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주말부부1
남편이 갑자기 지방 발령을 받았다.
졸지에 주말부부가 됐다.
이삿짐을 정리하고 돌아오니
집이 텅 빈 것 같았다.
자칭 남편 껌딱지, 남편바라기인 나는
두 딸과 잘 살 수 있을까.
이 나이에 이런 마음이라니
조금 창피하기도, 우습기도 했다.
한동안은 늘 붙어있던 절친과 떨어진 기분이었다.
말수도 줄었다.
퇴근후에는 방에 틀혀박혀 낭독하다가 잤다.
그런데 불만은 뜻밖의 곳에서 터졌다.
대학생 작은딸이
집엔 먹을 것도 없고,
아무도 말도 안 걸고
자기를 방치한다며 눈물을 보였다.
‘엄마 밥은 입에 안 맞는다며 잘 먹지도 않으면서…’
속으로는 억울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남편이 내려간 뒤,
내가 조금 사라져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딸 눈에는 엄마가
텅 빈 집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한 별거 생활.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먼저 침대가 넓어졌다.
늘 옆 사람을 의식해 한쪽에서 쪼그리고 자던 내가
어느 날부터 큰 대자로 자기 시작했다.
남편의 꼼지락 거림에 두세 번씩 깨지 않아도 되니
눈 뜨면 아침이었다.
옆구리의 허전함은
쿠션 몇 개로 해결됐다.
아침엔 좋아하는 라디오를 마음껏 켤 수 있다.
남편은 시끄럽다며 질색하던 소리들.
지인의 낭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화장대 위 자잘한 소지품도 사라졌다.
아무리 정리해도 하루 지나면 어질러지던 그 공간이
이제는 온전히 내 차지가 됐다.
남편이 내려가자마자 화장실 대청소를 했다.
그의 물건은 수납장에 모조리 넣고
내 것을 옮겨와 세면대를 정리했다.
누군가의 흔적이 남지 않고
청소한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기쁨이란.
퇴근 후 시간도 남아돈다.
남편 귀가 시간에 맞춰 국을 끓이고 반찬을 하던 시간이
그대로 자유시간이 됐다.
간단히 저녁을 챙겨 먹고 운동을 가고,
온라인 줌 낭독을 한다.
마누라가 앉아서 책 읽는 걸 질색하던 남편은
수시로 방해했다.
결국 산책에 끌려가곤 했는데
이제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평일 저녁 약속도 과감히 잡는다.
늦은 귀가도 자유다.
밤새 넷플릭스를 달려도 아무도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다.
큰딸이 뭐라 한마디 하려다
“엄마도 좀 즐겨.” 하고 웃는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주말부부 아내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그랬나 보다.
문득 생각한다.
무엇이 이렇게 나를 변하게 했을까.
20년 전에도 우리는 1년 떨어져 지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하늘이 무너진 줄 알았다.
월요일마다 주차장까지 내려가 신파극을 찍었고,
매일 전화를 붙잡고 있었고,
금요일이면 아침부터 설렜다.
지금은?
그냥 남편이 가니 편하고,
오니 좋다.
사랑이 식은 건 아니고
다만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라고
우기고 싶다.
남편의 빈자리는
의외로 다른 곳에서 느껴진다.
화장실 청소 당번이 없다.
밥 할 사람이 없다.
빨래 돌려줄 사람이 없다.
아이들 과일 깎아줄 사람이 없다.
이건 패스하기로 했다.
애들 다 컸다.
과일은 스스로 챙겨 먹으라 하자.
가끔 저녁거리를 사 들고 들어오는 사람도 없다.
외식과 배달음식을 싫어하니
가끔 라면을 끓여 먹자.
집이 조금 삭막해지긴 하겠다.
뱃살도 좀 늘어날 것이다
매일 끌고 나가는 사람 의지 말고
스스로 나가기로 하자.
남편, 거기서 잘 살아.
잔소리 대마왕 마누라 없는 그 시간 만끽해.
나도 잘 살게.
우리 부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버전으로
건강하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