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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Nov 30. 2021

나는 고무나무인 걸-고무나무가 바라는 연애와 결혼

콘텐츠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 <We See> vol.1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8살 또래의 여자아이와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딱 봐도 엄마와 딸 사이였다. 두 사람의 머리, 옷 스타일이 비슷했다. 아이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총- 총- 총-. 그 모습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기보다는 다른 풍경을 상상했다. 나의 미래. 내 딸을 만나고 싶다. 나도 언젠가 내 딸과 저렇게 손잡고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얼른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같이 살고 싶다. 나는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전형적인 ‘이성애 여성’으로서의 바람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함께 사는 걸 원하니까 동거를 해도 좋다. 그러나 상대방도 원한다면 굳이 법적으로 묶이는 걸 마다하고 싶진 않다. 날 닮은 아기(생각보다 안 닮을 수도 있지만(?)도 키우고 싶다.      


요즘은 비혼도 많아지는 추세란 걸 안다. 주위 친구들 중에서도 비혼을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고 부부끼리 재밌게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동안은 비혼이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선택하거나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였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가는 중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의 선택도 존중하고 매우 충분히 그 선택을 한 이유도 이해한다.      


추세는 추세고, 나는 나다. 그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 또한 하나의 선택이다. 사람마다 원하는 건 다르다. 그런데 나의 욕망에 대해, 조금 트렌드에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비혼 팟캐스트 소개글에서 “결혼주의자들은 비켜라!”라는 문구를 써둔 걸 보았다. ‘결혼주의자’라는 낯선 단어. 결혼을 하고 싶어 하거나 결혼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일 텐데, 굳이, 결혼주의자가 비켜야 할까……. 내 선택도 선택으로 존중받을 수는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서늘한여름밤(이하 ‘서밤’)이 쓴 『우리의 사랑은 언제 불행해질까』를 읽었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에 경험한 7년간의 사랑의 기록이 담겨있는 책이다. 2020년 30대 초반의 나에게, 정확히 와닿는 이야기였다. 서밤은 그림 일기와 팟캐스트에서 매우 솔직하다. 글에서도 솔직했다. 서밤은 책의 프롤로그에서부터 ‘불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커서 어떤 사랑을 하게 될까? 우리는 더 많은 사랑을 보고 자랐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사랑의 이야기를 나눠본다. 나의 외로움과 조바심, 고통과 실수들도 함께’라고 말한다. 모든 가정이 화목한 것은 아니다. 서밤은, 불화한 가정에서 살아도, 사랑이 많은 가정을 원하고 꾸려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더이상 우리는 불행을 기다리지 말자고.

     

‘외로웠다. 늘 외로웠다. 휴대전화를 붙들고 스팸 문자라도 왔으면 좋겠다고 바랄 정도로 외로웠다. 외로운 게 부끄러워 외롭다 말도 못 했다. 누군가 이런 나를 보고 괜찮다고 안아주길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의존적인 내 모습이 싫었다. 나는 나의 일부를 너무 미워해서 감히 누군가에게 사랑해달라고 꺼내놓을 수가 없었다.’     


 나도 이런 사람이었다. 외롭지만 ‘외롭다’고 말하지는 못 하는 사람. 그래서 공감했다. 이런 모습은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고서는 마음껏 이야기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외로움을 저렇게 많이 타’ 또는 ‘독립적이지 못 하네’라고 바라볼까 봐서다.      


‘어떤 식물은 밀폐형 테라리움 속에서 살지 못한다. 우리 집 거실의 고무나무는 햇살과 바람과 물을 끊임없이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무나무가 고사리에 비해 미성숙한 것인가? 나약한 것인가? 아니다. 고무나무는 그런 종으로 태어난 것이다. 나도 그런 종으로 태어났을 뿐이다. 

     

사람들이 연애를 필요로 하는 정도를 수치로 측정할 수 있다면, 이 수치도 정규분포를 그리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애를 해도 좋지만 안 해도 괜찮아’와 ‘연애를 안 해도 괜찮지만 하면 좋지’에 속해 있다면, 어떤 사람들은 ‘내 삶에 연애는 별로 필요 없어’에 속하고, 또 누군가는 ‘내 삶에 연애는 꼭 필요해!’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너와 나는 ‘내 삶에 연애는 꼭 필요해!’에 속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확실히 그렇다. 다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너는 사랑이 필요한 고무나무라고, 관심과 스킨십과 애정과 따스함을 듬뿍 받으라고 하며 안아주고 싶다.’      


