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Notre Dame)

by 오시프 예밀리예비치 만젤시땀

by 김양훈

노트르담(Notre Dame)

오시프 만젤시땀


로마의 판관이 이민족을 재판하던 자리에

바실리카¹가 서 있다. 언젠가의 아담처럼

기쁨에 찬 최초의 존재로서

-신경을 층층이 가른 채

십자가 그려진 가벼운 천장은

-근육을 놀리고 있다.

그러나 비밀스러운 계획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법,

여기서 말(馬)의 복대(腹帶) 같은 아치의 힘은

육중한 무게가 벽을 부술까 염려했으나,

대담한 천장의 서까래는 꿈쩍도 않는다.

불가항력의 미궁, 불가해의 숲,

고딕의 혼이 깃든 이성의 심연,

이집트의 위력과 그리스도교의 수줍음,

갈대와 나란히 참나무, 곳곳에 황제―수직추


그러나 노트르담 성채여, 내가 더 주의 깊게

너의 거대한 늑골을 연구할수록―

나는 더 자주 생각했다. 사악한 중력으로

나 언젠가 아름다움을 창조하겠노라고… (1912)

[註1]바실리카(Basilica): 고대 로마의 건물 양식. 내부가 끝에서 끝까지 텅 빈 강당으로 되어 있는 직사각형의 건물로, 늘어서 있는 기둥들에 의해 회랑과 중앙이 구분된다.
The Papal Basilica of St. Paul outside the Walls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39)


러시아 아크메이즘(Acmeism) 문학의 거장, 오시프 만젤시땀(Osip Mandelstam)의 초기 작품인 「노트르담」은 단순히 건축물에 대한 찬사를 넘어, 시적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1912년 완성되어 1913년 시집 『돌(Kamen)』에 수록된 이 시의 배경과 평론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창작 배경: 아크메이즘과 '돌'의 미학

이 시가 쓰인 1910년대 초반 러시아 시단은 모호하고 형이상학적인 상징주의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발하며 등장한 유파가 바로 만젤시땀이 속한 아크메이즘입니다.

▪ 상징주의로부터의 탈피: 만젤시땀은 안개처럼 뿌연 상징 대신, 손에 잡힐 듯한 구체적인 사물성과 명징함을 지향했습니다.

▪ 건축적 시학: 아크메이스트들은 시인을 '건축가'에 비유했습니다. 그들에게 시는 영감의 산물이 아니라, 단단한 '돌'을 깎고 쌓아 올리는 정교한 노동의 산물이어야 했습니다.

▪ 유럽 문화와의 조우: 유대계 러시아인이었던 만젤시땀은 유럽 여행을 통해 서구 문명의 근간인 로마와 고딕 양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며 시간의 층위가 겹친 인류 문명의 결정체를 발견했습니다.

2. 시 평론: 중력을 이겨낸 이성의 승리

역사의 적층과 문화적 연속성

제1연에서 시인은 성당이 들어선 자리가 과거 '로마의 판관'이 있던 곳임을 상기시킵니다. 이는 기독교 문화가 이교도 로마의 문화를 흡수하며 발전했음을 보여줍니다. 시인에게 노트르담은 단순한 교회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지층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유기체입니다.

역학적 긴장: 무게와 힘의 균형

이 시의 백미는 제2연과 제4연에 나타난 '중력'에 대한 통찰입니다.

▪ 복대 같은 아치: 거대한 석조 건물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 설계된 아치의 힘을 말의 복대에 비유하며, 물리적인 힘과 예술적 형태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묘사합니다.

▪ 사악한 중력: 중력은 사물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소멸의 힘이지만, 건축가 혹은 시인은 이 중력을 역이용해 하늘로 솟구치는 고딕 양식을 완성합니다.

이성의 심연과 고딕의 혼

제3연은 대립하는 가치들의 공존을 노래합니다.

"이집트의 위력과 그리스도교의 수줍음, 갈대와 나란히 참나무."

이는 고딕 건축이 지닌 복합성을 의미합니다. 육중한 돌(이집트적 위력)이면서도 하늘을 향해 가늘게 뻗은 섬세함(그리스도교적 수줍음)을 동시에 지닌 노트르담은, 혼돈을 질서로 바꾼 '이성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3. 결론: "나 언젠가 아름다움을 창조하겠노라고"

마지막 연에서 시인의 시선은 건축물에서 시인인 자신에게로 옮겨옵니다. 성당의 '늑골(rib vaults)'을 연구하는 행위는 곧 시를 쓰는 행위와 직결됩니다.

▪ 사악한 중력으로 창조하는 미: 시인은 언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사람입니다. 말은 중력처럼 땅에 붙어 있고 세속적이지만, 시인은 그 무거운 언어들을 조립하여 ‘노트르담 성당처럼 거룩하고 아름다운 예술적 구조물을 세우겠다’라는 다짐을 하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한 줄 평:

시(詩) 「노트르담」은 중력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예술적 의지로 극복해 낸 '돌의 서사시'이며, 만젤시땀이 선포한 독자적인 예술론의 서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덧]

33년 전 보았던
불 타기 이전의 노트르담
눈부신 노트르담의 아침햇살... 모녀. 1993년 여름 파리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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