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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도스토옙스키(XI)

1821. 11. 11 ~1881. 2. 9

by 김양훈
2025년 2월 9일은 도스토옙스키가 세상을 떠난 날이었습니다. 추모하는 뜻에서 작년 5월 우리 모임 FB 단체방에 올렸던 연재 글을 다시 읽습니다. R.I.P.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평전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中 발췌⑪
네가 완결할 수 없다는 것이
너를 위대하게 한다. (괴테)

한계의 초월자(I)

전통은 현재를 위한 과거의 확고한 한계로서, 미래로 나아가려는 자는 이를 넘어서야 한다. 본성이란 도대체가 인식에 억류되어 있기를 원치 않는다. 본성은 언뜻 질서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본성은 새로운 질서를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자만을 사랑한다. 본성은 항상 개별 인간들에게서 과도하게 넘치는 힘을 통해 정복자들을 창조한다. 그러면 그들은 영혼이라는 고향으로부터 미지의 어두운 대양을 거쳐 마음의 새로운 지대, 정신의 새로운 영토에 도달한다.


이런 과감한 초월자가 없다면, 인간은 자기 내부에 갇힐 것이며, 인류의 발전은 제자리에서 맴돌 것이다. 인간을 앞서가게 하는 이 위대한 전령이 없다면, 모든 세대는 아마 자신의 길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위대한 몽상가가 없었다면, 인간은 아주 심오한 자신의 의미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세계를 넓게 만든 사람들은 조용히 연구하는 향토학자가 아니라 미지의 대양을 거쳐 새로운 인도로 건너간 모험가들이다. 현대인의 심층 심리를 깊이 있게 인식한 사람들은 심리학자나 과학자가 아니라 작가들 가운데 척도를 넘어서는 자들, 요컨대 한계의 초월자들이다.


문학의 위대한 한계초월자들 가운데 오늘날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도스토옙스키를 꼽을 수 있다. 이 방종한 기인만큼 영혼의 신천지를 많이 발견해낸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측량할 수 없고 무한한 것은 내게 대지 자체만큼이나 필수적이었다.” 그는 어느 곳에서든 정착하며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는 어느 편지에서 “나는 어느 곳에서든 한계를 초월했다”라고 자랑스럽게 언급했다. 그러나 다른 편지에서는 “어느 곳에서든”에 대해서는 자책을 금치 못했다. 빙산을 넘는 듯한 사고의 편력, 무의식의 감춰진 근원으로의 하강, 자기 인식의 아찔한 봉우리로의 몽유병적 상승 등, 그의 행위를 모조리 열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위대한 조화의 파괴자이자
영원한 이원론자인 도스토옙스키

모든 한계의 초월자인 도스토옙스키가 없었더라면,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신비에 대해 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의 위대한 작품을 통해 전보다 더 멀리 미래를 내다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무너트린 최초의 한계 및 우리에게 열어 보인 최초의 먼 나라는 러시아였다. 그는 자기 나라를 세계에 알려 우리 유럽인의 의식을 넓혀 주었고, 최초로 러시아인의 영혼을 세계영혼의 값진 부분으로 우리에게 인식시켜 주었다. 도스토옙스키 이전의 러시아는 하나의 한계를 의미했다. 즉 지도상의 한 점인 아시아를 향한 과도기, 과거에 야만적이던 우리 자신의 미개문화 가운데 일부를 의미했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최초로 황량함 속에 잠재된 미래의 힘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를 통해 우리는 러시아를 새로운 종교의 가능성, 위대한 시 속에서 표현되는 미래의 언어로 느끼게 된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인식과 기대로 더 풍요롭게 해 주었다.


푸시킨은 우리에게 러시아의 귀족주의만을 보여주었다(그의 문학적 매체가 중개에 있어 짜릿한 자극을 상실하고 있으므로, 그는 우리에게 큰 매력을 주지 못한다). 톨스토이는 계속해서 분열되고 쇠퇴한 복고풍의 세계와 그 본질인 소박하고 가부장적인 농부들을 보여준다. 도스토옙스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을 포고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에 불을 붙이고, 새로운 국가 러시아의 혼을 타오르게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전쟁에서 우리는 러시아에 대해 오직 그를 통해 알게 되었을 뿐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가 우리에게 러시아라는 적국을 영혼의 동지로 여기게 해주었다는 것 또한 우리는 깨달았다. 그러나 문학상 전례가 없는 우리 영혼의 엄청난 자기 인식의 확대는 러시아의 이념에 대한 지식의 문화적 확대보다 더 심오하고 의미심장한 일이다(러시아의 이념에 관한 한 푸시킨이 만일 그런 수준에 일찍 도달했다면, 결투의 총알이 37세였던 그의 가슴을 관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심리학자 중의 심리학자였다. 심원한 인간의 마음은 마법처럼 그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참된 세계는 현세가 아니라 무의식, 잠재의식, 측량 불가능한 곳이었다. 셰익스피어 이후로는 감정의 신비 및 교차의 마술적 법칙에 대해 우리는 그리 많이 배우지 못했다. 그런데 도스토옙스키는 마치 유일하게 저승에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처럼 영혼의 지하세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는 오디세우스처럼 그 역시도 악마가 따라 다니기 때문이다. 그의 병은 평범한 인간이라면 도달하지 못하는 감정의 정점으로 그를 끌어올리다가도, 곧 삶의 저편에 있는 불안과 공포의 상황으로 그를 내동댕이친다. 때로는 냉혹하고 때로는 사망자와 유족의 대기 속에 있어야 비로소 그는 병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다.

