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아가기
사람과 인간, 이 두 낱말은 일상에서는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 둘 사이에는 미묘하면서도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인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고유한 한국어 낱말이다.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존재, 즉 호흡하고 움직이며 말을 하는 개체를 가리킨다. 반면 ‘인간(人間)’은, ‘사람(人)’과 ‘사이(間)’가 합쳐진 한자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단순히 개인으로서의 존재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를 뜻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비난할 때 “사람은 맞지만 인간은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표현 속에는 중요한 윤리적 통찰이 숨어 있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존재하지만, 인간은 도덕과 공감,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지닌 존재임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자연이 만들어내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의식과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의 삶을 ‘나와 너(I and Thou)’의 관계로 설명했다. 그는 인간이 단지 ‘나’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마주할 때 비로소 인간다운 삶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나 아닌 존재를 인정하는 법을 배운다. 이는 인간다움의 핵심이다. 반면, 타인을 단지 도구나 수단으로만 대한다면, 그는 여전히 ‘사람’ 일뿐 ‘인간’이라 부르기 어렵다.
이성적 사고와 도덕적 선택 또한 인간을 사람과 구분 짓는 요소다. 사람은 욕망을 따르고, 인간은 욕망을 절제할 수 있다. 사람은 이익을 좇지만, 인간은 이익을 넘어선 가치를 고민한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단순한 생존의 기록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었다. 법, 예의, 철학, 종교 같은 제도와 사상은 모두 인간이 단순한 ‘사람됨’을 넘어 ‘인간다움’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이 두 단어의 선후 질서를 잃는다. 기술과 자본의 논리가 인간관계를 압도하고, 사람은 숫자나 데이터로 환원된다.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경쟁하고, 공감보다 효율을 중시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람’은 많지만, ‘인간’은 점점 줄어든다. 인간이란, 단지 살아 있다는 이유로 얻어지는 호칭이 아니라, 타인과 세계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는 순간에 주어지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과 인간의 차이는 생물학적 차원이 아니라 윤리적 차원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고, 인간은 '되어가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은 운명이지만,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은 선택이다. 인간이란, 그 선택을 매일 새롭게 실천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인간답게 살아가느냐일 것이다.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
– 인간관계의 존재론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철학서 『나와 너((I and Thou, 1923)』는 인간의 존재를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철학적 시도다. 그는 인간이 세계와 맺는 근본적인 관계 방식을 두 가지 언어적 구조로 구분했다. 바로 “나–그것(I–It)”과 “나–너(I–Thou)”이다. 이 두 관계는 단순한 언어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 존재 방식 전체를 규정하는 존재론적 구분이다.
‘나–그것’의 관계는 인간이 세계를 객체로 바라보는 태도다. 이 관계에서 타자는 관찰되고 이용되는 대상일 뿐이다. 우리는 사물, 자연, 심지어 타인조차도 ‘나에게 유용한 그것’으로 취급한다. 현대 문명은 대부분 이 ‘나–그것’의 관계 위에 세워져 있다. 과학, 경제, 기술, 효율의 논리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부버는 이런 관계가 인간을 분절시키고, 삶을 도구적 관계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했다.
반면 ‘나–너’의 관계는 전적으로 다르다. 여기서 ‘너’는 대상이 아니라, 인격적 존재로 마주하는 타자다. ‘나’와 ‘너’는 서로를 이용하지 않으며, 판단하거나 계산하지 않는다. 오직 전적인 만남과 열린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인정한다. 부버는 이 관계에서만 인간이 진정한 존재로서 완성된다고 본다. ‘너’를 만나는 순간, ‘나’ 또한 객체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서 드러난다. 즉, 인간은 관계 안에서만 인간이 된다.
부버는 이러한 ‘나–너’의 관계를 통해 신과 인간의 관계 또한 설명한다. 인간이 타자를 진심으로 ‘너’로 만날 때, 그 만남 속에서 신적 차원이 열린다는 것이다. 신은 멀리 있는 절대자가 아니라, ‘너’와의 진정한 만남 속에서 현현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에게 다가가는 길은 교리나 의식이 아니라, 타자와의 진실한 관계이다.
결국 『나와 너』는 인간을 고립된 주체로 보던 서양 근대 철학의 전통을 넘어, 관계 존재론(relational ontology)을 제시한 철학서다. 부버에게 인간이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만나는 존재다. 그는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라고 말한다. 이 한 문장은 인간의 본질을 다시 정의한다. 인간다움은 이성이나 지식이 아니라, 타인과 세계를 ‘너’로 부를 수 있는 능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