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열전3
작은딸이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때,
남편의 직장 연수 기회가 생겨
온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남부의 보수적인 작은 도시에서 보낸 1년은
딸을 다소 소심하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웃으며 '하이'라고 인사를 건네지만
절대 곁을 주지 않는 사람들.
눈치 빠른 아이가
그 미묘한 차별을 일찌감치 느꼈다.
큰딸은 그런대로 적응하며
동남아, 히스패닉, 흑인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과 달리,
작은딸은 조용한 이방인이 됐다.
그렇게 외국에서 살아보고싶다던 딸은
하루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얼굴에 여드름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점점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은딸이 6학년을 앞두고 돌아온 서울의 학교.
사춘기가 시작된 소꿉친구들 사이엔
이미 무리가 형성돼 있었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만큼
딸은 친화적인 아이가 아니었다.
작은딸은 교실의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독서를 좋아하는,
혼자 놀아도 괜찮은 아이가 되었다.
“우리 딸이 왕따는 아닌가요?”
학부모 상담 때
담임 앞에서 걱정을 늘어놓았더니
선생님은 절대 아니라면서도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오히려 *이가 친구들을 왕따 시키죠.”
엄마가 보는 관점은 달랐다.
겁이 많은 딸은
친구를 갈망했지만
거절이 두렵고 무서워
손을 먼저 내밀지 못했다.
외로웠던걸까 힘들었던걸까.
딸은 구멍 많은 엄마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맞벌이 엄마의 약점을 이용하며.
“왜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못 해줘?
예상문제도 뽑아주고,
단어 공부도 같이 해주고!”
“그건 네 공부야.
너가 스스로 해야지.”
“다른 애들은 다 도와줘서 잘하는 거야.
엄마 때문에 레벨업 못했어!”
“못 해도 돼.
네 속도대로 해.
누가 잘 하래? 그냥 네 능력치 만큼 해. ”
“그럼 왜 목동 살아!
왜 이런 데 살아서
날 힘들게 하냐고!”
씩씩거리다 엉엉 울며 대드는 사춘기 딸과
딱 그 수준만큼의 나이만 먹은 엄마가
매일 싸웠다.
딸은 공부가 뜻대로 안 되는 스트레스를
엄마 탓으로 돌렸고,
도와줄 생각은 안하고 회피하는 엄마를
위선자라고 날을 세웠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엔
다른 모습으로 엄마를 지치게 했다.
딸은 쇼핑하듯 학원을 바꿨다.
수준이 낮다고,
선생님이 이상하다며
학원 중단을 통보했다.
좋다는 학원은 모조리 찍고 다녔다.
목동 학원 거리를 걷다 보면
딸이 스쳐간 학원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하고 싶은 것도 어찌나 많은지,
어떤 날은 하나고,
어떤 날은 민족사관고,
어떤 날은 애니고,
어떤 날은 인천 하늘고가 목표라고 했다.
아이 말에 엄마가 휘둘리니
나도 혼란스러웠다.
꼼꼼함과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아이의 성향 탓에
중학교 내신은 널을 뛰었다.
주요과목만 성적이 좋았다.
일찌감치 특목고는 접었다.
내성적인 딸은
학교에서 줄곧 책만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전집,
밀란 쿤데라, 톨스토이까지
벽돌 두께의 책을 하루에 한 권씩 독파했다.
순식간에 책을 읽어내서 제대로 내용은 아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버릇없고 되바라진 딸의 모습에 남편도 언성이 높아지던 때였다.
집안이 하루도 평안치 않았다.
어느날 중3 담임이 학교로 한번 오시라는 연락을 했다.
“어머니,
딸이 저에게 아주 노골적으로 반항합니다.”
말투와 시선은 그러려니 넘겼단다.
그런데 학기말 담임 교과 시험 답안지에
1번만 찍어 제출했다며 20점대 시험지를 내밀었다.
“공부를 안 했을 겁니다.”
“아니요. 다른 과목 시험 점수 보셔요.”
그러네. 이 과목은 작정했네.
담임 선생님은 감정적으로
딸의 행동을 비이성적으로 비난했다.
아, 이래서 딸이 선생님을 싫어했구나 이해가 될 정도였다.
담임앞에서 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리기만 했던 나.
그 입 닥치라고 왜 소리치지 못했을까.
혼란기의 제자를 그렇게 악담하는 사람앞에
나만 바보같이 예의를 지켰다.
지금 생각해도 울화통이 터진다.
그 말투, 그 눈빛...
어른이라고 다 어른이 아니듯
선생이라고 다 선생이 아니다.
딸은 울면서
담임이 너무 싫다며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었다고 했다.
자신에게 생채기를 내면서까지 그럴수밖에 없다고.
한숨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