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주말부부
한밤중에 절로 눈이 떠졌다. 목이 따끔하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3월 내내 괴롭히던 목감기가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머리맡 스탠드를 켜고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다. 예전 같았으면 억지로라도 다시 잠을 청했을 것이다. 옆사람이 깰까 조심조심, 숨을 죽이다 보면 어느새 다시 잠이 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키는 대로 한다. 자유라는 게 이런 건가. 다리를 쭉 뻗고, 발가락에 힘을 줘 보고, 아기처럼 손을 잼잼거린다. 손가락이 부드러운 걸 보니 오늘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두둑, 두둑. 어둠을 가르며 떨어지는 소리에 창문을 열었다. 봄비다. 흙냄새가 집 안으로 훅 밀려 들어왔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뿐인 도시에서 이런 촌스럽고도 정겨운 내음을 맡게 될 줄은 몰랐다. 고개를 내밀고서야 알았다. 우리 집이 화단 바로 위에 있다는 것을. 한동안 눈을 감고 그 냄새를 깊이 들이마셨다. 오래된 친구를 모처럼 만난 것처럼, 낯설지 않게 포근한 감각이었다.
아침을 거른 채 출근길에 나섰다. 비가 그친 뒤의 하늘이 궁금했고, 밤새 벚꽃이 얼마나 폈을지 마음이 조급했다. 꼬르륵, 빈속이 신호를 보냈지만 한 끼쯤 거르는 건 아무 일도 아니다. 내키는 대로 산다는 것, 생각보다 황홀하다. 천변을 천천히 걸으며 혼자 걷는 시간을 만끽해 본다. 사람들은 함께할 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다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맞춰짐’과 ‘의존’이 있었는지는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비로소 보인다. 나는 생각보다 누군가의 리듬에 기대 살아온 사람이었다.
며칠 사이 개나리가 활짝 폈다. 벚꽃도 만개했다. 봄비에 피지도 못하고 떨어진 꽃잎들. 한참을 내려다보다 문득 반가운 것을 발견했다. 쑥이다. 보송보송 어린 순이 봄비에 흠뻑 젖었다. “쑥쑥 자라라.” 중얼거리다 이내 생각을 바꾼다. 아니지, 주말까지는 조금만 참아라.
매해 봄이면 쑥을 뜯는 남편이 올해는 옆에 없다. 시기를 놓치면 쑥은 질기고 맛이 없다. 올해 쑥버무리는 글렀다. “먹고 싶으면 네가 뜯어.” 내 머리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진다. 설거지가 쌓일 때, 빨래가 널브러져 있을 때, 두부 하나 사 올 손이 없을 때, 그제야 남편의 빈자리가 커진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그에게 의지하고 살았다.
팽팽한 줄도 양쪽에서 잡아당겨야 균형을 이루듯, 일상도 그러한 모양이다. 혼자 먹는 밥상에는 라면이 수시로 등장하고, 10시만 되면 서로를 재촉하던 잠자리였는데 밤새 영화를 봐도 누구도 뭐라 안한다. 분 단위로 쪼개 쓰던 시간도 한없이 늘어졌고 , 정돈된 일상도 흐트러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너지지 않은 것이 있다. 걷기다. 퇴근길에 걷고, 저녁을 먹고 또 걷고, 출근길에도 걷는다. 누가 잡아끌지 않아도,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운동화끈을 묶는다. 발을 내딛고, 숨을 고르며, 타박타박 걸음을 옮긴다. 걸음수가 채워질수록 흩어졌던 것들이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온다. 들떠 있던 마음이 가라앉고, 대지 위로 꼿꼿히 서게 된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없어도 무너지지는 않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의존형 인간의 홀로서기’란 기대지 않는 순간을 하나씩 늘려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서툴지만, 조금은 덜 바라는 방식으로.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걷기부터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