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나온 달님.
2014년 4월 15일
낯선 공간. 어색한 시작.
영업을 시작한 지도 2개월이 지났다.
간간이 말이 되는 손님도 있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하는 손님도 있었지만
그 조차도 다섯 손가락을 채우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유럽 여행 가이드를 전문으로 하시는 여성 한 분이 손님으로 오셨다.
요즘은 중국 단체 관광객들의 행동이 기사에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한때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그분 역시 오랜 세월 단체 손님들을 이끌며 겪은 고충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머리도 식힐 겸 책을 맘껏 읽고 싶어 왔다는 손님.
남편은 ‘귀곡산장’이라는 별명에서 벗어나보겠다며
두 달째 정원 곳곳에 조명을 달고 있었다.
LED 선을 잇고 또 이으며, 빛이 닿을 수 있는 곳마다 손을 보탰다.
그 덕분에 조금씩 공간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은 여전히 손이 많이 갔다.
임대료보다 몇 배는 더 들어간 인테리어비는
티도 나지 않는 수선처럼 보였다.
그나마 정원이 밝아지니 남편의 얼굴에도 조금씩 빛이 돌았다.
그날도 그는 여기저기 선을 잇느라 분주했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작업옷도 털지 않고 현관문을 벌컥 열며 들어오는 남편,
날카로운 눈매에 선이 굵은 남편이 어울리지 않게
세상 해맑은 초롱한 눈빛으로 빠른 템포로 얘기한다.
"달이 정말 밝아!
세상에 그렇게 밝은 달은 처음 봐!
가서 봐봐."
'으음, 호들갑은 내 담당인데...'
차분히 말해도 당연히 나갈 나이지만
평소와 달리 호들갑스럽게 표현하니 말대 접하는 양 숟가락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얼마나 밝길래 저래? '
하면서 현관문을 여는데...
순간 내 얼굴에 입과 눈이 동그래졌다.
어쩜 추석 보름달, 정월 대보름이 합쳐졌나 싶을 만큼 무척이나 밝았다.
휘영청 밝은 달의 '휘영청' 그 단어가 찰떡인 그런 달이었다.
한라산 뒤에서 뿅! 올라온 듯한 달,
그런 달님이 비추어주는 백록담을 중심으로 길게 뻗은 능선자락.
마치도 동양화 그림 속에 노란 색동옷을 덧 입힌 신비하고 가슴 따뜻한 빛이었다.
이리 예쁜 건 혼자 볼 수 없었다.
손님이 계신 객실 문을 두들겨 달이 예쁘다고 전해 주었다.
손님 역시도 나와 보더니 놀라며 카메라를 들고 다시 나왔다.
"어쩜 달이 저리 밝고 예뻐요?
역시 제주에 오길 잘했어요!"
그리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님,
나 역시도 이곳에 이사 오길 잘했다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그리고 그다음 날.
2014년 4월 16일
아침,
아이들을 챙겨 보내고 잠시 숨을 돌리려 TV를 켰다.
그 순간,
뉴스 속 화면은 온몸을 굳게 했다.
'지금 이 상황은 뭐지...?! 이게 현실인가...?'
황망한 TV 속 모습.
그날의 상황을 어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손님 역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시내로 나갔다가,
조잘조잘 떠드는 학생들로 가득한 버스 안에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사고만 없었다면, 저 아이들처럼 설레는 여행을 하고 있었을 텐데요…”
손님은 여행 가이드로 학생들을 이끌었던 경험이 많았던 터라
더욱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식사도 하지 못했다.
결국 예정된 숙박을 다 채우지 못하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그날의 우리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그렇게 휘영청 밝은 달을 본 적이 없다.
아마도...
그날의 달은,
아이들을 마중 나온 달님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