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마다 가는 맛집>
''엄마! 같이 살래? 같이 살아줄까?"
하던 일 관두고 친구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엄마가 안돼 보였는지 오랜만에 본 아들이 나를 떠본다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 졸업을 6개월 남겨 놓고 자퇴를 결정했다
담임선생님은 남은 건 6개월이지만 수업일수만 채우면 졸업할 수 있으니 다시 생각해 보라고 설득하셨다
대학은 몰라도 고등학교 졸업은 해야 한다고
아들은 단호했다
"후회 없겠어?" 한마디 물었다
"응!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자퇴시켜 줘"
초3 때 부모의 이혼을 겪으면서도 나보다 의젓했던 어른 같은 아들이다
하지만 사춘기란 놈은 그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순식간의 최악의 후려 자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렸을 때 참고 있던 모든 울분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듯했다
어찌어찌 사춘기는 지나가고 아들은 안정을 되찾았지만
성적은 이미 회복하기 힘들었다
인문계 진학이 아닌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 것이다
그래도 나름 시킨 게 있는데 잠시 1~2년 방황했다고 대학을 미리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친구관계가 안 좋아서 혼자만 거기로 지원했나?
굳이 집에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먼 곳에 있는 학교에 가려는 걸까?
중학교는 집에서 코앞이었다
5분 거리도 지각을 밥먹듯이 하던 애가 어떻게 다니려고?
궁금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학하곤 중학교때와는 다르게 혼자 일어나 거의 두 시간 걸리는 학교를 잘 다녔다
안심이 됐다
문제는 2학년 때부터였다
학년이 오르고 담임선생님이 바뀌게 되자 점점 학교생활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2학년 때 취득하는 자동차정비기능사도 3학년이 다 돼 가는데도 합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다시 인문계로 갈까?"
헐 뭐냐? 어이없었지만 참고 물었다
"인문계 가고 싶어? 대학 가려고?"
"아니다! 좀 더 생각해 보고"
그리고 시험에 3번째 떨어지고는 아예 학교를 자퇴하겠단다!!!
인문계로 전학도 힘들 것 같으니 그냥 자퇴하고 돈을 버는 게 낫겠다면서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외삼촌과 의논하고는 삼촌 하는 일을 해 보겠다는 것이다
외삼촌을 아빠처럼 따르니 둘이서 의논해 내린 결정인가 보다
그래도 내가 네 엄마다!
"안돼! 학교 관두려면 자동차정비기능사 따고 관두둔지 해"
"관둘 건데 자격증은 왜 따?"
"자격증 못 따고 자퇴하면 자격증 못 따서 자퇴한 줄 알아
당당히 따고도 네 길이 아닌 것 같으면 자퇴시켜 줄게"
"어? 그러네... 그럼 자격증 따면 자퇴시켜 주는 거다"
약속했지만 자격증을 따는 사이 마음이 변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3학년이 되자마자 네 번째에 본시험에서 합격
그리고 약속을 지키는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아들이 중졸이 되는 걸 도왔다
적극적으로..!!!
학원을 운영하는 엄마가 자식도 아닌 애들에게는 공부 잘해서 대학가야 살기 편하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제 자식은 학교를 자퇴를 시켰으니...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이혼할 때 아빠와 살겠다고 가버렸다
보통 엄마와 산다고 하지 않나?
이유는 단 하나 공부하기 싫어서란다
엄마가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킨다는 것이다
떨어져 지내는 몇 달 동안 많이 울었다
아빠랑 살고 싶은 이유가 공부하기 싫어서라니...
왜 이혼하는지 그건 아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섭섭하기도 야속하기도 그 쪼그마한 아이 한데 원망이란 걸 하고 있었다
아들이라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고 딸을 낳았어야 했는데... 별 유치한 생각이 다 났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점점 이주일에 한번 이런저런 이유로 한 달에 한번
만나는 횟수가 줄면서 아이에게서 이상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감지한 외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엄마랑 살면 안 돼?"
아빠랑 단둘이 살 줄 알고 따라갔는데 얼마 전부터 낯선 아줌마랑 같이 살게 됐다는 것이다
아이도 처음엔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려도 새엄마라는 걸 알게 된 거 같다
아이는 그 사실을 할머니에게만 얘기했다
어렸어도 차마 이 사실을 엄마에게는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나 보다
어린애가 얼마나 고민했을까?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냥 엄마랑 살고 싶어 공부도 열심히 할 거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모가 이혼하게 될 때 아이는 부모의 상황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고 살 궁리를 하고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니 그 당시 아이보다 내가 더 불쌍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이의 선택에 화를 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엄마가 자신을 다시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아빠가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반응을 걱정하며 공포에 떨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며칠 밤낮을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었던 것이 아이가 아니라 내가 불쌍해서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 내가 엄마는 맞나?
