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된 중국, 도약하는 인도 (3)

광둥 성의 상전벽해와 중국의 굴기

by Lee Sang Hoon

청두(성도)는 '삼국지연의'의 유비의 도시이다. 시안에서 기차로 20시간 정도 걸렸다. 중간에 협곡들을 지나친다. 산세의 험준함에 아찔함과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유비의 나라인 촉나라의 지리적 이점을 실감하고 있다. 위나라의 조조도 이곳을 거쳐 촉나라를 치러 갔을 수 있겠다. 흥미롭게도 중국에서는 관우가 유비보다 인기가 많아 보인다. 많은 곳에 그를 모신 사당이 있다. 그의 우직한 충성심과 적토마 위에서 청룡언월도를 번쩍이던 무용은 당연히 숭배의 대상이다. 여기에 미신이 더해진다. 야사에 의하면 관우의 참수된 목을 본 후 조조는 관우의 악몽에 시달리다 죽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우의 영험함을 믿게 되었다.


양쯔강의 종착지인 동부 해안 지역에 당도했다. 상하이는 해안가의 마천루를 제외하곤 아직 국제적인 도시로 불리긴 이르다. 그럼에도 중국의 경제 수도이다. 상하이의 경제발전에는 ‘상하이방’의 지원이 큰 역할을 한다. 이 지역출신의 정치 그룹을 뜻한다. 중국은 마오쩌뚱 시대를 교훈 삼아 정치 리더십을 10명 이내의 상무위원이 이끄는 집단체제로 전환했다. 여기에는 상하이방, 태자당, 공청단 세 개의 정치그룹이 주도한다. 국가주석은 이 집단을 대표하는 얼굴마담 격이고 세 그룹에서 돌아가며 맡았다. 즉 장쩌민은 상하이방, 후진타오는 공청단, 가장 최근의 시진핑은 태자당 출신이다. 이 암묵적인 동의가 무너진 게 시진핑 주석 때이다. 그는 상무위원을 7명으로 줄이고 전원을 자신의 수하로 채웠다. 그리고 국가주석 직을 한차례만 연임하는 관례를 깨고 두 번 연임을 했으며 세 번째도 무난해 보인다. 바야흐로 세계는 절대권력의 시대다.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오르기 직전에 큰 사건이 있었다. 그의 정치적 라이벌인 보시라이 충칭시장과 관련된 것이다. 그 또한 태자당 출신으로 부패척결 운동을 일으켜 당시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사건은 그의 아내가 한 영국인 사업가의 죽음에 연루되면서 시작된다. 사건 조사를 보시라이의 수하가 맡았는데 그가 갑자기 미국 영사관으로 도피하면서 이 일이 큰 정치사건으로 비화된다. 이후 보시라이의 아내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지금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보시라이 역시 부패 혐의로 종신형을 받으면서 그의 정치생명은 끝이 난다. 그리고 시진핑은 탄탄대로를 걷는다.


죽은 영국인 사업가의 업무 중 하나는 기업인들의 배경을 조사하는 것이다. 일종의 탐정 서비스다. 내가 속한 팀에서도 그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다. 어느 회사의 대주주 겸 사장에 관한 조사이다. 당시 시장에선 그는 단지 바지사장일 뿐 실질적인 대주주는 공산당 간부들이라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그 영국인은 보시라이의 부인을 위해선 무언가 험한 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게 다 사회의 투명성이 부족해서 발생했을 것이다.


항저우(항주)는 이태백이 시로 찬양한 동정호로 유명하다. 이 호수의 물결처럼 아주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이곳이 장차 중국 IT 산업의 아이콘 ‘알리바바’의 보금자리가 되리라곤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항저우의 영원한 단짝인 옆 동네 쑤저우(소주)는 예쁜 정원의 도시이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쑤저우와 항저우를 '쑤항'으로 통칭하며 지상의 천국으로 찬양했다. 아름답고 조용한 이곳 역시 미래에 IT와 바이오산업의 중심지로 변신한다.


황산은 중국 최고의 명산이다. 기암괴석과 노송 그리고 구름이 뒤섞인 절경은 많은 고전 산수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지금은 항저우에서 차로 서너 시간이면 가지만 당시에는 시외버스로 10시간 정도 걸렸다. 이미 12월에 접어든지라 날씨가 꽤 쌀쌀하다. 양쯔강 이남은 겨울에도 호텔이나 공공시설에는 난방을 하지 않는다. 시외버스는 낡아서 창틀로 찬바람이 드나든다. 승객들은 마치 싸우듯이 큰소리로 떠들고 있다. 중국사람들의 대화하는 스타일이다. 특히 앞의 한 중년 사내의 목소리는 유난히 커서 짜증스럽다. 그리고 승객들은 끊임없이 해바라기씨를 먹고 껍질을 내뱉는다. 거리에선 침 뱉는 사람들로 곤혹스러웠는데 버스엔 해바라기씨가 사방으로 날아다닌다. 급기야 바닥에 눈처럼 쌓였다.


