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산친구들에게
친구야.
지하철역 앞에서 손을 흔드는 너희들을 보는 순간, 이유 없이 뭉클했다.
이 감정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오늘은, 분명 고마움이었다.
“보고 싶다.”
“산에 가자.”
이 한마디에 하루를 고스란히 비워주는 사람들이 몇 있을까.
오늘 우리는 시산제를 위해 만났다.
산신님께 ‘안전 산행’을 비는 등산객들의 첫 행사.
배낭에 각자의 정성이 담겼다.
많이 가져왔든, 적게 가져왔든
그걸로 서로를 가늠하지 않는다.
저마다 준비해 온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야, 너 엉덩이 더 빵빵해졌다.”
“이게 죽고 싶냐?!!”
놀리고, 웃고, 따지고, 금세 풀어지고.
수준도 딱 초등학생, 그래서 더 즐겁다.
산아래까지 가득한 봄내음.
가벼워진 옷차림 사이로 웃음소리 부드럽게 흩어진다.
어깨뼈에 금이 가 깁스한 친구,
등산복과 등산화를 쫙 갖춰 입고 나타나서는
족발만 전해주고 가겠단다.
“쉬운 길로 갈 거니까, 같이 가자.”
안 잡고 보냈으면 삐쳤을 게 분명하다.
십수 년을 함께 걸어온 산동무들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순간이 많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을 맞추고, 숨을 맞춘다.
연주대가 보이는 그 자리,
우리만 아는 시산제 명당을 향해 오르는 길.
또 서로를 놀려대기 시작한다.
“쟤 앞장 세우지 마라. 그때 헤매다 우리 죽을 뻔했잖아.”
이 한마디에 또 옥신각신.
똑같은 이야기인데도 우리는 매번 깔깔거린다.
한때는 정상에 꼭 올라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은 아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건 꼭대기가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길이다.
길 위에서 나누는 이야기,
나눠 먹는 과일 한 조각,
함께 보내는 시간들,
그것들이 더 소중하다.
한동안 아팠다는 친구가 숨을 헐떡인다.
“잠깐 쉬어갈까?”
그 말 한마디에 자연스럽게 멈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러앉고,
따뜻한 커피가 돌고, 비스킷이 뜯어진다.
대화는 이리저리 튄다.
주식에서 시작해 전쟁을 거쳐
건강 이야기로 끝난다.
결론은 늘 같다.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걸어야 한다는 것,
결국 더 자주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 걸음 날짜를 잡는다.
같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삶의 궤적이 닮아간다는 뜻이고,
같이 아프다는 건
같이 느려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다.
“속도 줄여줘.”
앞에서 내달리는 친구
불러 세운다.
깁스한 친구 가운데 두고
앞뒤로 호위하듯 걷는다.
“평탄한 길만 간다더니 또 속였네!”
가파른 내리막에 살금살금.
오를 만큼 오르고, 걸을 만큼 걷는다.
올해 첫 진달래를 봤다.
요 며칠 찬바람이 불어 잔뜩 웅크렸다.
산을 온통 붉게 물들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또 그 사이를
어떤 이야기로 채울까.
산길은 참 인생 같다.
오르막도 있고, 미끄러운 내리막도 있고,
끝날 것 같지 않은 능선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이 걷고 있으면 그 길이 그렇게 힘들지 않다.
말없이 걸어도 편한 사람들,
쓸데없는 농담으로 숨을 돌리게 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속도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
너희가 있어서 참 좋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걷겠지.
어떤 날은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을 테고,
어떤 날은 발밑만 보며 묵묵히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다.
어차피 인생이란 건 그렇게 걷는 거니까.
나중에 더 나이가 들어
숨이 차고, 걸음 느려지더라도,
그때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같이 걸을까?”
오늘 산신님께 올렸던 음식들,
결국 우리 뱃속으로 들어갔지만
이 정도면
산신님도 아셨을 거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걷고 있다는 게
이미 가장 큰 제물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