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서럽다고 말해도 되는 곳
이혼 후 부모님 집에 얹혀 산 지도 벌써 7개월이 지났다. 원래 살던 집은 그대로 비워두었고, 그 사이 나는 아이와 함께 부모님의 품 안에서 지내고 있다. 아이를 돌보는 일, 집안일, 여러모로 도와주시는 두 분 덕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부모님의 쾌적하고 넓은 집은 이제 온통 아기 장난감과 물건들로 가득 찼고, 그 때문에 기존 가구를 옮기거나 아예 버리기도 했지만, 부모님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게 늘 감사했다.
이혼하고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일이 그저 편하고 행복하기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보다 괜찮은 나날들이 이어졌고, 반년이 넘도록 큰 충돌 없이 잘 지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 너무 힘들다. 아주 조용히, 갑자기 찾아오는 그 부정적인 기운에 휩싸일 때면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다.
특히 엄마. 엄마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누구보다 희생적이고 누구보다 철두철미하다. 동시에, 누구보다 완벽주의적이다. 엄마의 그런 성향은 나를 안심시켜주는 든든함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를 숨 막히게 하는 옥죄임이 된다.
엄마는 고맙다, 좋다, 행복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대신 뭐가 부족한지, 누가 잘못했는지를 먼저 짚는다. 그건 아마 엄마도 스스로를 그렇게 대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나 역시, 그런 엄마에게 자라며 완벽주의가 몸에 밴 듯하다. 전남편도 내 그런 모습에 지쳐 있었고, 나도 내 성향이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메타인지하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내려놓으려 애쓰며 살아왔다.
하지만 환갑이 넘은 엄마는 자신이 그런 태도로 타인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이 내게는 참으로 고통스럽다. 뭘 해도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 엄마는 스스로 무리해서 뭔가를 하시고, 결국엔 아프다고 끙끙 앓는다. 그러고는 내가 걱정 섞인 말 한마디라도 하면 “시끄럽다”며 대화를 차단해버린다.
많은 경상도 어머니들이 이런 모습일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의 이혼은 어쩌면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자존감이 낮은 아이였다. 칭찬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고, 시험에서 100점을 맞아야만 부모님에게서 겨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내가, 과연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고 또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다행히도 나는 성인이 되어 좋은 연인과 지인들을 만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많았다. 직업 특성상 그런 성찰의 순간들이 내 삶에 자주 찾아왔고, 그 덕분에 나는 점점 나를 이해하고 보듬는 법을 배웠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조금씩 성장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오만하게도 결혼도 내 뜻대로 될 줄 알았다.
물론, 유책 사유는 그 사람에게 있었지만, 나는 그 결혼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내가 좋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운이 나빴던 걸까?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지금 나는 부모님께 불평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의 공간에 얹혀 지내며, 아이까지 떠맡긴 채 살아가는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서럽다고 느끼는 것조차, 내겐 허락되지 않은 감정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글만큼은 말하고 싶다.
서럽다고.
정말, 그냥 한 번쯤은 서럽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