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열전2
자아가 생기기 시작한 대여섯 살의 작은딸은 욕심이 많았다.
특히 마트에 갈 때마다 홍역을 치렀다.
갖고 싶은 게 많은 아이는
떼를 쓰다 결국 울음을 터트려
하나라도 얻어내곤 했다.
매번 필요한 것 하나만 사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갖고 싶은 것이 보이면
입을 댓발은 내밀며 골을 냈다.
두 딸이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닐 때였다.
어느 날 집에 온 작은아이의 목에
반짝거리는 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아, 이거 뭐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애가 쪼르르 다가와 자초지종을 말했다.
“엄마, 선생님이 목걸이 주인을 찾았는데
아무도 손을 안 드니까
*이가 자기 거라고 했어.”
좀더 지혜로운 엄마였다면
다르게 대처했겠지.
하지만 그때는
‘쟤가 커서 뭐가 되려나’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주인이 없는데 자기가 가지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맹랑하게 댓거리 하는 여섯살.
네 것이 아니면 절대 가지면 안 된다며,
그건 도둑질이라는
서슬 퍼런 말을 써 가며 아이를 혼냈다.
아이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가
선생님 앞에서 직접 돌려주고
사과까지 시켰다.
딸은 두드러지고 싶은 마음도 많은 아이였다.
병설유치원 등굣길엔
동화속 성처럼 뾰족한 지붕의 사립유치원이 있었는데,
그곳을 지날 때마다 저기에 다니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유치원비가 병설의 서너배라
코방귀도 안 뀌었다.
하지만 다시 대학을 다니면서
맞벌이 부부 자격이 박탈돼서
결국 딸은 사립유치원에 다니게 됐다.
딸은 지금도
그 1년이 너무 좋았다고 말한다.
병설유치원이 흑백 교실이었다면
사립은 총천연색 알록달록한 시간이었다고 표현한다.
주제 중심 프로젝트식 수업,
충분히 채워졌던 지적 욕구,
친절했던 선생님.
그 아이는
그곳의 자유로움이 좋았던 것 같다.
딸을 잘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사건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벼룩시장을 했는데,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거실 바닥에 좋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엄마, 엄마…
내가 오늘 우리 반 좋은 거 다 쓸어왔다.”
아이의 설명은 이랬다.
친구의 좋은 물건을 싸게 사서
다른 친구에게 비싸게 팔고,
그 돈으로 갖고 싶은 물건을 다 사 왔다는 것.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필요한 것만 정직하게 사 올 생각은 안 하고
왜 이런 잔머리를 굴리나 싶었다.
아이는
칭찬을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걱정만 들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대도
여전히 어떻게 잘 대처할 수 있을지
어전히 모르겠다.
딸을 감당하기엔 그릇이 너무 작은 엄마다.
딸은 남의 눈도 많이 의식하는 아이였다.
영어도 잘 못하면서
3학년 때부터 해리포터 원서를
학교에 들고 다녔다.
아이러니하게도
딸은 2년 뒤
그 책을 줄줄 읽는 아이가 되었다.
딸의 욕심은 결국 허풍이 아니라
예고였던 셈이다.
그때는 몰랐다.
이 아이의 욕심이
넘침이 아니라 방향과 속도가 필요했던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