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가족들에게 쓰는 편지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 달력을 버리려다 새삼 아쉬워서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참 많은 장면이 담겼다.
우리 가족의 시간들이 빼곡했고
요란하지 않아도 따뜻했다.
큰딸아.
아침마다 벌떡 일어나 출근하는 너의 뒷모습을
엄마는 몰래 오래 바라본다.
야근도 잦고, 도시락을 챙겨 가는 날도 많지만
네가 선택한 하루를 살아내는 모습이
엄마에겐 큰 위로다.
노트북을 두고 출근해 SOS를 치며 황당해하는 모습까지도
여전히 너답다 싶어 웃음이 난다.
험한 세상 속으로 한 발 내딛은 너를
엄마는 많이 응원하고 있다.
작은딸.
너는 늘 벼랑 끝 전술을 펼친다.
겁많은 엄마는 가슴 졸이지만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너를 보며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의 다른 얼굴을 배운다.
느긋함이 결국 일을 좋게 만들기도 한다는 걸
사랑니 사건으로도 증명해 보였지.
누워있던 사랑니가 벌떡 일어설 줄 어찌 알았겠니.
치과 안간다고 잔소리하며
조급해 하던 엄마에게
너는 참 많은 걸 가르쳐 주는 딸이다.
올해도 너 속도대로 가보렴.
여보.
30년을 성실하게 일해 온 당신이
뜻을 펼칠 수 있는 자리에 간 것은
참 축하할 일이야.
당신의 노력과 진심, 그 과정이 인정받은 것 같아서
덩달아 나도 좋더라.
하지만 스트레스 많이 받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나봐.
그래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함께 걸어주기라고 생각했어.
매일 저녁밥 일찍 먹고 "나가자!"를 외쳤지.
그 시간들이 지난해 내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야.
말없이 걸어도 좋았고,
속내를 들어주는 친구가 돼서 기뻤어.
이젠 묻지 않아도 이야기해 주는 당신을 보며
우리가 참 오래 함께 왔구나 싶었지.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한마디 남기고 싶다.
학기 중 일본 연수를 떠났던 봄날의 용기,
몽골의 바람을 맞으며 걸었던 여름의 시간,
그리고 갱년기의 오르락내리락 하는 늦가을의 마음까지.
이 또한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해주고 싶다.
온 가족이 함께한 순간들도 잊을 수 없다.
함께 걸었던 목포의 가을,
백년한옥에서 나누던 이야기,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흔들던 콘서트 응원봉.
노래방을 제일 싫어하던 남편이
조용필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신나 있던 모습은
올해 최고의 장면이었다.
'영원한 오빠' 그의 노래들을 들으며
딸들과 우리의 10대, 20대, 30대를 함께 여행했다.
탈모약 먹으라는 쪽지가 사방 붙어있는 집에
창고를 고치느라 두드리던 아빠의 망치질 소리,
맨날 낭독 한다고 문 걸어잠그는 엄마의 시간도
모두 우리 집다운 풍경이었다.
큰딸은 안방 엄마아빠 침대로,
작은딸은 언니 방으로,
엄마아빠는 두딸을 졸졸 따라 다녔던
1년이었다.
네식구가 여전히 허술하고 빈틈 많았지만
365일을 가득 채웠다.
각자의 자리에서 잘 걸었다.
올해도
요란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렇게만 가자.
PS)딸들아, 올해 엄마가 꼭 부탁하나 하고 싶다.
이제 슬슬 사랑도 해봐야 하지 않겠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