야행성 짐승이 어둠 속에서 노려보듯 그는 다른 사람들이 대낮에 보는 것보다 어스름한 상태에서 더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는 광기의 얼굴과 아주 가까이 맞대었고, 현자나 지식인들이 무기력하게 추락했던 감정의 봉우리들을 몽유병 환자처럼 지나갔다. 그는 의사나 법률가, 형사, 정신병자들보다 더 깊이 무의식이라는 심층 세계에 침투했다. 과학이 훗날에야 비로소 발견한 모든 것, 과학이 마치 메스로 벗겨내듯 실험을 통해 죽은 경험에서 벗겨낸 모든 것, 예컨대 텔레파시나 히스테리 현상, 환각적이고 도착적인 현상들을 그는 인식했다. 그리하여 천리안적 지식과 공감의 능력으로 이 모든 것을 그는 앞서 묘사했다. 그는 망상(정신의 과도함)에 가까울 정도로, 또는 범죄(감정의 과도함)의 낭떠러지에 이를 정도로 영혼의 현상을 탐색했고, 그럼으로써 영적 신천지의 무한궤도를 통과했다. 옛 시대의 과학은 마지막 책장을 넘겼고, 그는 예술을 통하여 새로운 심리학을 시작한다.


영혼에 관한 학문인 새로운 심리학 역시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시대를 통하여 영원한 합일을 비춰주는 예술이자 무한히 새로운 법칙이다. 여기에도 항상 새로운 해결과 결정을 통한 지식의 변화, 인식의 발전이 존재한다. 예컨대 화학은 실험을 통해 외견상 분리될 수 없어 보이는 원소들의 수를 점점 더 줄이고, 그럼으로써 겉으로는 단순한 것에서 결합이 이루어짐을 인식시킨다, 반면 심리학은 점점 더 미분화의 폭을 확장함으로써 감정의 통합을 충동과 억제의 무한한 과정으로 용해한다.


몇몇 사람들에게서 무한한 천재성이 예견되기는 하지만, 옛날의 심리학과 새로운 심리학 사이의 경계는 부인할 수 없다. 호머로부터 넓게는 셰익스피어 이후에 이르기까지 단선적 심리학만이 존재했다. 인간은 여전히 공식에 따라 살과 뼈로 이루어진 특징으로 분류될 뿐이다. 예를 들어 오디세우스는 간교하고, 아킬레스는 용감하고, 아약스(Ajax)²는 분노의 상징이며, 네스토어³는 현명하다는 등이 그러한데, 이 인물들의 모든 결단과 행동은 그들이 지닌 의지의 표출에 명백히 근거한다.


옛 예술과 새로운 예술 사이의 전환기 작가였던 셰익스피어만 해도 인물묘사는 음계로 비유하여 제5음¹이 그 본질에 역행하는 선율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오래전에 바로 영적으로 중세에 속하는 최초의 인물을 우리의 시대로 보낸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햄릿에게서 최초의 문제적 성격, 현대의 분열적 인간의 선조를 창조해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심리학의 의미에서 최초로 의지가 억압 때문에 좌절되고, 자기관찰의 거울은 영혼 자체 속에 세워진다. 그리하여 내적 또는 외적으로 이중적 삶을 살아가는 분열인간, 다시 말해 행위 속에서 사고하고 사고 속에서 자신을 구현하는, 자기 의식적 인간이 형성된다. 여기서 햄릿형 인간은 현재의 우리가 느끼는 방식처럼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두컴컴한 과거의 의식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것은 아니다. 덴마크 왕자인 그는 아직도 미신세계의 소도구에 둘러싸여 있으며, 망상과 예감 대신에 마법의 미약과 혼령들이 그의 불안한 감각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여기서 이미 감정의 양면성이라는 엄청난 심리적 사건이 완결된다. 영혼의 신대륙이 발견됨으로써, 미래의 탐구자들은 자유로운 통로를 갖게 된다. 차일드 해럴드⁴와 베르테르⁵로 대변되는 바이런, 괴테, 셸리의 낭만적 인간은 자신의 본질과 냉정한 세계에 대한 모순을 영원한 대립 속에서 느끼며,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을 통하여 감정의 화학적 분해를 요구한다. 그런 가운데 정밀한 과학은 상당수의 가치 있는 개별인식을 가져온다. 이어서 스탕달이라는 작가가 등장한다. 그는 감정의 결정화된 형태, 느낌의 다의성 및 변형능력에 대해 과거의 누구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개인들 각자가 어떤 결단을 내리고자 할 때 생겨나는 가슴의 비밀스러운 저항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태만한 자세와 느긋한 성격은 무의식의 모든 역동성을 밝혀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위대한 조화의 파괴자이자 영원한 이원론자인 도스토옙스키가 비로소 그 신비를 캐낸다. 그는 감정을 완벽하게 분석했는데, 이는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에게 감정의 통합이란 이질적인 것의 화합과도 같아서 완전히 깨어진다. 그 이전에 시도된 다른 모든 작가의 대담한 영혼 분석은 그의 미분화와 비교하여 어딘지 피상적으로 보인다. 그들의 분석은 30년간 기초만 암시되어 있을 뿐 본질적인 것은 아직 예감도 하지 못하는 전기공학 교과서처럼 실효가 없었던 것처럼 실효가 없었다. 한편 그의 영적 세계에서는 단순한 감정이란 없으며, 그것은 덩어리라든가 중간 형태, 통과형태, 초과형태 등으로 분리될 수 없는 요소이다. 느낌은 무한한 전도와 혼란 속에서 어지럽게 동요하다가 행위로 옮겨지며, 의지와 진리의 광적인 교대는 감정을 뿌리째 뒤흔든다. 사람들은 언제나 결단과 욕구의 마지막 근거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계속해서 다시 다른 것으로 되돌아가도록 지시한다. 예컨대 증오, 사랑, 환희, 나약, 허영, 자만, 권력욕, 겸손, 경외심 등 모든 충동은 서로 얽혀 영원히 변전하다.


