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은 잠시 직장을 나왔다가 다시 취업을 하는 거고 은퇴는 아예 직업을 갖지 않는 거라고 한다
<50살>
퇴직했다면 다시 취업하기엔 너무 많은 나이고
은퇴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가 아닌가?
2022년 2월 22년간 해오던 학원을 폐원하고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50살에 백수가 되었다
코로나도 잘 견뎠지만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두 번째 대상포진에 걸렸다
약을 먹어도 통증은 심해지는데 피부에는 어떤 증세도 나타나지 않자 병원에서 건강검진 했냐고 물었다
코로나 핑계로 하지 않고 미뤘었다
"혹시 어디 아픈데 없었어요? 대상포진 증세 말고 머리가 아프다던가 혈압이 이 정도로 오르면 증상이 나타났을 텐데요 살아계신 게 기적입니다 빨리 약을 드시지 않으면 병원문 나가시다가 죽으실 수도 있어요 자다가 조용히 죽든가 이런 말씀드리긴 그런데... 죽으면 차라리 괜찮죠 마비라도 오면 죽을 때까지 병원에서 누워 계셔야 해요 암보다 더 무서운 게 혈압입니다"
혈압약 먹는 걸 망설이는 나에게 의사가 했던 경고의 말이다
혈압이 230 -137이었다
혈압을 재는 기계에서 숫자가 주식이 상한가를 칠 때 빠르게 숫자가 바뀌며 오르는 것처럼 올랐더랬다
오르는 혈압기계의 숫자를 보고 간호사들은 입을 손으로 가린 채 나를 흘끔거리며 말했다
"어머! 어머! 기계가 망가졌나? 왜 이래?"
상황 파악이 안 됐던 나는 혈압약은 먹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한다는 거 말고는
혈압 정상수치도 모르고 있었다
간호사들조차도 이렇게 높은 혈압은 보기 힘들다고 약을 빨리 드시라고 권유했다
며칠 동안 처방된 약을 먹었지만 혈압은 그대로였다
동네병원 의사는 소견서를 써 드릴 테니 큰 병원으로 가서 검사해 보시는 게 좋겠단다
어쩐다... 곧 기말고산데...
첫 월급을 받은 강사는 시험 일주일을 남기고 카톡을 보내고는 갑자기 그만두었고
새로 채용한 또 다른 강사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의 퇴원이 줄줄이 예상되고 있었다
수업도 해야 하고 강사도 다시 채용해야 하는데...
시험공부는 일주일 남은 시기가 가장 중요하다
머릿속은 복잡하고 대상포진으로 고통은 더 심해졌다
"며칠 있다가 가면 안 될까요? 제가 하는 일이 있는데... 끝나고 가도 될까요?"
".... 일이 중요해요? 죽는다니까요"
어이가 없었던지 의사는 퉁명스럽게 우리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다시 오실 필요 없단다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일... 생계였다
학원일은 시험기간이 가장 중요하다
그때는 죽지도 못한다
아프면 일을 관둬야 한다
아들 초등학교 때는 학교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다
심지어 군대 면회 한번 온 적 없는 엄마는 나뿐이라며 아들이 이해하지만섭섭했다고말했었다
생계를 책임지고 나서는 내 인생의 스케줄은 학원운영에 100%로 맞춰진 삶을 살아왔다
"엄마가 너랑 같이 못 놀아주고 같이 있어주지 못해도 돈 없어 힘든 것보단 나아 그렇지?"
둘 다 해 줄 수 없다면 아이한테 돈 없이 사는 괴로움을 주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그 순간에도 죽음은 멀리 느껴지고 아이들의 기말고사가 더 급하고 내 생계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종합병원은 당일 진료가 어렵지만 소견서를 보더니 바로 응급처리 해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검사는 피 뽑는 것부터 시작했다
내 몸속에 있는 피를 다 뽑을 작정인지 피통을 교체하면서 뽑다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며 다른 쪽 팔에 바늘을 꽂고 뽑기를반복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피를 뽑은 적이 없었던 나는 피 뽑다가 죽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될때쯤 피 뽑는 게 멈췄다
그제야 눈을 뜨고 힐끔 보니 10통은 되는 듯했다
그리고 심장엑스레이 초음파 심전도 등등
하루 양을 받으라고 주는 소변주머니를 받고서야 검사는 끝이 났다
각종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생각이 멈춘 듯 멍하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 다른 문제는 없는 듯했다
약을 먹으면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일주일 후 혈압은 정상 근처까지 내려왔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네요 혼자 조용하게 있으면서 될수록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하셔야 합니다"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
15년 전 그 큰 충격을 받고도 미치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왔다는 게 더 비정상이지 않았을까?
