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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Nov 19. 2023

제주인 감별법

2019년 3월 28일 한라일보 <김양훈의 한라시론>

조상 대대로 제주도에서 살았다고 하더라도
제주의 자연을 자신의 돈벌이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육지것이며,
비록 어제부터 제주에서 살게 되었다 하더라도
제주의 자연을 생명처럼 아낀다면 그는 제주인이다.

지난달 25일 오전 10시, 제주에 지역구를 둔 여당 국회의원들이 원희룡 지사와 정책협의회를 갖기 위해 제주도청을 방문했다. 세 명의 국회의원 중 맨 마지막으로 도청 청사로 들어가던 강창일 의원과 제2공항 반대 천막촌 시위대 사이에 뜻밖의 설전이 벌어졌다. 언쟁의 발단은 시위대와 승강이 끝에 ”제주도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던 강창일 의원의 엇된 한마디 때문이었다. 천막촌 시위대는 ”제주도에 살고 있으면 모두 제주도민이다. 무슨 막말을 하느냐“고 맞받아쳤다. 제주인 같지 않다는 말 한마디에 시위대는 왜 그리 뜨겁게 반응했을까? 제주사람도 아닌 육지것들이 왜 여기서 시끄럽게 설치냐는 뜻으로 들렸는지도 모른다. 


제주 사람들이 외지인에 대해 유달리 배타적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배타심에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묻어있다. ‘육지것’이란 뒷담화는 한반도로부터 당한 역사적 피해의식의 퇴적물이다. 19세기 이후 일어난 제주의 민란은 그러한 피해의식의 단초를 말해준다. 양제해(梁濟海) 모변사건, 임술민란, 방성칠의 난, 이재수(李在秀)의 난,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제주4·3항쟁은 각기 다른 여러 원인으로 촉발되었지만, 민란의 저변에는 외부세력에 대한 저항이 깔려 있다. 


언제부터인가 섬사람들은 외지인을 ‘육지것’이라 경계하며, 앞에서는 어쩌지 못하고 뒤에서 수군거렸다. 탐라에 대한 몽골 100년의 지배가 낳은 ‘몽근놈’이란 소심한 욕지거리는 육지것의 원조일지도 모른다. 척박한 유배지의 섬 제주는 고려부터 조선조까지 이어진 수탈과 멸시의 땅이었다. 오늘날 섬사람들이 뱉는 육지것이란 빈정거림에 이주민들은 비위가 뒤틀린다. 제주의 거친 역사를 제대로 알고 이해라도 한다면 역지사지(易地思之)라도 하련만, 이 조그만 섬나라 변방의 역사를 제도교육은 조근조근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어떻게 제주인과 육지것을 한눈에 감별하는 능력을 가졌을까? 신들린 심방이나 용한 관상쟁이도 아닌 터에 말이다. 어쨌든 출신지에 따르거나 거주 연한의 길고 짧음에 따라 제주인을 구별 짓는 것은 반대다. 시대가 바뀌었고 제주는 국제자유도시다. 내가 아는바 명쾌한 제주인 감별법이 있다. 제주사람 역사교사 이영권 선생이 쓴 책 <새로 쓰는 제주사> 198페이지에, 어느 유명 언론인이 남긴 명언이라며 인용한 구절이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조상 대대로 제주도에서 살았다고 하더라도 제주의 자연을 자신의 돈벌이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육지것이며, 비록 어제부터 제주에서 살게 되었다 하더라도 제주의 자연을 생명처럼 아낀다면 그는 제주인이다.’ 


그날의 돌발언쟁은 ”똑바로 하라“는 시위대의 질타에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이러느냐. 동방예의지국도 모르느냐"는 국회의원의 타박으로 끝이 났다. 그 옛날 제주목에 부임했던 벼슬아치들이 예의범절에 미개한 섬사람들을 엄숙하게 타이르던 유교적 교화의 목소리를 생각나게 한다. 조선 후기 이래로 예의범절을 가장 중하게 여겼던 예학(禮學)은 사회변혁을 원하는 백성들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장치의 하나였음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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