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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특파원 Sep 29. 2024

기자들의 말하기

'유체이탈 화법'을 이용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들





'유체이탈 화법'은 기자들이 왕왕 활용하는 말하기 방식이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 표현한다는 것.


언젠가부터 "~에 따르면"이라는 어구에 귀가 쫑긋해지는 버릇이 생겼다. 


이후 기자들의 말하기에 대해 한 번 써보자,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데...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측면에서 구구절절 설명을 늘여놔보고자 한다.






'위대한 쇼맨' 속 공연평론가


영화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 을 시청한 적 있으신지? 


브런치 독자분들이라면 대개 한 번쯤 보셨을 것이라 추측한다. 글쓰기 즐기는 사람들이란 문화/예술 분야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해당 영화에는 공연평론가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극단이 진행하는 서커스 공연에 대해 '속임수', '사기'라고 혹평하는 그 인물 말이다. 물론 영화 막바지에는 그 태도가 뒤바뀌긴 하는데...


본인이 해당 인물에 눈길이 갔던 건, 그가 구사하는 화법 때문이다. 


작품 중에 잘 나가던 주인공 서커스 극단 건물이 불타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주인공과 평론가가 나눈 대화가 있는데 이 장면을 소개한다.











평론가: 난 당신 쇼를 안 좋아했지만 사람들은 좋아하는 거 같더군요.

주인공: 좋아하죠, 지금도.


(공연평론가가 주머니 속 힙 플라스크 꺼내서 술 한 모금 마심. 그러고는 플라스크를 주인공에게 건넨다. 주인공은 이를 받아 들어 술 한 모금 마시고, 평론가에게 돌려줌.)


평론가: 그래도 (서커스가) 예술이라고는 할 수 없죠.

주인공: 그러시겠죠.


평론가: 하지만... 피부색과 신분을 안 가리고 온갖 다양한 사람들을 무대에 세우는 건 비평가라면 '훌륭한 인간애(Celebration of Humanity)'라고 했을 거요. 

주인공: 좋은 얘기네요.


평론가: 재기하길 빌겠소.











이 장면에서 공연평론가의 말하기 방식은 기자들의 유체이탈 화법과 매우 흡사하다.


구체적으로 "피부색과 신분을 가리고 온갖 다양한 사람들을 무대에 세우는 건, 다른 비평가라면 훌륭한 인간애라고 했을 것"이라는 부분이다. 


'다른 비평가'라는 인물을 전제하면서 말을 건네지만 실상은 본인 주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주인공이 '그 비평가가 누구냐'고 반문한다면 다소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평론가는 술이 든 힙플라스크를 주인공에게 건넸다. 또 "재기하길 빌겠다"고 전하기도 한다. 이는 '훌륭한 인간애'라는 평가에는 본인 주관이 담겨 있음을 나타낸 방증이라고 본다.







왜 기자들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말할까


이와 같은 '유체이탈 화법'은 기자들의 전형적인 말하기 방식이다. (아울러 정치인들도 자주 구사한다)


본인 주장이 있을 때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인용하면서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기자들의 유체이탈 화법은 업무와 연관돼 있다. 이들의 주 업무란 남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정리해 활자화하는 것이다. 듣는 과정이 취재,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게 보도다. 


이 취재/보도 과정에는 기자 개인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들어갈 공간이 없다. 언론은 참여자가 아니라 관찰자이기 때문에. 


다만 기자들은 대개 시사 이슈에 대해서 자기 주장이 확실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취재/보도 과정에서 기자 개인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담길 수 없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다만 자기 주관을 반영할 수는 있다. 자기 생각과 비슷한 인물의 이야기를 기사에 실으면 된다.


가령,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관련 취재/보도를 한다고 하자. 금투세 법안 내용이라거나 추진 경과 상황, 찬/반측 입장 등은 사실 관계의 영역이다. 당연히 보도에 들어가야 할 취재 내용이다.


이때 주목해야 할 부분은 보도 막바지에 등장하는 전문가/현업단체 등의 이야기에 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기자 개인 또는 언론사 측 입장이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언론의 편집 의도와 맞닿은 부분이다.










"~에 따르면"으로 말문 열기


방송 출연한 기자들을 살펴보면 "~에 따르면"으로 말문을 여는 경우가 상당수다. 상황 설명의 경우도 그렇지만 논쟁적인 사안에도 그러는 경우가 있다. 


