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 무리 짓기를 경계하며
새 아이들을 만난 지 3주가 지났다. 4학년은 많은 선생님들이 한 번쯤 맡아보고 싶어 하는, 이른바 ‘황금 학년’이다. 말귀도 제법 알아듣고 아직은 순진함이 남아 있어, 어떤 활동을 해도 아이들은 해맑게 즐긴다.
올해 우리 반도 유난히 쾌활하고 밝다. 첫날부터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더니, 이제는 쉬는 시간마다 열댓 명이 모여 림보 놀이를 하거나 바닥에 주저앉아 공기놀이를 하고, 보드게임도 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자꾸 눈길이 가는 아이들이 있다. 혼자 뚝 떨어져 노는 아이들이다.
책을 읽거나, 색종이를 접거나, 학원 문제집을 꺼내거나, 교실 밖을 서성이는 아이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혹시 어딘가에 끼지 못해 속상한 건 아닐까. 외로운 건 아닐까.
이런 마음에는 작은딸에 대한 기억이 겹쳐 있다.
딸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교실에서 친구 없이 책만 읽었다. 자기 수준에 꼭 맞지도 않는 두꺼운 책을 아침마다 가방에 넣어 갔다. 쉬는 시간을 책으로 버티겠구나 싶어 마음이 아렸다.
학부모 상담 때, 담임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물은 적이 있다. “혹시 우리 아이가 왕따를 당하는 건가요?”
선생님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셨다. 오히려 딸이 먼저 친구들을 밀어내는 편이라고 했다.
딸의 말은 이랬다.
“벌써 여자애들은 무리가 지어져 있어. 내가 거기에 들어가려 하면 이상한 애처럼 쳐다봐. 그럴 바엔 그냥 책 보며 지내는 게 나아.”
겉으로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아이였다. 하지만 딸은 여리고 소심했고, 무엇보다 눈치가 빨랐다. 학기 초부터 이미 마음을 접은 듯 보였다.
어느 날은 ‘우리 반 권력 구조’라며 관계도를 그려 왔다. 누가 누구와 싸웠고, 누가 무리에서 밀려났고, 그 결과 누가 혼자가 되었는지를 중계방송 하듯 설명했다.
교실 안에 있어야 할 아이가 선 밖에서 관찰자가 되어 소외된 모습이 안타까움으로 오래도록 남았다.
고학년이 되면 많은 교실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나는 학기 초마다, 배타적인 친구 관계를 가장 먼저 경계한다. 특히 여학생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무리 짓기’를 유심히 본다.
익숙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는 일은 분명 안심이 된다. 하지만 그 관계가 벽을 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대감이 지나치게 단단해지면 다른 아이들은 금세 알아차린다.
‘저 무리에는 끼면 안 되겠구나.’ ‘괜히 다가갔다가 민망해질 수 있겠구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상처를 알아본다.
올해 아이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것이다.
한두 명의 특별한 친구만 붙들고 있기보다,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 보자고.
여러 개의 관계 동그라미를 그리고, 서로 다른 성격의 교집합을 넓혀
학교생활을 더 풍성하게 만들자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 교실에서는 단 한 사람도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한다.
물론 유난히 잘 맞는 친구가 있을 수 있다. 환상의 짝꿍 같은 존재 말이다. 그것까지 막을 생각은 없다.
다만, 다가오는 친구를 밀치거나 선을 긋지는 말자고 이야기한다.
“나도 같이 놀아도 돼?” “나도 해 보고 싶어.”
겁 많고 수줍은 아이가 용기를 내어 건넨 그 말을 누군가는 받아 주었으면 좋겠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친구 관계 때문에 괴로워하고, 울기도 한다.
부모 역시 학업보다 관계를 더 걱정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런 비유를 해 준다.
친구란 인생이라는 버스에서 만나는 ‘승객’과 같다.
어떤 친구는 잠깐 탔다가 금세 내리고, 어떤 친구는 옆자리에 오래 머문다.
그러니 그 순간을 그저 즐기면 된다.
설령 한동안 텅 빈 버스를 혼자 타고 가는 것 같더라도, 다음 정거장에서는 분명 누군가가 올라탈 것이라고 믿어라.
‘절친’이 없다고 조급해하지도 말자.
여럿이 어울려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니까. 혼자가 더 편한 사람도 있고, 다가가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친구도 있으니까.
관계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을 알아 간다는 것은 참 즐겁고도 조심스러운 일이다.
나도 역시 새 학기마다 설레면서도 긴장된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는 일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아이 한 명 한 명은 저마다의 삶을 품고 내 앞에 선다.
쉽게 부서질 수도 있었고, 이미 한 번쯤은 부서져 보았을지도 모르는 마음을 안고서.
그동안 우리 반은 반 이름도 정하고, 구호도 정하고, 로고도 만들었다. 서로를 알아 가는 시간도 차곡차곡 쌓아 가고 있다.
올해 만난 우리 반 아이들이 “4랑해, 5반!”을 진심으로 외치는 날들이 오기를 바란다.
누구도 혼자 있지 않았던 교실의 기억을 오랫동안 즐겁게 추억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