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어줄까?"의 힘

높임말 쓰는 교실의 시작

by 포롱

3월 3일, 첫 등교 날이다.

새벽녘 꿈속에서 바락바락 대드는 아이가 있었다.

올해로 경력 19년 차인데도 아직 이런 꿈을 꾸다니, 스스로 조금 우습다.

그저께 관악산을 다녀온 여파인지 왼쪽 무릎이 약간 좋지 않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새 아이들을 맞이하고 싶었는데 속상하다.

씻고 나오니 남편이 아침밥을 먹으려고 주방을 서성이고 있다.

회사 창립기념일이라 하루 더 쉬고, 내일 새벽 기차로 부산에 내려간단다.

주말부부 1개월 차.

아직도 남편과 떨어져 사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무릎이 안 좋다고 했더니 가까이 와서 슬며시 주물러 준다.

시계를 보니 나가야 할 시간이다.

“왜 아프지? 아, 속상해. 오늘부터 1년 레이스 시작인데…”

“어떡하냐, 우리 마누라.

업어줄까?”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출근길 내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누군가의 응원과 지지를 받는다는 기분은 사람을 자신 있게 만든다.

학교에서도 문득문득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업어줄까?”

황홀한 말, 달콤한 말, 존중과 사랑의 말.

그 한마디가 잔뜩 긴장했던 나를 하루 종일 편안하게 만들었다.

말이 사람을 이렇게 바꾸기도 하는구나.

“우리 반은 높임말을 쓰는 반입니다.”

이 한마디에 스물셋의 4학년 아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낯설고 어색한 교실에서 새 담임이 황당한 폭탄을 던진 셈이다.

“잠깐만요, 선생님!

친구들끼리 존댓말을 한다고요?”

“네, 맞습니다.

우리 반은 1년 동안 서로 높임말을 써보기로 합니다.”

“아니 왜요?

친구끼리 왜요?”

“선생님은 여러분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언어부터 시작해보려 합니다.

선생님도 처음 시도하는 거라 낯설고 어색합니다.

그래도 우리 한번 노력해 볼까요?”

“선생님, 이건 너무 이상합니다. 친구끼리 왜요?”

아이들은 서로 두리번거리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때였다.

가운데 앉아 있던 호기심 많은 아이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좀 재밌을 것 같아요.
친구끼리 싸움도 줄겠죠?”

순간 교실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웃던 아이들도 잠깐 멈췄다.

나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맞아요.

23명의 친구들이 1년을 평화롭게 보내려면 무엇보다 존중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그 시작을 말로 한번 해보고 싶어요.”

선생님이 하자는데 어쩔 도리가 없는 아이들.

그중에는 고집을 부리는 아이도 있었다.

“저는 높임말 안 합니다.

절대 안 해요.”

“입 다물고 있어야겠어요.”

사실 이런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다.

한 번에 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올해는 꾸준히 해볼 생각이다.

모든 갈등은 감정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대부분 말과 태도다.

내가 유일하게 즐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이혼 직전의 부부들이 나와 합숙을 하며 평소의 생활을 관찰하고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며

서로 조정을 시도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위기의 부부들을 보면서 가장 주목한 지점은 말이었다.

무시하는 말,

비난하는 말,

질책하는 말,

비아냥거리는 말.

그 말들이 침이 되고 독이 되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냈다.

상처를 보듬어야 할 순간에도

날카로운 말이 더 깊이 파고들었다.

결국 그들은 말한다.

“평생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하는 사람과는 살 수 없습니다.”

그들이

말만 조금 더 예쁘게 했다면 어떨까.

존중하는 말,

배려하는 말,

그 시작으로 높임말을 쓴다면?

그리고 그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태도로 이어진다면

그들의 파국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님, 왜 그러세요?”

“○○씨, 높임말 안 쓰십니까?”

아이들이 실실 웃으며 내 눈치를 보며 말한다.

그리고 안 보이는 곳에서는

여전히 반말을 한다.

알고 있다.

그래도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긴 호흡으로

여유롭게 가보려 한다.


형식이 내용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높임말이라는 형식으로

존중과 배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교실을 만들고 싶다.


이 참에 우리 부부도

높임말 쓰기

도전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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