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뮤익(Ron Mueck) 전시
조각전시는 그림이나 영상 등의 전시보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특히 조각만으로 구성된 개인전은 더 기회가 적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25년 4월 11일부터 7월 13일까지 예정된 호주 출신 작가 론 뮤익의 대규모 조각 개인전을 보았다. 작가의 작품전은 여러 나라에서 순회로 열리는데 좋은 기회로 한국에서 볼 수 있었다.
작가는 호주출신으로 1958년 멜버른에서 태어나 1986년부터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일상적 주제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현대조각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정의했다고 평가받는데, 전시를 보고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작품들이 극도로 생생하고, 현실적이지만 강렬하며 생명체와 시공간 그리고 주변환경과 감정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느낀 작품을 하나만 소개하면 '치킨/맨(Chicken/Man)'이다. 실제크기의 절반정도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식탁에서 한 노인이 살아있을 것 같이 생생하게 표현된 한 마리의 흰색닭과 대치하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을 표현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생각보다 작지만 사실적으로 표현한 '사람, 식탁, 닭'의 크기만으로도 신기했다. 그러다가 자세히 보니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왜 살아있을 것 같은 닭으로 표현했을까?"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나였다면 어떤 마음으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살아있는 닭이 반려동물 처럼느껴졌다면 지금처럼 닭의 희생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닭이 "이래도 나를 잡아먹을 건가요?"라고 노인에게 묻는 장면일 수도 있다. "왜 남성이고 노인이었을까?" 이 질문에는 작가 자신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인은 왜 옷을 벗고 있고 닭은 옷을 입었을까?"라는 스스로의 질문을 하며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깜짝 놀랐다. "작가는 서로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했을 수도 있겠구나?"사람이 닭이 되어 식탁에 오르고 닭은 사람을 어떻게 요리할지 생각하는 장면일 수 있겠다. 결국 작가가 평소에 닭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으로 작품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정리되었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작품을 대하는 관객 각자의 몫이니, 나의 생각은 이쯤에서 정리해야겠다. 다른 작품들도 관객을 철학자로 만드는 힘이 있다.
작품들은 일상적 경험들을 작가의 시선으로 담아 예상을 벗어난 크기로 표현하는데, 관객에게 놀라움과 새로운 경험을 준다. 대부분 누구나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주제인 것 같은데, 크기의 변화만으로도 충격적인 느낌을 준다. 30여 년에 걸쳐 완성된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 50점이 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들을 마주하다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수치다. 작품의 극사실적 표현의 뒤편에는 집요한 완성도와 예술적 표현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리고 전통적인 조소의 제작방식과 현대적 재료와 기법으로 정밀하게 조각된 작품들은 주로 생명체인 대상의 감정까지 생생하게 담아낸다. 작품마다 새로운 시도로 한 땀 한 땀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이다 보니 제작자체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들이다.
제작일지를 다큐형식으로 제작한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갤러리 내 지하 깊숙한 공간에서 복잡한 세상일을 잠시 잊을 수 있게 작가의 스튜디오와 작업 환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작가의 작업 과정을 기록한 시간과 과정을 담은 기록이지만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 시간 넘게 보았다. 대부분의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1/10, 1/2 사이즈 등의 스케일 모형들을 만들고 실제작품을 만들 때는 거푸집이 되는 틀을 만들어 실제에 가까운 색상의 실리콘을 붓으로 여러 겹 칠하듯이 작업한다. 이 과정에서 분야별로 전문성이 있는 스텝들의 도움을 받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영상에서 작가가 자신의 거주공간 발코니에서 실제 새를 만나는 장면과, 소만큼 큰 닭을 주제로 하는 또 다른 작품과 제작과정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니 작가가 닭을 주제로 한 이유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에 좀 더 가까워졌다. 큰 작품은 현장에서 조립할 수 있도록 분리해서 작품을 완성한다. 이런 사실은 영상을 보지 않았다면, 추측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작품이 사실적이라서 작가의 작품을 대하는 치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를 보니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는 방식이 궁금해졌다. 실제로 제작을 위해 작업하는 장면을 대부분 보여주고 작품구상을 하는 과정은 별로 없다. 바닷가를 산책하거나 작업실에 놀러 오는 새와 교감하는 등의 매우 일상적인 것들이 보이는 전부다. 아마도 작가는 일상에서 경험에 자신의 추측이나 상상을 더해서 작품을 구상하는 것 같다.
이번전시를 통하여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조각이라는 장르에 론뮤익스타일을 하나 더 추가했다. 자신만의 은유적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같은 작품을 접하는 다른 분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