그 고통을 속으로 참아내며 목구멍까지 오르는 울분을 꾹꾹 누르며 살았다
괜찮아 괜찮아 가슴을 스스로 토닥거리며 눈물을 삼켰다
나는 왜 태어나서 이런 고통을 당하나
세상엔 나보다 더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보다 행복하고 잘 사는 사람도 널렸다
위로는 어떤 것도 되지 않았다
슬퍼하고 위로받을 새도 없이 하루하루가 먹고사는 일로 전쟁이었다
한가하게 내 마음의 상처나 어루만질 시간이 없었다
내 고통과 상처는 사치였다 코로나까지 겪으면서 스트레스는 극에 달았고 갱년기에 몸도 급격히 안 좋아졌다
대상포진도 가라앉고 혈압도 어느 정도 안정되니 언제였는지 머리 뒷골이 땅기며 정신이 잠시 몽롱해졌던 적이 두어 번 있었다
누군가와 전화하면서 약간 화가 나는 걸 억누르자 몸이 부르르 떨리며 뒷골이 쫘악하며 전기가 통하듯 뜨거운 것이 날카롭게 머리위쪽으로 치솟았다
순간 놀랐지만 금방 좋아지길래 잊고 있었다
막장드라마에서나 봐왔던 회장님들의 뒷골 잡고 쓰러지기!
이게 그건가? 쇼가 아니었네
덜컹 겁이 났다
내 인생의 드라마는 앞뒤내용과는 상관없이 <갑자기 죽는다> 대본의 지문처럼 죽을 수도 있겠구나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게 죽음이고
오로시 나만이 감당해야 하는 공포감과 상실감 외로움이었다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에 내가 없다면 뭐가 중요하고 소중할까?
가끔 유명연예인들의 갑작스러운 부고를듣는다
연예인들은 가족만큼이나 친숙하게 느껴져서인지
어느 때는 큰고모가 돌아가신 것보다 더 슬펐던 적도 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병원에 가서 마지막 살아계신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울음을 터트린 적이 있다
숨만 쉴 뿐 살아계신 게 아니었다
앙상하게 뼈만 남고(30킬로로 보였다) 머리는 다 빠져 몇 가닥 남지 않았다(뇌종양이었다)
죽기 싫다고 말하는 듯 허우적 되는 손을 할머니가 붙잡고 울고 계셨다
"그려~ 그려~ 불쌍한 것! 안다 알아! 가기 싫지? 엄마가 곧 따라갈 거야 울지 말고 기다려~잉?"
22년 학원을 해오면서 처음으로 겪은 일 중 하나가 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2020년 11월 중3이었던 여학생이 하루 수업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길래 아버님에게(엄마가 돌아가셔서 안 계셨다) 전화를 드렸지만 받지 않으셨다
결석문자를 남겼고 그날 밤 9시가 넘어서 한통의 문자가 왔다
<××가 사망했어요> 그 학생 아빠였다
어제까지 수줍은 미소를 손으로 가리고 어깨까지 긴 머리는 부스스 한채 꾸벅 인사를 하며 학원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와 잽싸게 앉았던 선머슴 같던 아이였다
내가 직접 수업을 한 적은 없지만 중1 때부터 매일 봤던 아이
건강했고 며칠 전에 장염으로 병원에 가느라 지각한 거 말고는 아픈 적이 없었는데...
하루 만에 그 아이는 세상에 없다
아내를 병으로 먼저 보내고 남매를 혼자 키우셨던 아버님
"어떡해요.... 어떡해요..."
어떤 위로의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울고 있는 나를 오히려 위로하시더니 끝내 흐느끼고 계셨다
"... 그동안... 감사했어요 선생님... 우리 애가 학원가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며칠 지나면 죽은 사람은 기억 속으로 이미 사라지고
슬퍼하고 애통하던 모든 사람들은 어느새 그가 원래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아무 일 없이 살아간다
세상과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죽은 사람만 삭제된 것 같다
나도 그럴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나니
힘이 쭉 빠지고 다 귀찮고 될 때로 데라지 죽든지 살든지
그냥........
