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한 봄꽃이어라

교사낭독 동아리 '마음소리 2기'를 시작하며

by 포롱

모니터를 끄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새벽 만남의 설렘과 긴장이 아직 가시지 않았습니다.


업무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3월, 제정신을 챙기기도 힘든 이때에 제가 또 낭독동아리를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 모든 일은 최근 읽고 있던 ‘타이탄의 도구들’ 때문입니다.

책에는 ‘승리하는 아침을 만드는 다섯 가지 의식’이 나옵니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몸을 깨우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마음을 가다듬고, 그것을 기록하는 일. 이 구절에 왜 저는 선생님들과 함께 낭독하는 그림이 그려졌을까요.

다음 분기까지는 참으라고 이성이 말립니다. 그런데 또 다른 타이탄이 자꾸 등을 떠밉니다. 두려움은 늘 용기와 함께 온다고, 그러니 한번 뛰어들어 보라고요.

마침 자경노(자기 계발 교사 커뮤니티) 단체 카톡방에 낭독동아리를 운영할 사람이 없다는 메시지가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한참 망설였습니다. 제가 일이 느리고 멀티태스킹에 약한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아니까요. 분명 허덕이며 종종거리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날 저녁 ‘타이탄의 도구들’ 책장을 넘기다 결심했습니다. 그냥 하자! 마음을 움직인 대목은 세계 최고의 인터뷰어의 말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옆에 오래 머물러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창하고 독특한 것을 주려고 애쓰지 말고, 그저 따뜻하고 좋은 것을 건네라고. 제가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따뜻한 것, 그저 좋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낭독’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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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선생님들이 하나둘 화면에 등장합니다. 문득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이분들의 배움의 열정을 내가 채워 줄 수 있을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텐데 어쩌지.

그런데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처음 낭독을 배우기 시작하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저 함께 소리 내어 책을 읽고 싶다는 단순한 도전, 그리고 낭독의 맛을 조금 알고 싶다는 작은 욕심.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저는 늘 말합니다. 제가 낭독 전문가라기보다는 그 세계를 조금 먼저 경험한 사람일 뿐이라고요. 그 세계가 꽤 매력적이니 한 번 기웃거려 보고 한 발쯤 담가 보라고요.


오늘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이분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지금은 어떤 꿈을 그리고 있을까. 혹시 힘든 날이 있다면 그 마음을 잠시 들려주실까. 낭독으로 그 자리에 함께 있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가는 교사는 참 외로운 직업입니다. 미성숙한 존재들의 되바라짐과 공격을 성숙한 어른이 이해하고 받아 주며 교육해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도 연약한 감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지치고 마음이 아플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교사들은 서로의 마음을 금세 알아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가 겪는 시간이 서로 닮아 있다는 것을요.

책 속 한 문장에 울컥해 선생님의 목소리가 떨릴 때 저도 가슴 한구석이 저려왔습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이 목소리를 통해 전달될 때 선생님의 외로움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벌써 소리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선들을 서로에게 이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우리는 낭독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의 옆자리에 잠시 앉아 있기 위해서 말입니다.


한 달 만에 다시 ‘나에게, 낭독’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 책으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요. 책 표지를 한참 바라봅니다. 교복 입은 소녀가 책을 들고 있네요. 열일곱의 우리는 어땠나요. 독서하며 사색에 잠기는 그 순간이 참 행복하지는 않았나요.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다시 책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옛날에는 수줍어서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이제는 소리로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월 사이를 지나 우리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습니다. 몸을 지나 마음에서 올라오는 소리, 우리는 그것을 ‘낭독’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3개월의 낭독 여정에서 순수하고 꿈 많던 열일곱의 ‘나’를 다시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도, 엄마도, 딸도 아닌 이름 세 글자, 오롯이 나만의 소리로 다시 충만해지시기를 바랍니다. 그 옆자리에 제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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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오후엔 햇살을 받으며 걸었습니다. 봄은 쉽게 오지 않나 봅니다. 바람이 여전히 찹니다. 늘 걷던 길을 살짝 벗어났습니다. 어머, 이 꽃샘추위에 작디작은 봄꽃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습니다. 황량한 들판에 좀 외로워 보입니다. 찬바람이 물러나면 곧 다른 꽃들도 울긋불긋 함께 하겠지요. 외롭겠다 싶어 한참 바라보다 한 발짝 옮겼습니다. 뒤편에 같은 꽃들이 소복했습니다.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봄날의 이 풍경을, 그리고 이 감동을 마음소리 2기 선생님들께 가장 먼저 선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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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 다음 주 일요일 새벽에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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