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두리를 거부하는 아이

육아열전 1

by 포롱

작은딸은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다.

뱃속에서 갓 나온 신생아가

머리카락이 까맣고 수북했다.

산후조리원에 나란히 누운 스무 명 남짓의 아기들 사이에서도

딸은 단번에 눈에 띄었다.

출산 직후의 아기가 쭈글쭈글하고 못생겼다고들 하는데,

딸은 간호사들이 한 달은 키운 애 같다고 놀랄 정도였다.

먹성도 좋아 순식간에 우유 한 통을 비웠다.


큰딸은 친정엄마 손에서 두 돌 가까이 컸다.

출산 두 달 만에 출근을 했던 나는
작은딸을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맡겼다.

낮동안 딸을 돌봐주신 아래층 아주머니는

중고등학교 두 아들을 키우시던 40대 후반의 무뚝뚝한 분이셨다.

틈틈이 해외입양을 앞둔 갓난아기를 위탁보호해 주시던 분이라

고민도 하지 않고 결정했다.

아주머니의 집은 늘 깨끗했다.

거실엔 티끌 하나 없고, 놀잇감도 없었다.

작은애가 찡얼거리면 하나씩 손에 들려줬다.

그땐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정엄마의 의견은 달랐다.

아이 키우는 집이 너무 깨끗한 건

아이에게는 숨 막히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육아는 아이가 중심이 돼야 한다며

장난감이 숨어있는 집은 이상하다고 했다.

애를 키우는 사람은 다정하고 수다스러워야 한다고 걱정하셨다.

사람 구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던지라 엄마의 말을 흘려들었다.


작은딸이 첫돌을 지나면서 친정에 있던 큰딸을 데려왔다.

아침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잠든 두 아이를 깨워 씻기고 먹이고 입히는 일.

그땐 그게 해치워야 할 버거운 일이기만 했다.

딸들이 귀엽고 이쁜 줄 몰랐단 말이다.

아이의 정서를 살피는 그런 세심한 관심도 없었다.


아파트가 떠나갈세라 자지러지게 울며 매달리는 둘째를
아래층 이모에게 물건 던지듯 안겨주고 도망쳤다.

큰딸을 또 놀이방에 맡겨야 했기 때문이다.

2년간 혼자 고군분투했던 그 시절은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겹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작은애는 고집을 더 자주 부렸다.

자기는 집에 있을 거라며

거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버티곤 했다.

“그럼 넌 혼자 집에 있어.”

달래도 소용없는 딸을 두고 급기야 큰아이 손만 잡고 문을 나서는 매정한 엄마.

띠리릭,

현관문이 잠기고 모녀는 현관에 귀를 대고 집안 동태를 살핀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도대체 저 고집을 어째야 하나 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는 찰나

집안에서 딸의 울음이 터지고 현관문 마구 두드리는 소리.
“엄마~어린이집 간다고~!!! 나도 데려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잔인한 협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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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작은딸 어린이집 선생님이 걱정을 하셨다.

색칠 공부를 하는데

자꾸 테두리 밖으로 색이 튀어나간다고 했다.

선 안에서 칠하라고 하면

오히려 더 선을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칠한다고.


그때는 몰랐다.

그 아이가 테두리를 거부하는 아이라는 걸.

하지 말라면 더 멀리 나가는 아이라는 걸.

그리고 어쩌면,

그건 고집이 아니라

그 아이의 천성이었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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