되,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며,
용(勇)을 내되,
두려움에 짓눌리지 말라.
지금 이대로,
당신은 충분히 괜찮다.
이제야,
오롯이 인생이 보인다.


子曰: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자왈 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

공자가 말했다. “지혜로운 자는 미혹되지 않고, 인덕仁德한 자는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논어_현대지성클래식23>, 공자 지음, 소준섭 옮김
이전 09화화를 넘지 않는 힘, 함께 만드는 인(仁)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