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여시 남편

by 포롱


태어나 처음으로 한 사치

올겨울,
우리 부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치를 했다.

피부과 10회 치료와 시술을
등록한 것이다.

꽤 거액이었지만
해외여행 한 번 간 셈 치고
두 눈 딱 감고
결제해 버렸다.


검버섯이 시작이었다

하얗고 얇은 피부를 가진
남편 얼굴에
언제부턴가
거뭇거뭇한 검버섯 같은 게
피기 시작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이거 이거 어떡하냐…”
호들갑을 떨던 남편이
피부과 얘기를 꺼냈다.

처음엔 남편만 치료받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담실장이라는 분이
자꾸 물었다.

“아내분은 안 하세요?”
“정말 남편분만 하신다고요?”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처럼 들려
결국 나도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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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는 왜 나만 있지?

일주일에 한 번씩
레이저 치료를 받고
마사지도 받으며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남편은
초조해했다.

마누라 얼굴은
점점 빤지르르해지는데
자기 얼굴은 그대로라며.

시큼시큼한 것들이

사라질 기미도 안 보인다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병원만 다녀오면
거울 앞에서

이거 사기 아니냐고 했다.


마누라 시술권을 달라니

급기야 오늘 아침,
진료받으러 나서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당신은 지금도 얼굴 훤하니까

진료 남은 횟수
나한테 두세 번만 주라.”

어이가 없어
남편을 쏘아봤다.

“아니, 당신은 피부도 곱고 예뻐서
이제 안 받아도 되잖아.”

꽤나 진지하게 요구한다.

“생각해 볼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좀 괘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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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에 마누라 삥뜯나?

다음 진료 날짜를 체크하다
오늘이
1월 31일인 걸 알았다.

결혼기념일.

생전 이런 걸
챙겨본 적 없는
얄미운 남편.

하필 오늘 같은 날

내 마사지 쿠폰까지
탐을 내다니.

화딱지가 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

잊어먹었지?

이런 날
마누라 시술권
뺏을 생각이나 하고
잘한다 잘해!”

그런데
남편이 능글능글 웃으며 그런다.

“잘됐네.
그럼 결혼기념일 선물로
당신 횟수
두세 번만 주라. 응?”

혹 떼려다
되레
붙였다.


젊은 피부과 의사가
깔깔 웃으며 그런다.

“세상에,
결혼기념일 선물을
남편도 요구할 수 있는 거군요.”

간호사들도
남편의 요구가
재밌고 귀엽다고 했다.

같이 살아보면 그런 말 안나올걸.


그렇게 또 하루가

외출했던 남편 손엔
달콤한 밀크티 하나.

결혼기념일 선물이라며 내민다.

딸들이 차려준 밥상을 받고 나서는 저녁 마실.
늘 걷던 일상인데
오늘은
결혼기념 기념 산책이라고 우기는 남편.


내가 여우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점점
남편이
불여시가 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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