도중에 휴게소에 들렀다. 말이 휴게소이지 시골의 낡은 부엌이다. 사람들은 큰 그릇에다 즉석 국수를 말아먹는다. 여기저기 널린 재료를 집어서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육수를 부으면 끝이다. 그래도 차가운 날씨 덕분에 따뜻한 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식사 후에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가 있다. 바로 화장실이다. 당시 중국의 공중화장실은 한마디로 문화충격이었는데 이곳 시골에선 상태가 더 나쁘다. 칸막이도 없는 공간에 남자와 여자 그리고 큰 것과 작은 것의 구분이 없다. 발판 위에서 벽을 향하면 작은 것이고 등지면 큰 것이다. 먹은 국수를 거의 토할 뻔했다.


여정의 막바지에 최대의 난관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길이 험해졌다. 그리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눈앞에 돌과 흙무더기가 나타났다. 상당히 비현실적인 산사태를 마주한 것이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그때 반전이 일어났다. 그 큰 목소리의 사내가 승객들을 부추겨 돌과 흙을 나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를 향한 그동안의 짜증이 돌연 존경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날도 이미 저물고 있다. 그의 연배로 짐작컨대 십 대 즈음에 문화혁명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집단의 힘을 과신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이내 포기하고 하나둘 건너편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냄새를 맡은 택시들이 도착한 것이다. 위기를 노린 엄청난 바가지요금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택시를 타고 그곳을 벗어났다. 그 큰 목소리의 사내와 몇몇은 여전히 돌을 치우고 있다.


기회주의적인 택시기사들과 무모하게 공익을 추구하는 몇몇의 사람들은 미래의 중국의 모습을 예고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의 중국은 개개인의 차원에선 극단적인 경쟁과 이익추구가 절대선이다. 어느 자본주의 국가보다 심하다. 사기업에 팽배한 996 문화 즉 오전 9시에서 저녁 9시까지 일주일에 6일을 일하는 직장문화는 사람들을 몰아붙인다. 반면에 국가 전체 수준에선 여전히 정부가 많은 것을 계획하고 통제하는 사회주의 시스템이다. 이러한 체제의 모순은 결과의 모순을 낳았다. 바로 높은 수준의 빈부격차이다. 사회주의 탄생의 시발점이 체제의 종착역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30여 시간 기차를 타고 광시 성으로 들어갔다. 수려한 경치로 유명한 구이린(계림)에 들렀다. 예로부터 중국 제일의 절경이라 불리는 곳이다. 장족들의 자치지역이다. 그들은 자신의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 정부는 50여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나름대로 잘 존중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전 대륙의 한족화에 집중하는 지금의 모습과 대비된다. 구이린은 중앙 정치무대에서 아주 먼 외딴곳이다. 그래서인지 빼어난 경치 이외의 역사적 흔적은 많지 않다. 사실 베이징, 시안, 청두의 대단한 유적들을 둘러본 후에 나머지 도시들은 대부분 밋밋했다. 경제학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강하게 작용한 탓이리라.


그럭저럭 40일간의 여정이 끝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목적지인 광둥 성에 들어왔다. 광저우(광주)와 주하이(주해)를 방문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드디어 찾게 되었다. 이 여행의 동기가 된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과연 중국은 우리의 엘도라도인가?"


광저우에서 주하이에 이르는 몇 시간의 버스 여행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곳곳에 공장과 신축공사 현장이 널려있다. 급성장하는 중국 경제의 심장이 바로 여기였다. 주하이는 경제특구 중 하나이다. 선전(심천)과 더불어 광둥 성의 핵심 산업단지다. 덩샤오핑은 유명한 남쪽 지역 순례 이후 다섯 도시를 경제특구로 지정한다. 이들은 1980년대에는 기반을 닦았고 1990년대 들어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탄다. 수많은 해외기업들이 들어와 생산기지를 건설한다. 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완구, 신발, 의류, 전자제품들을 쏟아냈다. 광둥 성은 내가 한 달여 동안 거쳐온 오래되고 고요한 지역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흥분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이후의 중국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잘 알려진 대로다.


중국은 경제특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대 들어 전국으로 산업화를 확대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전 세계의 공장이 된다. 또한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다. 중국은 한나라로 시작하여,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의 전반기에 이르기까지 줄곧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었다. 곧 그 영광에 다시 다가갈 듯 보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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