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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Feb 16. 2020

술에 대한 넘치는 애정 그리고 맛깔나는 글!

『오늘 뭐 먹지?』(권여선, 한겨레출판, 2018)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고, 에세이 읽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술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였을까. ‘권여선 음식 산문집’이라 적힌 『오늘 뭐 먹지?』를 도서관에서 발견하고선 바로 펼쳐들었다. 들어가는 말부터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많아도 맛없는 안주는 없다.’

‘“오늘 안주 뭐 먹지?” 고작 두 글자 첨가했을 뿐인데 문장에 생기가 돌고 윤기가 흐르고 훅 치고 들어오는 힘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만큼이나 술에 대한 애정이 강한 작가라니! 이렇게나 글이 맛깔나다니! 누군가에겐 맛있는 밥 반찬도 그에겐 맛난 안주다. 모든 음식을 안주화하고 해장용으로 바라본다. 순댓국에 소주, 500원짜리 파전에 소주, 김치제육볶음에 막걸리, 꼬막조림에 소주까지. 심지어 만두는 막걸리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는 걸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지금 입맛을 보면 믿기 어렵지만 권여선 작가는 어려서 편식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주와 입맛이 함께 무럭무럭 자라났다.      


『오늘 뭐 먹지?』에서 모든 음식이 술과 함께 소개되는 건 아니다. 통김밥, 흰죽에 젓갈, 냉잔치국수, 호박잎쌈에 깡장, 까죽무침, 냄비국수, 고로케, 햅쌀밥에 갈치조림, 남자친구와 먹었던 감자탕 첫 국물까지……. 맛있고 다양한 음식들이 맛깔나게 묘사된다. 맛과 함께한 추억 이야기까지 읽다 보면 자연스레 입맛을 다시게 된다. 8년째 자취를 하며, 밥 먹을 때도 술 곁들이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공감하며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음식이든 소주 한 병을 곁들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작가의 태도에 반해버렸다.     


작가는 먹는 걸 좋아하는 만큼, 요리도 즐긴다. 대부분 음식을 시켜 먹는 자취 첫날, 그는 소고깃국을 끓이고 꼬막에 양념장을 듬뿍 넣어 조린다. 이 음식에 물론, 소주를 곁들여 먹었다. 다른 사람이 요리한 음식을 음미하는 미식도 있지만 권 작가는 책에 언급한 음식의 대부분을 직접 요리해먹는다. 그래서 식재료와 요리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애정이 듬뿍 느껴진다.      


그렇지만 권여선 작가는 요리를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기지 않는다. 다른 이들에게 이를 강요하는 태도 또한 절대 없다. 집밥이라 하면 무조건 맛있다는 확신을 지니고, 향수에 젖은 표정을 짓는 사람들의 태도를 향해, ‘순전히 집밥을 하지는 않고 먹고만 싶어 하는 사람들의 환상’이라 말한다. 또 ‘“오늘 뭐 먹지?”라는 잔잔한 기대가 “오늘 뭐 해 먹지?”로 바뀌는 순간 무거운 의무가 된다’고 짚어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밥은 소박하지만 맛깔난 손맛이 담긴 밥상을 의미한다. 집밥이란 말을 들으면 누구나 향수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입속에 고인 침을 조용히 삼키는데, 이건 순전히 집밥을 하지는 않고 먹고만 싶어 하는 사람들의 환상이 아닐까 싶다. “오늘 뭐 먹지?”라는 잔잔한 기대가 “오늘 뭐 해 먹지?”로 바뀌는 순간 무거운 의무가 된다. 집에서 해 먹는 게 집밥이라면, 집집마다 그 집 부엌칼을 쥔 사람이 다른데 어떻게 그게 죄다 소박하면서 맛깔날 수 있단 말인가. 집밥이 무조건 맛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옳지는 않다.’ (207)


이렇게 음식을 만들고, 먹고, 나누는 기쁨 그리고 고단함과 의무감까지도 알고 있는 사람의 글이기에, 더 깊이 있고 맛깔날 수밖에 없는 책이다. 자취방에 독립한 첫날의 풍경을 적어둔 210페이지의 구절도 참 좋아하는데, 특히나 그 마지막 부분이 제일 좋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드디어 어머니의 집밥의 시대가 끝나고 내 집밥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앞으로 집밥을 좋아하게 될지 싫어하게 될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내 손에 달렸다는 것을.’ 


삶의 단단함과 내공이 느껴진다. (나도 이미 나 스스로, 내 집밥의 시대를 열었고 다행히도 내가 만든 집밥을 좋아한다.)      


한 편 한 편을 아껴가며 읽다 보니 마지막 장에서는 무척 아쉬웠다. 책에서 설명한 음식을 아직 직접 만들어보지는 못했다. 핑계 삼아 책을 다시 보고 고민한다.


 ‘오늘 뭐 해 먹지?’     



<오늘 뭐 먹지?> 책 속 한 부분 


지난해 7월에 썼던 서평 에세이입니다. 7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며 조금 수정하고 올려봅니다. 이번주 또한 집에서 밥을 많이 해 먹었고, 그래서 몸과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글을 올리기 전 오랜만에 <오늘 뭐 먹지?>를 펼쳤는데 역시나 이 책은... 너무나 배고프게 만드네요. 책에 나온 요리를 이번주에 한 개라도 꼭 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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