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자산이냐 효도냐?
오늘은 참 이상했다. 이제는 남편이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토록 복잡하고 얽혀 있던 마음이 단순해져서일까? 아니면 정말로 내가 이제 그에게서 완전히 멀어졌기 때문일까? 오히려 머릿속에는 오직 이혼 서류를 빨리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게는 이 일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나는 정말 어이없는 걱정까지 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해서 이혼 서류 처리가 지연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스스로도 우스웠다. 얼마나 이혼을 끝내고 싶어 했으면 이런 엉뚱한 걱정까지 하게 된 걸까.
그런데, 그런 결단력과 상관없이 현실은 내게 또 다른 무게를 안겼다. 아이를 혼자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오늘 하루도 절실히 깨달았다. 베이비룸을 설치해야 해서 거실을 정리했는데, 그 과정에서 친정아버지의 공간을 차지한 기분이 들었다. 거실은 아버지의 주요 활동 공간이었다. 매일 거기서 시간을 보내시던 아버지가 좁아진 공간에서 불편해하실까 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부모님 집에서 도움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 도움의 대가로 부모님의 일상에 불편을 드리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 모습을 보며 새로운 고민이 떠올랐다.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있는 더 넉넉한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건 아닐까? 대형 평수의 구축 아파트라면 가족 모두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자산 보전과 투자를 생각하면, 신축 30평대 아파트가 더 나은 선택처럼 보였다. 이혼이라는 선택으로 인해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진 지금, 나와 아이의 삶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결정이 무엇일지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혼하지 않았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학군을 우선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를 더 좋은 학군에서 키우는 것이 당연한 목표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학군만을 최우선으로 할 수 없었다. 나의 경제적 상황, 부모님과의 동거, 그리고 아이와 내가 함께 살아갈 삶의 전반적인 안정성을 모두 고려해야 했다. 모든 선택이 무겁게 느껴졌고, 내 마음은 끝없는 회의 속에 빠졌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조금 다른 바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주 좋은 학군이 아니더라도, 아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이었다. 학군이 좋지 않은 곳에서라도 아이가 밝고 튼튼하게 자라줄 수 있다면, 그 이상의 바람이 있을까 싶었다. 그 생각은 잠시나마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줬다. 하지만 현실적인 고민은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오늘 하루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흔들리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다. 모든 것을 계산하려 들면 끝이 없을 테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단순했다. 아이와 내가 함께 평안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집,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 단순한 목표조차도 지금의 내게는 수많은 고민과 선택을 요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