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감기라는 이유로 넘겨버리는 사람들에게
낙엽이 제법 빠르게 굴러가는 걸 보았습니다. 지친 제 발걸음이 느렸던 것인지, 저랑 비슷한 속도에 바람이 앞으로 거세게 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 발걸음도 바람이 밀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자유로워 보이는 낙엽의 모습이 제 상황과 비슷해서였을까요. 제 자신이 너무 자유롭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의 의미는 다소 진중하고 무거움을 말합니다. 너무 큰 자유가 생기면 가야 할 방향을 헤매게 됩니다. 낙엽은 자유로워 보였지만, 갈 곳을 잃은 듯합니다. 어디로 가려고 한 것일까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 시기에 문득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떻게 걸어가는지 궁금했습니다.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니, 조금만 더 버티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각박한 세상으로 변해갈수록, 누군가의 따뜻한 품 속에 안겨질 때도 진심이 맞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인간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을 때마다 누군가를 믿는 게 무서웠습니다. 외롭고 우울했습니다. 우울증인줄도 모르고 작은 원룸에서 불면증과 싸워야 했습니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몰라 그 누구와도 만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앞에선 애써 행복한 척했고, 친구들 앞에선 뇌가 웃으라고 명령할 때에만 웃었습니다. 모두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점점 나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작은 원룸은 쓰레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불면증과 싸우다 못해 잠이 사라지고, 일주일 간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돼서야 병원을 갔습니다.
어딜 가야 할지 몰라 정신과를 갔습니다. 분명 의사 선생님이었지만 로봇과 대화를 마치고 약을 처방받은 뒤 병원을 나왔습니다. 선생님의 눈은 충혈돼 있고, 제 증상을 곧바로 키보드로 치는 모습이 마치 로봇 같았습니다. 제 아픔에 관심이 있긴 한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울증이라고, 다들 흔한 증상이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증상을 남들이 흔하게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니, 모두 이 악물고 버티며 살지만 나 혼자 약한 존재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수면제를 처방 받았습니다.
불면증이 언제 있었냐는 듯 바로 코를 골며 잠들었지만, 다음 날 일상생활에 지장이 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몽롱한 게 깨지 않으니, 하루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순간 그 누구도 나를 이 동굴 속에서 꺼내주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내 인생을 다른 이가 해결해 주길 바란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지, 정말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 것인지 찾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은 하나같이 방을 청소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합니다. 나아가 가벼운 산책과 노래 듣기,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보는 것을 실천하라고 합니다. 책이 말하는 대로 곧장 실천하는 것은 사실 어렵습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걸 쉽게 실천할 수 있었다면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은 건강하지 않았을까요?
쓰레기 버리러 밖을 나가는 데까지 며칠이 걸렸습니다. 그 며칠 사이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습니다. 집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고, 소중한 친구와 약속도 잡았습니다. 집 앞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게 전부였지만, 제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함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말하지 못한 상처와 아픔을 이야기한 단 한 명의 친구가 저를 살렸습니다. 소중한 친구들이 많았지만, 제 아픔을 공유한다는 것의 두려움이 컸기에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말해야 합니다. 세상은 그 누구도 믿지 말라고 말하지만, 마음이 가는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공유해야 합니다. 힘들다고 징징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태를 솔직히 얘기하고 극복해 나가는 중임을 분명히 전달하여 누군가에게 털어두어야 합니다. 저는 수면제가 아니라, 제 아픈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정신과를 가지 않고 상담학과를 갔었다면 달랐을까요? 저를 누구보다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공감과 위로까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묵묵히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는 사람 한 명이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세상을 힘차게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소 허무하게 느껴지는 이야기 같아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결국 이 시간은 잊지 말아야 할 인생의 값진 경험이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후에 생긴 힘든 일들은 아팠던 시기를 벗 삼아 당당하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당차게 일어나 더 한 일들이 몰아닥쳐도 이겨내리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저만의 해결 방법이 생긴 것입니다.
우울증이 감기 증상처럼 온다지만, 각자의 아픔은 그 누구도 아는 체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이해와 공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누구도 극복의 선 위로 올라오도록 해줄 수 없으며, 오로지 자신의 생각이 바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바쁘게 사는 사람에게 우울함은 너무 친숙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분명한 건 외로움이 싫어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낙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시기를 우울증과, 우울증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시기로 충분히 지나 보냈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란 건 너무 잘 알았지만, 야속한 하루하루의 시간이 계속 괴롭혔습니다.
그렇기에 빙글빙글 돌아가더라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정진하고자 다짐했습니다. 하루를 이겨내기 위한 힘을 갖기 위해서는, 정신적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다 지나고 와보니 빙글빙글 돌아가는 인생은 괜찮습니다. 과정에서 배우는 게 참 많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식었다고 모두가 이별이라 하지 않고, 권태기라는 시기로 정의하듯이, 우리 인생에도 분명 이별의 종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권태기에서 벗어나 빙글빙글 돌아가는 과정 속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찾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