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할래요

육아열전 4

by 포롱

고등학교 입학 후

내신을 잘 챙겨서 좋은 대학을 가겠다고
나름의 포부를 밝히며 자신만만했던 딸.

의대 동아리를 만들고
과학탐구대회도 준비했다.

이것저것 도와주려
열혈엄마 흉내를 내봤지만
아이보다 빠른 엄마의 채근은
역효과만 냈다.

내신을 챙기려면
꼼꼼하고 성실해야 하는데
작은딸은 그런 성격이 못됐다.

중간고사에서
기대만큼 성적이 안 나오자
딸은 낙심했다.

그리고는 어느 날,
자퇴를 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속상해서 하는 말인 줄 알고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학교는 선택지가 아냐. 필수야.
-누가 1등 하래?

-참고 다니는 것도 배워야지.

-인생이 대학 입학이 전부가 아냐.


딸을 다독이며

설득하려 했던 말들.

그런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딸은 입을 다물었고,
이불을 뒤집어썼고,
다음엔 문을 잠갔다.

하루 종일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잠만 잤다.

기말고사를 앞두고는
등교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진짜, 학교를 안 간다고?

네가 제정신이야?”

“나한테는 의미가 없다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 하기 싫다고!”

쓸데없다,

낭비다,

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딸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오로지 성적만, 대학만 쳐다보는 교육을 누가 했단 말인가.

집에서도 교실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고 자부했는데

내 딸은 정작 아니었단 말인가.

소리를 지르고
윽박도 질러보고
협박도 했다.

공부못해도 괜찮으니

제발 등교만 하라고
울면서 애원도 해봤다.

그럴 때마다
딸은
그렇게 키웠으면서
아닌 척 한다며
위선자를 보듯
경멸의 눈으로
나를 봤다.


학교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지긋한 나이의 선생님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똑똑한 아이이니
잘 다독여
학교로 돌려보내라고 하셨다.

남편과 딸의 관계도
악화일로를 걸었다.

화가 난 남편은
학교 안 다닐 거면
집을 나가라는 말을 했고
딸은
더 깊은 동굴 속으로 숨었다.

출구 없는 깜깜한 곳에서

부모와 딸이 서로를 할퀴며
생채기를 내던 시간.

그러는 사이
딸의 무단결석은 열흘을 넘기고 있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도대체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집 근처 상담센터를 알게 되었다.

뻔한 질문이 예상되고
상담이 어떻게 흘러갈지
결론도 안다며

시니컬한 딸은
상담도 완강히 거부했다.


그냥 공원 산책하고
점심이나 먹자고
딸을 꼬셨고

자연스럽게 상담실로 향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딸과 외출을 했다.

모녀가 말도 없이 걸었다.

기질과 심리 상태를 알아보는
여러 검사를 했고
어느날은 큰딸이 동행했고
마지막엔 남편도 함께했다.

결국
전문가의 도움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딸이 밝힌 자퇴의 이유는

모든 학생이 똑같이

내신을 챙겨야 하는

숨막히는 커리큘럼이라고 했다.

자신은 거기에 맞지 않으므로

차라리
검정고시를 보고

목표를 정해서 대입에 올인하고 싶다고.

한번도 선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던

나와 남편은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관계나 타협도 배우는 곳이라고

참아보라는 교과서적인 말을 했다.

결국 우리는 조금씩 양보를 했고

커리큘럼 선택의 자유가 크고
방과 후 일정이
강제되지 않는 곳,

자사고로 전학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집 근처 자사고에

TO가 있었고
그 바늘구멍을
운 좋게 통과했다.

그렇게
딸은
고1, 2학기부터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 평범하게 그냥 이렇게 살자.


그리고
딱 1년 뒤

딸은 선언했다.


“저,

엄마 아빠 생각해서
1년은 학교 다녔어요.”


“그런데
이젠 못하겠어요.”


“자퇴할래요.”

올 것이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불여시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