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4 3문학회

잘, 살아야 한다

by 김현희-4·3문학회 문집 특별기획 「제주4·3과 나」中

by 김양훈
제주 바람이 분다.
잘, 살아야 한다.
(…)

그렇게 제주 신화를 공부하며 보낸 과정들이 제주도를 알아가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4·3문학회’에 들어갔다. 신화로만 알아가던 제주도를 4·3 관련 문학과 비문학 작품을 읽고 토론하고 다크투어를 하며 좀 더 현실감 있게 받아들였다. 학교와 집만 오고 가던 내가 현장에서 치열하게 맞서 투쟁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여러 역사의 폭압들을 구체적으로 알아가고 듣게 되었을 때, 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미미하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뭘까, 하는 생각들을 처음으로 가지게 된 계기였다.


공권력이 무차별적인 민간학살, 반공 우익 세력의 집요한 역사 탄압과 왜곡, 그리고 미국의 개입, 거기에 편승해 배를 불렸던 사람들과 그 무모한 재력이나 지위로 부모의 대를 이어 현재까지 잇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던 나와 다를 것 없음에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 고향 광주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한때 나는 지긋지긋한 광주를 벗어나고 싶어 안달했고 결국 대학을 서울로 왔다. 애향심이라곤 없었다. 하지만 제주4·3 문학에 점점 발 들여놓으면서 설문대할망의 외로움을 떠올렸고, 제주인들의 숨소리를 의식하게 되면서 생각이 차츰 달라져 갔다. 40년 세월 간격이지만 제주4·3과 광주 5·18은 여러 교집합을 가진다는 걸 알게 되었고, 두 사건 다 한국 정부에 대항한 민중항쟁사였음을 깨달았다.


무장 민중봉기로 자유 투쟁을 했던 사람들을 ‘폭동’으로 몰아 억압했던 위정자들, 이런 위정자들은 무고한 양민을 학살 순간으로 끝내지 않고 긴 시간 역사 탄압으로 이어갔다. 이런 사실들을 볼 때 제주의 붉은 섬이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타원형의 세상은 나에게는 이제 낯선 세상이 아니었다.


그 타원형의 공간에서 바람을 마셨다 뱉으며 숨소리를 의식하게 되듯이 제주도를, 아니, 핍박받은 그 어디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우선 시급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목조목한 99개의 골짜기에 360개의 오름과 한라산의 신들이 쉬어 가는 쉼터와 마치 요정들이 내려앉을 것 같은 비자림과 그 외 제주에 있는 천혜 자연들을 떠올리면서 더욱더 애잔한 마음이 든다. 이들을 지켜내고 가꾸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것과 직결된다는 것도.


이렇듯 생명의 쇠퇴와 갱신, 그리고 환생꽃으로 피어날 제주와 4·3의 희생자들을 내 가슴에 품어 보는 일은 나를 한층 성장시키는 시간들이었다. 제주 설문대할망의 외로움은 4·3 희생자와 유족들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 셈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란 문장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철학자요, 슬픈 눈동자를 가진 폴 발레리의 문장이다.


이런 발레리의 문장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제주의 바람 때문일까, 아니면 4·3의 아픈 역사 때문일까?


나 역시 폴 발레리의 문장 위에 이런 말을 덧붙여 본다.


“제주 바람이 분다. 잘, 살아야 한다.”


-특별기획 「제주4·3과 나」 (김현희의 ‘잘, 살아야 한다’) 中 발췌

*김현희는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다. <넌 문제아>로 <아동문학세상> 57호 신인 장편상으로 등단. 서울 도봉구 도서관 정책 위원을 맡고 있고, 4.3문학회 회원이다. <나는 강아지 날개>, <오월>, <그 푸르던 날에>, <팥빵 먹을래, 크림빵 먹을래> 등 여덟 권의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출간했다.
4·3문학회는, 문학을 통해 제주4·3의 진실을 찾아가는 서울 지역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17년 4월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화산도』 읽기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2021년부터는 4·3관련 자료와 작품 전반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확장하고. 이름을 ‘4·3문학회’로 바꿨다. 월 1회 정기모임을 8년째 이어 가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 명이고 회장은 양경인, 좌장은 김정주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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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의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