이젠 쉬고 싶다........
그 생각뿐이었다
백수가 되고 한 달
그렇게 한 달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고 슬금슬금 먹고 살길이걱정됐다
코로나로 전세대출금리는 계속 올라 40만 원으로 시작한 이자가 곧 60만 원을 넘을것 같다
투자해 둔 주식은 곤두박이칠 쳐서 -30% 찍고 있었다
이제 쉬는 게 스트레스가 될 지경이다
내 인생 처음 쉼이라는 걸 하게 됐는데 돈걱정 하다 소중한 시간들이 허무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돈을 버느라 써버린 내 시간들을 되돌릴 수 없다면...
이젠 돈으로 내 시간을 사볼까?
계획이 필요하다
다시 자산을 정리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코로나를 겪으면서 마이너스 통장도 없애고 500만 원 이상 쓰던 카드도 많이 줄였다
빚이라곤 전세대출뿐이었다
학원 정리한 돈과 전세를 월세로 바꾸고 타던 차도 팔았다
월세보증금 3000만 원과 주식투자금을 빼고 현금 1억을 만들었다
십 년 전만 해도 현금 1억만 있으면 걱정이 없겠다 했는데
지금은 현금 1억 갖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것 같다
나 혼자 일 안 하고 3년 먹고살기도 빠듯한돈이다
여행은갈 수 있을까?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라도... 힘들 것이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300만 원이나된다
월세 관리비 국민연금 의료보험 핸드폰, 인터넷요금 실비보험 상조 각종 약정으로 묶인 정수기 공기청정기 침대, 아직 끝나지 않은 안마의자, 노트북 할부금까지
사람 한 명 먹고사는데 뭔 돈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그래! 눈 딱 감고 1억 다 쓸 때까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보자
그럼 다 쓰고 난 다음은 어떻게 하지?
글쎄... 다시 학원을 한다 해도 개원할 돈을 다 써버렸고 공부방을 해야 하나?
아이들이 오십넘은 선생님을 좋아라 할까?
학원에서도 언제부턴가 학생들은 젊은 강사들과 수업하는 걸 더 좋아했다
28살부터 학원을 시작해 50살 22년을 쉬지 않고 해온 일이다
손 놓은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일 안 하고 살아온 것 같다
아주 까마득한 옛날인 듯 이젠 낯설기까지 하다
학원을 개원할 생각만 해도 다시 혈압이 오른다
학원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관계에 치여 스트레스로 병까지 났는데 누군가를 고용하거나 함께 해야 하는 일은 이젠 하고 싶지 않다
혼자 할 수 있는 일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없을까?
새로운 다른 일을 해 볼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하다 주식에 조금씩 투자 한 돈이 4000만 원이나 되었다
다양한 종목에 나누어 투자했지만 1000만 원이 손실 중이었다
이러다 3000만 원 마저도 잃겠다 싶어 1000만 원을 포기하고 손절했다
현금을 많이 갖고 있으면 또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할까 봐
나머지 3000만 원을 노후준비로 장기투자 중인 주식을 추가 매수하고 주식앱을 보지 않기로 했다
전업투자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손실도 복구되고 40% 수익 중이다
백수가 된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던 P원장이 우리 집 근처라고 만나자고 했다
50대 후반이고 학원 개원을 준비 중이다
학원운영에 지쳐 다른 일도 이것저것 해 봤지만 실패를 거듭했고 다시 학원을 개원한다
오래 해왔던 일이고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꽤 안정된 일이니 결국엔 나도 돌아 돌아 제자리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으로도 답답하고 숨이 턱 막히던 그때 블록체인기반으로 하는 공유플랫폼사업이 있는데
투자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주식에만 몰빵 하지 말고 다른 곳에도 투자해서 돈을 분산해야 안전하다는 것이다
올게 왔구나!
