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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uman Science

인간의 미각(味覺)

인간의 미각 구조와 기능

by 김양훈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서 미각은 단순히 음식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생존과 건강,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미각은 음식물의 영양가와 독성을 가려내는 1차적 방어 체계이자, 사회적 관계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심리적 장치로 작동한다.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미각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층적인 구조와 복잡한 기능을 갖춘 감각이다.

미각의 첫 관문은 혀와 구강 점막에 존재하는 미뢰(taste bud 味蕾)이다. 미뢰는 혀의 유두(papillae)라 불리는 작은 돌기에 분포하며, 그 안에는 수십 개의 미각 수용체 세포가 들어 있다. 이 세포들은 음식 속 화학 분자를 탐지하여 전기 신호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전통적으로 미각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우마미)의 다섯 가지 기본 맛으로 구분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지방산의 맛, 탄산의 자극 등을 새로운 기본 미각 후보로 제시하며, 인간의 미각 체계가 생각보다 더 정교하고 확장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각각의 기본 맛은 특정한 생물학적 의미를 지닌다. 단맛은 에너지 공급원인 당류의 존재를, 짠맛은 전해질 균형 유지를, 신맛은 부패나 미성숙의 가능성을, 쓴맛은 잠재적 독성 물질을, 감칠맛은 단백질과 아미노산의 존재를 신호한다. 즉, 미각은 진화적 차원에서 음식의 영양적 가치와 위험성을 가려내는 감각적 필터다. 예를 들어 쓴맛에 대한 강한 민감성은 독성 알칼로이드로부터 생명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진화적 장치가 때로는 역기능을 낳기도 한다. 지나친 단맛과 짠맛에 대한 선호가 비만과 고혈압을 유발하는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미각 신호의 전달 경로 또한 흥미롭다. 미뢰에서 발생한 신호는 안면신경, 설인신경, 미주신경을 거쳐 연수의 고립로핵(nucleus of the solitary tract)으로 모인다. 이후 시상을 통해 대뇌 피질의 미각 영역에 도달하여 ‘맛’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미각은 후각과 긴밀히 상호작용하여 실제 경험되는 풍미를 형성한다. 우리가 음식에서 느끼는 ‘맛’의 대부분은 사실상 후각적 요소이며, 미각은 기본적인 구분을 담당한다. 이처럼 미각은 단독으로 작동하기보다 후각, 촉각, 심지어 청각과도 협력하여 다감각적 경험을 이끈다.

한편, 미각은 감정과 기억에도 깊이 관여한다. 특정 음식의 맛은 유년기의 경험이나 문화적 맥락과 결합하여 개인적·집단적 정체성을 구성한다. 김치의 매운맛, 치즈의 진한 풍미, 커피의 쓴맛은 단순한 화학적 자극을 넘어 문화적 학습과 사회적 교류의 산물이다. 이는 미각이 생리적 감각임과 동시에 문화적 기호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님을 보여준다.

그러나 미각에도 한계와 취약성이 존재한다. 미뢰의 수는 나이가 들수록 감소하여 노년기에는 미각이 둔화된다. 흡연, 약물, 질환 또한 미각 수용체의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 감염은 후각뿐 아니라 미각의 상실을 초래하여, 식사의 즐거움뿐 아니라 영양 섭취의 균형에도 악영향을 준다. 또한 유전적 변이에 따라 특정 맛, 특히 쓴맛에 대한 민감도가 크게 달라지는 것도 흥미로운 차이다. 브로콜리나 고수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인간의 미각은 단순히 오미를 구별하는 감각이 아니다. 그것은 생리적 필터이자, 감정적·문화적 체험의 매개체이며, 건강과 질병을 가늠하는 지표다. 과학적 탐구는 미각이 가진 다차원적 성격을 드러내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경험하는 한 모금의 국물이나 한 조각의 과일 속에 얼마나 복잡한 생리학적·문화적 의미가 숨어 있는지를 일깨운다. 결국 미각은 단순한 ‘맛보기’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생물학과 문화학의 교차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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