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

학위논문 감사의 글을 적으며 3년 3개월 간의 AI 대학원을 회고해 본다

by 신윤호

22년도 3월. 입사한 지 만 3년이 넘어가며 지루함과 매너리즘을 느끼던 나는 크게 한방 지르고 만다. 새롭게 생긴 제도인 사내 대학원 박사과정에 지원한 것. 하고 나면 뭐라도 좋은 게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함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 레이스를 결정하고 말았다. 코딩 테스트와 면접까지 봤는데 당시에 내 연구주제도 확고했고 순조롭고 자신만만하게 박사과정 1기로서 AI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Talking Face Generation(TFG). 일종의 AI아나운서를 만드는 이 기술을 나는 연구하고 있었다. 오디오를 입력하면 그에 싱크를 맞춘 얼굴 동영상을 생성하는 기술로, 당시 연구할 여지가 이거 저거 많다고 생각했던 나는 초반에는 꽤 여유로웠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TFG의 데이터는 방대했고, 모델은 복잡했으며, 그 와중에 창의적이면서 성능을 내는 모델을 만드는 것은 나에게 너무 어려웠다. 파트타임으로서 주 2-3일을 대학원 건물로 출근하면서 현업 프로젝트와의 밸런스를 잡는 것도 생각보다 혼란스러웠다. 입사 4년 만에 나는 또 다른 미생으로서 완전히 헤매고 있었다.


내가 AI대학원을 다니며 제일 잘한 게 하나 있다면 빠르게 한번 포기했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원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고, 처음에 가져온 연구주제를 포기한 것. 자존심은 상했지만 나는 이 주제가 나의 그릇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완전히 새롭게 주제를 찾기로 마음먹고 지도교수님들께 공표하였다. 다시 맨땅에 헤딩을 하려고 하니 아찔했으나 장기 레이스에서 이게 맞을거다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바탕으로 나는 도전했다.


그 당시에 내가 맡았던 현업 프로젝트는 스포츠 하이라이트를 AI로 자동 생성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업과 연계하여 내가 사무실에서도 눈치 안 보고 볼 수 있는 연구 주제를 고르다 보니 축구 행동 인식 분야가 데이터도 존재하고 메트릭도 확실한 분야였다. 그래서 몇 달을 다시 서베이 하고 여기에 트렌드를 한 꼬집 넣으면서 실험하다 보니 24년 3월경 나는 입학 후 처음으로 유의미한 실험 결과를 얻었다. 유의미한 실험 결과를 한번 얻은 것만으로는 지도교수님들께 논문을 쓰자고 제안하기 민망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 여섯 달 동안 그 결과를 뒷받침할 근거를 깔기 위해 또다시 실험하고 피드백받고 하였다. 9월쯤 되니 드디어 저널을 써보자는 교수님의 콜 싸인을 받게 되었다.


그 뒤로 어느새 9개월이 흘렀다. 논문을 쓰고 고쳐서 제출까지 3개월, 저널 측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또 고쳐서 내고 저널 억셉까지 또 3개월, 이렇게 달성한 졸업요건을 들고 가서 세 번의 학위심사가 끝나는 데까지 또 3개월이 걸렸다. 적고 보니 정말 시간이 엄청 날아가버렸구나. 그리고 방금 학위논문의 마지막 페이지에 감사의 글을 적고 대학원 측에 제출 버튼을 눌렀다.


처음에 입학할 때 기대했던 것처럼 탑티어 컨퍼런스에 논문을 발표하는 그런 폼나는 박사과정 생활은 하지 못했다. 심지어 현업 프로젝트와 개인사에 치이고, 불확실한 나의 처지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받았다. 하지만 나는 분명 이 이중생활(박사과정-현직 AI엔지니어)로 고통을 받으며 가학적이었지만 성장을 하였다. 매듭을 지은 지금 나는 누구보다 심적으로 여유로운 박사로 다시 태어났다.


작가의 이전글24/25 해외축구 시즌 종료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