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으로 말하는 그림책

정진호 작가 그림책 〈여우 요괴〉를 읽고

by 포롱


‘요물’이라는 말 때문에 남편과 크게 다툰 적이 있다.
남편은 “매력적이라는 뜻이었다”고 했지만, 그당시 나는 어떻게 아내에게 그런 말을 쓸 수 있냐고 완전 흥분했다. 그 낱말은 누군가를 홀리고, 결국 해치는 존재, 즉 관계를 파탄시키는 부정적인 존재로만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정진호 작가의 그림책 ‘여우 요괴’를 처음 보았을 때, 솔직히 주저했다. 새빨간 표지도, ‘요괴’라는 단어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어릴 적 전설 속 여우는 늘 인간을 속이고 간을 빼먹는 존재였고, 나는 그 이야기를 무서워하며 자란 아이였으니까.

그런데 책을 펼치고 나서 알게 되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무서움이 어떻게 다른 감정으로 바뀌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걸 말이다.

이 그림책은 거의 흑백이다.
색이라고는 빨강 하나뿐이다. 처음 그 빨강은 여우 요괴의 눈과 이빨로 등장한다. 위협적이고 낯설다. ‘아, 역시 무서운 이야기구나’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된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빨강이 조금씩 달라 보인다. 꽃이 되고, 혼례복이 되고, 끝내는 눈물이 된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됐다. 빨강은 내게 감정의 색깔처럼 다가왔다.

여우 요괴는 크고, 김생원은 작다. 그림만 봐도 누가 강자인지 분명하다. 그런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늘 끌려가는 쪽은 여우다. 김생원은 도망치지 않는다. 대신 말한다. 내 간을 더 키워 먹으라고. 그러면서 요괴를 공동묘지와 호랑이 소굴 등 위험한 곳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마침내는 “혼인합시다”라는 말을 던진다. 그 말은 낭만적이라기보다 절박하게 느껴졌다. 살기 위해 내놓은 말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가 요괴의 세계를 조금씩 흔든다. 늘 잡아먹기만 하던 존재가, 처음으로 누군가의 손을 붙잡는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무서운 서사에서 조금 벗어난다. 사랑 이야기로 갑자기 바뀐다기보다는, 공포가 천천히 힘을 잃어간다고 보면 맞다.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길게 설명되지 않는다. 봄에는 꽃놀이, 여름에는 계곡, 가을엔 단풍, 겨울엔 눈길. 이 단순한 나열이 이상하게 좋았다. 김생원 등에 폭 업힌 수줍은 각시. 나란히 걷고 있는 부부의 그림을 한참을 보고 또 봤다. 사랑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이런 시간들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말이 줄어들고, 설명도 사라지고, 그냥 함께 있는 시간이 쌓인다. 그래서 이 ‘사랑’ 이야기에 동의하게 된다. 이건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부의 시간과 닮아 있다.

그렇게 한 해는 다섯해가 되고, 다섯해는 쉰해가 된다.

늙어 죽음을 앞둔 김생원, "여보 이제 내 간을 먹고 소원을 이루시오."
여우요괴는 결국 김생원의 간을 먹는다.
순간 “그럼 그렇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역시 요괴구나.

그런데 곧이어 나오는 반전 결말.

요괴의 소원은 더 오래 사는 것도, 더 강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김생원 옆에 누워, 다시는 깨지 않는 것이었다.


그제야 알겠다. 이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건 배신도, 교훈도 아니였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함께 산다는 게 무엇인지 묻고 있었던 거다.
사랑은 서로를 살리는 걸까?

아니면 끝까지 자기 안으로 끌어당기는 걸까?


책을 덮고 나서 문득 남편의 ‘요물’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그 말에 그렇게 화가 났던 이유는, 그 단어가 사랑보다 공포를 먼저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요괴’ ‘요물’라는 말 안에도 다른 얼굴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하지 못해서 무서웠던 존재, 가까이 가보지 않아서 오해했던 존재 말이다. 누군가를 알고 이해하고 나면 사랑이 시작된다.

정진호 작가의 '여우 요괴'는 빨강의 힘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끌어간다.
눈의 빨강으로 시작해, 꽃의 빨강을 지나, 눈물의 빨강으로 끝난다.
그 빨강은 요괴의 본성이 아니라, 끝내 사라지지 않은 감정의 흔적처럼 보인다.

그래서 여우 요괴는 섬뜩한 표지로 시작하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한 여운

‘사랑’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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