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만 개의 감각 수용체를 가진 인간의 피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오래되고 본질적인 체감각은 아마도 촉각일 것이다. 시각이나 청각은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둔 감각이지만, 촉각은 대상과 직접 접촉하는 감각이다. 우리는 손끝으로, 피부로, 심지어 체온으로 세상과 맞닿는다. 인간이 세계를 ‘본다’ 이전에, 우리는 세계를 ‘만진다’. 휴먼사이언스의 관점에서 보면 촉각은 단순한 물리적 감각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방식과 사회적 관계를 느끼고 구성하는 근원적 통로다.
인간의 피부에는 약 150만 개의 감각 수용체가 분포한다. 이들은 압력, 진동, 온도, 통증을 감지하며 뇌의 체감각 피질로 신호를 보낸다. 손끝의 촉각 수용체 밀도는 시각의 화소 해상도에 비견될 정도로 정교하다. 미세한 종이결, 유리잔의 곡면, 사람의 피부결 하나까지 감지하는 능력은 지각의 미시적 세계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인간의 촉각은 단지 물리적 감각에 머물지 않는다. 뇌는 감촉을 해석하며 ‘따뜻하다’, ‘부드럽다’, ‘위로받는다’ 같은 정서적 언어를 불러낸다. 즉, 촉각은 생리학적 과정이면서 동시에 정서적 경험의 문법이다.
애착이론을 만든 심리학자 해리 할로(Harry Frederick Harlow 1905-1981)의 고전 실험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새끼 원숭이에게 철사로 만든 인형(젖을 주지만 차갑다)과 천으로 감싼 인형(젖은 없지만 따뜻하다)을 동시에 주었을 때, 젖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새끼는 대부분 부드럽고 따뜻한 천 인형을 선택했다. 생존보다 접촉, 즉 ‘따뜻한 감촉’이 우선이었다. 인간 아기 또한 비슷하다. 신생아에게 엄마의 품은 단순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신경계의 안정을 되찾는 생리적 조절 장치다. ‘피부 대 피부 접촉’은 옥시토신을 분비시켜 신뢰감과 애착을 강화하고, 스트레스를 줄인다. 이런 이유로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는 ‘캥거루 케어(kangaroo care)’라 불리는 피부 접촉 요법이 많이 활용된다.
신경과학자들은 촉각이 인간이 가져야 할 사회성의 기초라고 본다. 인간의 피부는 단순히 감각의 경계가 아니라, 타자와 나를 잇는 사회적 기관이다. 악수, 포옹, 쓰다듬음은 모두 비언어적 소통의 형식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가벼운 신체 접촉은 상대방의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을 높이며, 집단의 신뢰도를 향상시킨다고 보았다. 터치(Touch)가 결여된 사회, 예컨대 팬데믹 시기의 ‘비접촉 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낀 외로움과 감정적 피로는, 바로 이 촉각 결핍을 보여주는 증거다. 우리는 타인의 온기를 느낄 때 비로소 심리적 안정감을 회복한다.
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차원의 ‘촉각’을 실험 중이다. 햅틱(haptic) 기술은 진동, 압력, 온도를 인공적으로 재현해 원격에서도 감촉을 느끼게 한다. 의사는 원격수술 로봇의 햅틱 피드백을 통해 환자의 장기를 ‘손끝으로’ 느끼며, 가상현실 사용자들은 가짜 감촉을 통해 ‘존재감’을 얻는다. 하지만 휴먼사이언스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기술적 촉각은 인간의 감정적 경험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인간의 터치는 단순한 신호 전달이 아니라, 의도와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기계의 진동은 ‘촉감’을 흉내 낼 수 있지만, ‘위로’를 건넬 수는 없다.
결국 촉각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손끝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피부로 타인을 이해하며, 온기로 세계를 체험한다. 시각이 세계를 구분 짓는 감각이라면, 촉각은 세계를 연결하는 감각이다. 인간이 ‘살아 있다’는 감각 또한, 바로 이 피부의 미세한 떨림 속에서 확인된다. 휴먼사이언스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세상을 ‘만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감촉 속에서 얼마나 깊이 서로를 느끼고 있는가."
포옹
김행숙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
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
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 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