도스토옙스키는 광기의 얼굴과 아주 가까이 맞대었고, 현자나 지식인들이 무기력하게 추락했던 감정의 봉우리들을 몽유병 환자처럼 지나갔다.

<한계의 초월자(II)에서 계속>


[옮긴이 註]


1) 5음음계는 한 옥타브 안에 음의 개수가 5개인 음계를 가리킨다. 음계를 구성하는 음에 따라 그 종류는 다양하다. 음계를 구성하는 다섯 음의 음정이 단2도(반음)를 포함하느냐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①단2도가 없는 5음 음계는 ‘반음이 없음’을 의미하는 ‘앤헤미토닉(anhemitonic) 음계’ 일종으로, ‘도-레-미-솔-라’ 또는 ‘도#-레#-파#-솔#-라#’ 등이 있다. ②단2도를 포함한 5음 음계는 ‘도-미-파-솔-시’ 또는 ‘도-미-파-라-시’ 등의 음계가 있다.


한국의 전통음악은 대부분 5음음계이며, 아메리칸인디언·영국제도·유럽·아시아·서아프리카 등 다양한 나라의 민속음악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19세기 이후 서양의 고전음악에서 이국적인 소리를 구현하거나 조성감을 약하게 하기 위하여 5음음계로 구성된 음악이 작곡되기도 하였다. 클로드 드뷔시와 모리스 라벨과 같은 인상주의 음악 등에서 찾을 수 있지만, 펠릭스 멘델스존,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 리하르트 바그너, 구스타프 말러, 안토닌 드보르자크, 벨러 버르토크 등의 작곡가들도 이를 사용하여 작곡하였다. [두산백과] 5음음계(Pentatonic Scale)


2) 아이아스(Ajax)는 트로이전쟁의 영웅으로 빼어난 용기의 소유자이다. 그는 살라미스의 왕인 텔라몬과 페소보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서 테우크로스의 이복형이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헤라클레스가 친구인 텔라몬에게 강한 아들이 태어나도록 제우스에게 기도를 올렸을 때 아버지인 텔라몬이 독수리를 보았기 때문에 아이아스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3) 네스토(Nestor)는 그리스 신화에서 주로 현명한 노인으로 등장하는 영웅이다. 필로스의 왕이자 트로이 원정에 참가한 그리스군의 최고령 장수로, 노련하고 현명한 조언자 역할을 하였다


4) 차일드 헤럴드의 편력(Childe Harold's Pilgrimage)은 조지 고든 바이런이 쓴 장편의 시이다. 바이런은 1809년부터 1811년에 걸쳐 포르투갈, 에스파냐, 그리스 등을 여행하고 돌아와서 이 장시의 1부와 2부를 내어 일약 유명해졌다.


이 작품은 환락의 생활을 혐오하여 이국땅에서 위안을 찾아 헤매는 한 순례자의 견문 수상(隨想)을 엮은 것인데 부정과 압박에 대한 분노를 열렬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 후 고국을 다시 떠나 셰리와 더불어 스위스를 거쳐 베니스에 온다. 그 무렵에 쓴 것이 3부와 4부이다. 종장에 가서는 차일드 헤럴드는 사라지고 바이런 자신의 소리로 되어 있다.


5) 베르테르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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