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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Jul 25. 2024

도둑

-니콜라이 네크라소프(1821년~1878)

도둑

       니콜라이 네크라소프    

 

즐거운 파티에 초대받아

지독히도 더러운 거리를 바삐 지나가다가

어제 나는 천한 장면을 보고 충격받았다

흰 빵 한 개를 도둑맞은 가게 주인이

벌벌 떨면서 하얗게 질린 채 

갑자기 크게 울부짖으며,

가게에서 튀어나와 소리 질렀다. 

'도둑놈 잡아라!‘     


도둑은 금세 둘러싸여 잡혔다. 그런데,

한 입 베어 문 빵이 그 손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는 맨발에 더러운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고

병색이 남아 있는 얼굴에는 

수치와 절망과 애걸과 

공포의 흔적이 뚜렷하였다.

지서장이 와서 부하를 부르고 

사건을 조목조목 훌륭하게 수사하여

도둑을 경찰서로 위세당당 데려갔다.  

   

나는 마부에게 외쳤다, '자, 가자!'…

그리고 내게 유산이 남겨진 데 대하여

황급히 신에게 감사 기도드렸다.     

‘진리란 무엇인가’, 1890년, 니콜라이 게(1831-1894) , 캔버스에 유채, 233х171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니콜라이 알렉세예비치 네크라소프(Николай Алексеевич Некрасов/Nikolay Nekrasov, 1821년~1878년)는 러시아의 시인, 작가, 평론가, 잡지 편집자이다.     


니콜라이 네크라소프는 1821년 12월 10일에 러시아 제국 포돌리아현 네미로프(현재의 우크라이나 빈니차주 네미리우)에서 지주 귀족 출신의 러시아 제국 육군 장교인 알렉세이 세르게예비치 네크라소프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볼가강 연안과 접한 러시아 야로슬라블주 그레시네보 마을에 있는 세습 영지에서 살았다.     


1832년에는 야로슬라블 김나지움에 입학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중퇴했고, 열일곱 살인 1838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했다.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아버지였던 알렉세이 네크라소프는 아들이 군인 되기를 원했지만, 니콜라이 네크라소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청강생으로 들어갔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니콜라이에게 송금을 끊어버렸다. 이는 니콜라이 네크라소프가 대학교를 중퇴하고 집필 활동에 전념하는 계기가 된다.     


니콜라이 네크라소프는 난폭하고 거친 성격을 가진 아버지가 농노를 학대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농노의 아픔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을 집필했다. 1840년에는 자신의 첫 시집인 《꿈과 울림》(Mechty i Zvuki)을 출간했고 1847년에는 표트르 플레트뇨프로부터 문학 잡지 《소브레멘니크》(Sovremennik, 현대인)를 인수하고 문학 평론가, 잡지 편집자로 활동했다.     


문학 잡지 《소브레멘니크》는 비사리온 벨린스키, 이반 투르게네프, 레프 톨스토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급진주의 문학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1866년에 알렉산드르 2세 황제 암살 시도 사건을 계기로 발매가 금지되었다. 1868년에는 미하일 살티코프셰드린과 함께 문학 잡지 《오테체스트벤니예 자피스키》(Otechestvennye Zapiski, 조국의 수기)를 인수하고 편집자,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1878년 1월 8일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유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노보데비치 묘지에 안치되었다. <위키백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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