어이가 없고 창피했다
15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때 울먹이며 목이 메는 것을 애써 참으며 조그맣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던
아이의 표정과 목소리가 지금도 가슴을 묵직한 도끼로 쿵하고 내려 찍는 것 같이 생생하다
숨이 턱 막히고 온몸의 뜨거운 피가 머리꼭대기까지 솟구쳐 폭발해 머리가 텅 빈 것처럼 얼얼했다
아마 그때부터 인 것 같다
같이 살게 되면서부터 중요하게 여기던 공부도 강요하지 않았다
아이에게서 일부로라도 한걸음 떨어져 곁에만 있어주자
아이가 인생을 살면서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자
그 대신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는 것도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후회하지 말 것을 가르쳤다
아들의 인생에 더 이상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
부모의 이혼만으로도 아이의 인생에 너무 많은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그냥 옆에서 아이가 자라고
어른이 되는 동안 지켜주기로 했다
그리고 9살 아들에게 밥 짓기, 계란프라이하기, 라면 끓이기, 설거지,
세탁기, 청소기, 전자레인지사용법 등을 가르쳤다
진짜 사는데 필요한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공부를 하는 것도. 노는 것도. 고등학교 진학과 자퇴도. 아들 스스로 선택하게 놔뒀다
아들은 군대도 지원해서 미성년자로 입대했고 군대에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을 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다큐멘터리감독이었던 삼촌을 도와 각종 심부름도 하면서
편집과 카메라작동법도 배웠다
입대 전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조연출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군대제대 후 그 길도 자기 길이 아니라고 관두고는 갑자기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유명 중식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에 취직했다
군대에서 여러 가지를 경험했는데 그중 취사병을 했을 때 음식을 잘해 포상휴가를 나온 적이 있다
휴가 나와서 요리하는 시늉을 내며 무용담을 늘어놓았었다
그리고 2달이나 다녔을까? 또 자기 길이 아니라고 관두고 이번엔 수능을 보겠단다
일은 잘하고 성실해서 어디서든 누구나 그만두는 걸 아쉬워하며 말렸지만 늘 자기 선택에는 단호했다
뭐를 하든 공부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중학교 때도 안 했고 고등학교도 인문계를 다닌 게 아닌데 아무리 노력한데도
천재가 아닌 이상 대학가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을 지원해 주었다
갭이어라고 해 두자
부잣집 애들만 하라는 법 있나?
수능준비라도 하면서 잠시 멈추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대학에 못 갈지도 모르지만 1년 정도 멈춤은 아들인생에 큰 기회를 주는 시간이 될 거라는 걸 확신했다
이 모든 것이 자기 길을 찾기 위한 과정이니 답답했지만 내버려 두고 아들의 선택을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난 미리 계획했던 대로 아들을 독립시키기 위해 집을 알아봤다
아들이 군대를 제대하면 독립시키겠다고 몇 년 전부터 말해왔다
이제 실천할 때가 온 것이다
부동산에 집을 내놓고 투룸과 원룸을 찾았다
"아들하고 둘 밖에 없는데 같이 안 살고 왜 따로 살아요? 그것도 한건물에서 돈 아깝게? 특이하다"
부동산사장님들의 반응이다
33평 오피스텔을 팔고 굳이 투룸 원룸 전세를 찾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분들이 많았다
"할머니! 엄마가 나 내쫓으려고 해~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돈도 아직 못 버는데~"
아들은 외할머니에게 전화해서 반우는 소리를 해댔다
21살... 겁나겠지!
47살인 엄마도 겁났다면 믿을까?
아들이 군대 가고 처음으로 혼자 살아봤다
33평이 왜 그렇게 넓게 느껴지던지... 혼자 자려면 저 멀리 거실 끝 현관문을 누가 열고 들어 올 것만 같았다
방문을 열어둔 채 현관문 쪽을 향해 보초라도 서는 냥 누워 불을 켜고 선잠을 잤다
작은 소리에도 잠에서 깨기 일쑤였다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았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저절로 나아지는 줄 알았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중년남성 배우에게
'아저씨! 아저씨 나이가 되면 인생을 알게 되나요?' 묻자
'내 나이 되면 피로를 알게 돼'라고 대답하는 광고를 본 적 있다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그대로다
그 사실을 감추고 들키지 않으려니 피로가 쌓이는 게 아닐까?
경험이 여유를 주는 것일 뿐 나이를 먹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여전히 무서운 건 무섭고 못했던 건 여전히 못한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아들의 보호자가 아니라 아들이 내 보호자였구나!
평수가 달라 같은 층을 구할 수 없는데 괜찮냐고 연락이 왔다
툴툴대는 아들을 애써 무시하고 이사를 진행시켰다
솔직히 머릿속으로만 계획할 때 보다 막상 시작하니 후련하기도 했다
지금은 같은 건물이 아닌 다른 동네 오피스텔에 각각 살고 있다
아들은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했다
원하는 대학의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문대라도 가서 나중에 원하는 대학에 편입하는 방법도 있어 재수하는 것보다 그게 나을 수 있고"
위로와 조언을 했다
"전문대 간 친구들 중 졸업한 애들이 거의 없어 중퇴하고 취직 못해 놀거나 헬스트레이너 하거나
중학교 때 엄마가 착하다고 짜장면 사준 애 기억해? 걔는 편입시험 준비를 내가 군대 가기 전부터 했는데
제대할 때까지도 붙지 못해 포기하고 이제 군대 간대"
수능준비 하면서 공부한 걸로 공부는 그만하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 졌단다
그리곤 취업해서 돈을 벌더니 올해 초에는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몇 달 만에 자리 잡았고 아들은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했다
24살 아들이 감사하게도 경제적으로 자립을 해 준 덕에 난 노후 준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과 같은 건물 오피스텔에서 나만 다른 동네로 이사도 할 수 있었다
이제 진짜 혼자 살기를 시작한 것이다
아들이 같이 살까?라고 물을 때 순간 흔들렸지만
단호하고 짧게 대답했다
"아니 괜찮아! 엄마는 행복해!"
"정말? 진짜? 나중에 아들 같이 살아줘~~ 애원해도 소용없어!"
그래 후회하고 같이 살아 달라고 애원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더 늙기 전에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
"아들, 엄마가 오피스텔 얻어줄 때 네가 엄마한테서 독립하는 줄 알았지?
아니야! 엄마가 너한테서 독립하는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