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회사 생활은 대학 때와는 다른 어려운 점들이 많았다. 나는 일본 항공사 지상직 승무원으로 일하게 됐는데, 상상 이상으로 공부할 것도 많았고 체력적, 정신적으로도 이겨내야 할 점들도 많았다. 일 끝나고 집에 와서 맥주 한 캔 마시면서 남자 친구랑 전화하는 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신입 시절 때,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펑펑 울면서 전화했는데, 그는 휴가 때 호주로 놀러 오는 건 어떻냐고 물었다. 우리 회사의 복지 중 제일 마음에 드는 점이 '사원 티켓'이다. 공석이 있으면 싼 가격으로 티켓을 살 수 있었는데, 다들 호주보다 더 먼 노선인 미국이나 유럽 행을 사는데, 나는 바로 호주 편 티켓을 구매해서 시드니로 떠났다.
도쿄에서 시드니까지 약 8시간 반.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는 한국/일본이랑 정반대의 날씨라, 짐을 꺼내고 공항 밖을 나오니 3월의 시드니는 더운 여름이었다. 공항에서 남자 친구를 만나고 남자 친구 집으로 차 타고 밖을 보는데, 그때 나는 이미 호주에 반했었다.
회색빛이 도는 건물들, 기계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공항 밖에는 활주로와 24시간 오고 가는 비행기들 모습만 매일 보다가 자연과 맑은 하늘, 자유롭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니 입사하고 처음으로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호주에 반했던 것 그뿐만이 아니다. 남자 친구 집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인사드려야 할지 몰라서 긴장을 엄청 했는데, 어머니는 따스하게 반겨주면서 안아주셨다. 이후에도 내가 호주로 놀러 갈 때마다, 남자 친구 집에 인사드리러 갔는데, 부모님뿐만 아니라 동생들이 항상 밝게 내 이름을 불러주면서 반겨주고 음식도 같이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화상 전화 걸면 그의 가족들 돌아가면서 안부 인사랑 이야기를 나누는데 너무 재밌다. 한 번 전화하면 1시간 이상 통화하는데, 다들 걱정해주고 내가 고민 있으면 들어주면서 조언도 해주시고... 진짜 항상 고맙고 배울 점이 많은 가족이다.
나는 회사 생활하면서 휴가가 나면 호주로 자주 놀러 갔다. 한 번은 혼자 여행으로 멜버른+시드니 여행을 갔는데, 호주는 각 지역마다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멜버른은 개성 많은 카페들도 많아서 혼자서 브런치 즐기는 게 정말 좋았다. 그가 왜 일본의 도토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 이해가 됐다. 설명할 수 없지만 호주의 커피는 확실히 다르고 맛있다!
호주에서 여행을 즐기면서 거기서 친구들도 사귄다. 거기서 어쩌다가 친해진 호주-일본인 혼혈 친구랑 정말 친해져서, 일본에서도 만나기도 했는데, 내가 회사나 영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그 친구가 해 준 말이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그냥 너의 인생이야. 주변 신경 쓰지 말고 너의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
그때 머리에 번개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일본에서만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은 일본과 한국만 있는 건 아닌데... 후회 없이 살자. 이 한마디가 왜 이리 충격을 줬을까.
그렇게 호주에서 나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호주의 매력에 빠진다. 나 또한 호주의 여유롭고 다채로운 매력에 빠져버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호주에서 휴가를 끝내고 일본에 돌아왔을 때 나는 결심했다.
일본에서 어느정도 돈이 모이면 일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호주로 가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