정답을 찾은 기분이랄까. 그래, 나는 사람과의 연결이 필요한, 특히 연애와 결혼이 꼭 필요한 고무나무였어. 속이 시원했다. ‘고사리’처럼 연애 없이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연애하고 싶어 하는 내가 ‘미성숙한 인간’으로 보일까?라며 전전긍긍하던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외로움을 타는 게 어때서, 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사랑을 원하는 고무나무지만,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고향을 떠나 대학을 다니고, 기숙사에 살고, 원룸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혼자 살아가는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는 사랑을, 연애를 원했다. 이는 지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성숙한 게 아닌데, 미성숙하게 보일까 걱정했다. 서밤의 글을 읽고 나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정확히 알고 그 욕구를 스스로 채워 나가려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었다. 독립적으로 혼자만의 삶을 잘 꾸려가며, 자신만의 일을 하며 살아가더라도 함께 나눌 소중한 사람, 연인을 원하니까. 서밤이 ‘내 삶에 연애는 꼭 필요해!’라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서밤이 결혼 생활에서 보이는 태도 또한 멋진 자극이었다. 예를 들면 서밤은 결혼을 하고, ‘명절엔 꼭 시가를 가야 할까?’를 두고 남편과 얘기를 나눈다 명절엔 각자 서로의 집에 가기로 한다. 시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다거나 한 건 아니다. 가더라도 명절이 아닌 때에 가면 되니까. ‘시부모님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보이려고 크게 노력하지는 않는다’고도 말한다. 굳이 명절에 시댁을 갈 필요는 없겠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서밤이 이렇게 행동하니, “웰컴 투 시월드~”라며 “너도 이제 고생 시작”이라던 몇몇 주위 사람들은 우습게도 실망하기도 한다. 심지어 서밤에게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 남편의 아침밥을 차려준다거나, 명절에 시댁에 간다거나 등등 결혼하면 으레 ‘해야만 한다’고 규정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에 대해 서밤은 말한다. 


‘그러나 나는 며느리나 아내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결혼한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랑하는 관계를 통해 더 진실한 내가 되고 싶어서 결혼했다. 결혼이라는 길에 가부장제라는 똥이 널려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그 똥을 더러워서 피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똥을 피하기 위해 내가 가고 싶은 길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더럽고 짜증나더라도 너와 함께 이 똥을 치우면서 갈 것이다.’      


일러스트 ⓒ 별별그림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어간다면, 더욱더 나로서 오롯이 존재하면서도 내 정체성이 확장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고, 결혼하고 싶다. 나도 결혼해서 서밤처럼,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우리만의 방식을 만들어가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제도에 가부장제라는 똥이 있는 걸 알면서도 하고 싶다. 똥이 있다면 똥을 줄여보고, 치워나가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함께.      


“저같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만 사랑에 조바심내고 불안해하고 잘하고 싶은 걸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잘하려다 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다. 시행착오를 안 겪었으면 좋겠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며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 그대로,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외로움을 드러내는 데 부끄러워하던 과거의 나를 보듬어줄 수 있었다. 연애와 결혼을 바라는 현재의 나를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결혼 하고 싶다’가 아니라, 결혼한 이후의 미래 모습도 구체적으로 생각하면서, 힘을 얻기도 했다.     


 서밤처럼 정해진 제도 안에서도 자신의 소신대로, 변화를 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많이 보여지면 좋겠다.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을 지향하면서도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더 많이 드러나길 바란다. 그러면 더 많은 공론장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새로운 대화가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혼에 대해서도, ‘어떤 비혼’을 원하는 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We See》 매거진의 주제를 ‘당신도 비혼 혹은 결혼을 고민하고 있나요?’로 정하기도 했다. 읽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우면서도 괜찮은 자극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가장 찡했던 문장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 싶다. 

     

‘네가 차려준 저녁을 함께 먹는 게 좋다. 전세자금대출을 함께 갚아나가면 갚아볼 만한 것 같다. 내가 너의 법적 보호자가 되고 싶었다. 너의 가족이 내가 되고 나의 가족이 네가 되었으면 했다. 평범하고 따뜻한 가정을 너와 함께 만들고 싶었다. 그래, 남들이 다들 결혼에 대한 환상이라고 비웃는 그런 가정. “너도 결혼해봐. 이렇게 돼”라고 체념하는 사람들이 사는 그런 가정 말고, 사랑하는 사람 둘이서 삶을 공유하고 서로를 다독이는 그런 가정. 나는 그런 가정을 잘 보지 못했지만, 보지 못했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부모의 결혼생활이 엉망이었다고 해서 내가 도전도 못 해볼 이유는 없지 않은가? 부모가 심어놓은 결혼이라는 두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너와 함께라면. (중략)     


 그러나 오늘은, 사랑하는 오늘이 있다.

 결혼은 믿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믿는다.’ 




구보라 

보고 듣고 씁니다. 부드럽고 단단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인스타그램 @9_bora




이 글은 2020년 10월 20일에 출간된, 독립 매거진 <We See> vol.1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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