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선배님을 추모하며
아침 뉴스를 보다 깜짝 놀랐다. 제주 올레길의 창시자의 별세. 갑작스러운 소식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가까운 지인도 아니고, 수십 년 화면에서 보던 스타의 부고도 아닌데 이렇게 마음이 먹먹한 걸 보니 그 존재의 울림이 내 삶 어딘가에 깊이 닿아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그분께 혼자서 남다른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 십여 년 전, 정동길 예원학교 강당에서 그분을 처음 뵀는데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당시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올레’를 걷겠다며 제주로 몰려들던 시기였다. 길을 만들게 된 배경과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을 끌어당긴 건 그분의 이력이었다. ‘선배님’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선배님이 고대신문을 만들며 세상을 배웠듯 나도 대학 캠퍼스를 학보사 기자로 누볐다. 서슬 퍼랬던 유신 시절을 온몸으로 싸워왔던 선배님 세대와 농도는 다르지만 고민과 열정의 색깔은 비슷했다. ‘정론직필’의 글씨 아래서 밤새 원고를 쓰고, 담배연기 자욱한 회의실에서 철학서를 읽으며 동기들과 토론을 벌이던 시간들. 상업광고를 싣지 않겠다며 혈서를 쓰고, 파업을 하고, 총장실을 점거했던 날들도 있었다. 세상은 아주 단순했고, 우리는 ‘정의’ 하나만 무기로 들었던 시절이다. 지금 돌아보면 선배님도 나도 스무 살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배님은 이후 언론사에서 23년을 버텨냈다. 그 시절 여성 정치부장과 편집국장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편견과 조롱과 싸워 이겼을 것이다. 나도 첫 직장이 언론사였기에 그 세계를 조금은 안다. 여기자는 장식품처럼 대우받던 그곳에서 소위 글만 번지르한 글쟁이들의 위선도 많이 봤다. 보이지 않게 작동하던 각종 차별의 감각까지도 선명하다. 8년 만에 쫓기듯 도망친 나와는 다르게 선배님은 날카로운 필력으로 그곳을 호령했다. 그녀를 마음속 깊이 존경한 이유이기도 했다. 선배님이 쓴 여성흡연자를 향한 차별과 질시의 기록 '흡연여성잔혹사'를 읽으며 대리만족 하며 통쾌해했던 까닭도 같은 맥락이다.
온몸으로 살아내면 한 톨의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나 보다. 선배님은 번아웃 끝에 사표를 던졌다고 했지만 나에겐 승리한 자의 다음 스텝처럼 보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길과 자연에 푹 빠졌는데 그때 외국인 친구의 한마디가 후반전 그녀의 삶의 방향을 잡아줬다고 했다.
“너 고향 제주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잖아.”
선배님은 곧바로 고향 제주로 향했다. 30년 만에 귀향길, 쉰이라는 나이에 새로운 인생이 길 위에서 펼쳐졌다.
‘올레’는 선배님이 새로 만든 길이 아니었다. 그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사람들에게 알린 것뿐이라는 당신의 인터뷰가 기억난다. 제주 특유의 풍광과 역사를 담은 그 길로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관광이 아니라 걷고, 머물고, 스며드는 여행이 우리 곁으로 온 것이다. 바닷가 돌담길을 걷다가 촌부가 수줍게 내미는 국숫집에 들르고, 이름 없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시장을 지나는 시간. 그 소박한 여행이 오히려 더 깊이 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배웠다.
선배님 덕분에 제주를 많이 걸으며 놀았다. 방학엔 학교 동료들과 걸었고, 주말 번개로 비행기를 타고 남편과 걸었다. 1코스를 시작으로, 선배님의 유년시절이 스며 있다는 7코스, 그리고 마을과 곶자왈을 잇는 14-1코스는 유독 기억에 남는다. 길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마음이 쌓인 자리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올레 코스를 지겹도록 훑다가 한라산을 오르고 오름을 걸었다. 이젠 해외도 무조건 걷는 길을 찾는다.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그 시간들이 모두 선배님이 내어준 길 위에서 만들어졌다.
선배님을 더 살갑게 느낀 건 자전적 에세이 '영초언니' 덕분이다. 제주 출신 소녀의 성장과 아픔이 유독 생생하게 느껴졌고 내 삶에도 '영초언니'같은 이름들이 꽤 많이 쌓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언젠가 이런 글을 꼭 써보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길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선배님은 앞서 살며 길을 만들었고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밥먹 듯 걸으며 얻는 위로, 길 위를 걷는 자는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다는 진리,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은 우리는 그녀의 삶에 많은 걸 빚졌다. 소박한 기쁨과 행복을 알려준 그녀의 이름 세글자를 나직이 불러본다.
서/ 명/ 숙
마음껏 존경했고 덕분에 행복했다
‘올레’ 길을 걸어 하늘길로 떠난 선배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