이는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기' 위함이다. 출처를 먼저 밝히고 이야기함으로써 본인 이야기에 권위,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다.


다만, 이를 일상생활에서도 듣게 되면 약간 '?' 싶을 때가 있다. 논쟁적인 사안에서 상대를 이겨 먹으려고 하는 모습이라거나, 자기 주장에 대한 책임 면피 수단으로써 보일 때가 왕왕 있어서다.






주장에는 언제나 비판 가능성이 수반된다. 


가령 친구 여러 명이 모인 술자리에서 금투세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자. 누군가는 금투세를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금투세 유예(폐지)가 맞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논쟁이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시민들이 금투세 관련 이야기로 갑론을박 벌이는 모습은 바람직해 보인다. 토론과 숙의라는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이런 고상한 이야기가 떠오르며.


그러나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술자리에서 정치나 종교, 부동산 같은 이야기가 지속되면 결국 사달이 난다는 걸. 홍세화 선생은 한국 사회를 두고 "선동은 있지만 설득은 없는 사회"라고 평가한 적 있다. 결국 서로가 자기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 그칠 뿐이다.


이런 논쟁에서 가장 효과적인 주장법이 바로 유체이탈 화법이다. "OOO에 따르면~"으로 말을 시작해서 본인 이야기에 권위를 부여하고, 타인의 입을 빌려 본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다. 


주로 권위자나 관련기관 등의 이야기가 인용되곤 하는데, 상대 입장에서는 해당 이야기에 선뜻 반박하기 꺼려질 수밖에 없다. 개인 입장으로서는 업계 전문가들 이야기를 지적하는 모습과 비슷한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대와 논쟁이 이어질 경우, 유체이탈 화법 구사자는 '내 이야기가 아냐'라고 말하면서 퇴로를 확보할 수도 있다. 


본인 주장에 권위를 더할 수 있고, 논쟁 속 출구전략으로 활용도 가능하다.. 이러한 유체이탈 화법의 장점을 기자들은 잘 안다. 그러다 보니 "~에 따르면"이라는 식으로 말을 꺼내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이다.









객관적 분석, 주관적 기대... 그 사이에서


수십 년 정치 영역을 취재해 온 성한용 기자는 정치부 기자가 어려운 이유로 '객관적 분석'과 '주관적 기대'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꼽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희망이 있기 마련이고, 정치부 기자들 또한 선호정당에 대한 희망 같은 게 있는데, 이러한 희망이 실제 현실과는 꼭 부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때 기자들은 '객관적 분석'으로 포장한 기사에, 타인의 입을 빌려 '주관적 기대'를 반영한다. 이러한 행보는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한 유체이탈 화법과도 연관되는 지점이라고 본다.


유체이탈 화법은 옳고 그름의 영역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답법을 주로 활용했고, 고대 아테네 정치인들은 수사학에 진심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오늘날 기자들에게도 '유체이탈 화법' 경향이 있어 보인다는 게 본인 주장이다.


다만 이 화법을 일상 대화에서 계속 활용하면 바람직할 것 같지는 않다. 대화 상대는 바보가 아니기에 남의 말로 포장한다고 한들 발화자 본인 주장임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따라 유체이탈 화법 구사자는 상대를 말로서 이겨 먹으려는 모습으로만 비치거나, 자기 주장에 대해 '남 이야기'라는 식으로 보험 들어두고 이야기하는 비겁자로서 보일 수 있는 거다.





'위대한 쇼맨' 공연평론가 모습으로 돌아가본다.


평론가는 서커스 극단 단장에게 비판할 때와 응원할 때, 타인의 목소리를 빌리지 않았다. 


본인이 직접 "가짜만 팔아먹는 게 부끄럽지 않냐"고 의사를 피력한다. 이후 "재기하기를 바란다"며 응원을 전할 때도 본인 이야기임을 분명히 했다.


기자라는 직업인으로서는 매번 "~에 따르면"이라고 밝히면서 비록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해야 하는 신세다. 기사 구조 자체가 그렇다. 


다만, 일상생활 속에서는 비록 권위는 부족할지언정 내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자고 다짐해 본다. 그것이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는 인간관계에서 유대감 형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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