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 이 물건이 내게 말을 건다면

by 미네르바의 올빼미

우리 집 꼬맹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면 어느새 10시가 된다.

이젠 아침 햇살도 따갑고, 땀이 비 오듯 흘러 견디기 힘들다.

다시 침대로 돌아갈 수 없어 아쉽고, 차량 운행이 다시 시작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누나, 왜 요즘 아는 척 안 해요?"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다.

괴한이 따라온 줄 알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주변엔 아무도 없다.

중문을 열려는 찰나—


"누나, 여기예요."


몸이 굳었다. 두려움이 밀려와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정신병 증상 중에 환청이 많다던데, 나 병원 가야 하나?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저, 유모차예요. 요즘 누나가 저를 모른 척하셔서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날이 너무 더워서... 더위를 먹었나 보다."


며칠 후, 온 가족이 함께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모차를 가져가야 하나?"

"서원이 이제 잘 걷잖아. 굳이 필요 없지."


남편은 현관문을 열고 얼른 나오라며 손짓했다.


"누나, 저도 데려가요. 제가 가면 서원이를 더 안전하게 데리고 다닐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돌렸다.


"자기야, 지금 무슨 소리 안 들려?"

"무슨 소리? 빨리 나와."


남편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그쳤다.


"누가 말을 걸었어."

"뭐래~."


현관을 나서며 문을 닫았다.


우당탕!

전실에서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재활용품들이 떨어졌나? 그러게, 저것부터 치우자니까."


나는 다시 문을 열었다.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던 재활용품들이 전실 가득 흩어져 있었다.

재빨리 주워 담으며, 또 들렸다.


"누나, 저도 같이 가요. 요즘 햇살 장난 아니잖아요. 서원이 덥다고 칭얼대면 어쩌려고요."


나는 남편을 보며 말했다.


"봐봐. 누가 또 나한테 말을 걸었어."


남편은 정색하며 말했다.


"농담이 하나도 안 웃겨."


그 표정을 보자 식은땀이 났다.


"꺅~ 귀신인가 봐. 아냐, 나... 올여름이 너무 덥나 봐."

"그러네."


남편은 이상한 장면을 본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소리 내 웃었다.

서운한 감정이 밀려왔다. 겁이 나서 말했는데 그는 그냥 웃어넘긴다.


"웃겨?"

"응. 정말 웃겨."


나는 심각한데, 남편은 장난처럼 받아들인다. 그는 본인이 보고 듣지 못한 일에 대해선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의심이 들면, 공감은 증발해 버린다.


"내가 바보지."

"왜 또 그래."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남편은 무심히 달래려 했다.


"누나~ 싸우지 마세요. 저는 믿을 만한 유모차예요. 제가 언제 누나를 실망하게 한 적 있나요?"


이쯤 되면 확실했다. 환청이다.

근데, 묘하게 따뜻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유일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남편도 모르는 내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알아듣기 좋은 말만 할까.

나는 이런저런 생각 끝에 유모차를 끌고 나갔다.



육아용품 박람회장 내는 넓고, 사람들도 많았다.

유모차를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여기 친구들이 많네요?"


또 들렸다. 나는 애써 못 들은 척하며 걸었다.

이 목소리에 반응했다가는 정말 정신병원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젠 나도 모른 척하는 법을 배워야 할까.


신기한 육아용품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예전과 달랐다.

예전엔 손수건 하나라도 건네주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샘플을 넣은 전단 하나 없는 휑한 인심.

사람은 많았지만, 구경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걷기엔 불편함이 없었다.


문득 줄이 길게 늘어진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피서 겸 꼬맹이 대근육,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될 만한 걸 볼 수 있을까 싶어 줄에 섰다.


"자, 이렇게 아이의 울음소리를 분석해서 양육자가 이전보다 정확하게 상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AI가 육아에 접목된 시대.

울음 예측, 상담 기능까지 탑재된 육아 로봇. 100일의 기적은 믿지 않지만, 몸으로 대화하며 만들어가던 엄마와 아기의 세계를 기계가 대신한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서늘해졌다.

그럼 나는, 뭘까.

나는 한숨을 쉬며 부스를 빠져나왔다.

그때 또 들렸다.


"언니~ 저 좀 보고 가요~ 그 유모차는 좀 아픈 거 같던데!"


무심코 유모차를 멈추려다, 또 목소리가 나올까 두려워 그대로 걷기만 했다.


"에엑! 너 지금 뭐라는 거야?!"


며칠 전부터 내게 말을 걸던 유모차의 목소리가 한껏 격앙돼 대답했다.

이번엔, 대놓고 발끈하기까지.

...

난 미친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