다들 퇴직하고 어설프게 아는 지인한테 투자권유받고 그나마 있던 노후자금마저도 다 털리게 된다는
누구나 아는 그 스토리
헛웃음이 나왔지만 원래도 사업투자설명회는 투자와 상관없이 취미로라도(한때는 모델하우스 보러 다니는 게 취미였다) 자주 다녔기에 심심하던 차에 들어나보자 하는 심정으로 따라나섰다
2017년에 아는 지인이 곧 코인시대가 올 거라며 비트코인을 사야 한다고 얘기한 적 있다
그 당시 그 이야기를 흘려 들었고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몇 년 후 비트코인이란 놈은 5000만 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세상은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돼 가고 있다
투자설명회에서 들은 내용은 실체가 없었던 코인 세상의 실체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설명회를 다니며 돈을 절대 벌 수 없는 시스템에 열광하고 투자하는 사람들도 봤고
사기인 게 뻔히 보이는데도 사업을 시작하는 지인들도 봤다
그들에게 그것들이 정말 안 보이는 건가?
의아하기도 했고 그런 빈틈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다
나 자신도 이런 분별능력에 나름 자부심도 있다
그런데....
이 사업설명회는....?
너무 완벽했다!
황홀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플랫폼사업을 만든 회장은 천재가 아닐까?
(며칠 전 온라인으로 들은 회장의 강연에서 천재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은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생각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라는 걸 듣고 감탄했다)
그를 향해 엄지 척을 올리고 와우!!! 를 연발하고 있었다
물론 속으로....
바보야! 너도 별수 없는 멍청이였어!
사기는 이렇게 느닷없이 너의 약한 부분을 훅 치고 들어오는 거야 정신 차려!!
이성과 현실이 내가 환상으로 가고 있는 걸 붙잡았으려 했지만 어림없었다
늙은 건가? 지금 돈을 못 벌고 있어서 마음이 약해졌나?
분별 레이더가 고장 난 건가? 드디어 마지막 남은 재능마저도 갱년기로 무너진 건가?
건강도 안 좋고 모든 것에 무능력한 상태라 어떤 달콤한 유혹도 말라버린 내 세포들을 반짝이게 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온몸의 세포들이 카페인이 잔뜩 들어간 커피를 마신 듯 하나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돈의 전부를 투자하고 말았다
그 돈은 2년 동안의 쉼을 위한 안식처와 같은 것이다
소개한 원장도 놀랐는지 눈이 똥그래지는 걸 애써 감추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 개의 사업을 내게 소개했지만 오히려 돈을 벌 수 없는 사업이라고
그만두라고 말리던 나였다
5650만 원이라는 돈을 한 번에 투자했다
2022년 6월 24일 5만 명대의 투자자의 회원번호를 부여받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사업
출근도 어떤 영업도 판매도 없는데 돈이 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소비만 할 뿐인데 돈을 버는 직업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의 투자는 주위사람들이 날 퇴물취급하기 딱 좋았으며 자신들에게도 소개할까 봐
티 안 나게 손절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결국 내가 폰지사기, 다단계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 많던 지인들 내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는다던 사람들...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고 해야 할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나 혼자만이 행운을 갖게 된걸 나중에 그들이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일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플랫폼 회장은 약속을 충실히 지키고 있고 현재는 투자금 회수를 다 했으며
이제는 투자금에 대한 수익이 매달 들어오고 있다
당당히 세금 내는 프리랜서 사업자가 됐다
공원을 산책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식당에서 샐러드로 식사를 하고 있는 금요일이면
띠리링 알람이 울리며 투자수익금이 들어온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노동하지 않아도 돈이 되는 직업이 있다고 하더니
그게 이거구나!
나의 투자는 나의 쉼을 연장시켜 줄 것이다
이제는 요플레 뚜껑에 뭍은 요구르트를 핥아도 처량해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서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와도 뛰지 않는 여유가 생겼으며
매주 월요일 아침 어디론가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과 자동차를 창문으로 내다보며
기지개를 켜는 행복한 게으름뱅이가 되었다
24살에 아들은 경제적으로 독립한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가끔 용돈도 준다
휴가철인데 바빠서 같이 여행 못 간다고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이라도 가라고 150만 원을 주었다
<남편복 없는 년은 자식복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옛말이 틀릴 때도 있다
은퇴한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이 돈이고
그다음이 건강과 외로움이란다
나는 지금 퇴직해서 새로운 직업도 생겼고
어떤 일도 하지 않는 은퇴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지금 퇴직과 은퇴사이 그 어딘가에서 쉼을 하며 내가 꿈꾸는 은퇴생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