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계산: 바이오 컴퓨터와 AI
21세기의 정보혁명은 두 갈래 길로 나아가고 있다. 하나는 인공지능(AI), 즉 인간의 지능을 수학적으로 모사하는 전자적 두뇌이고, 다른 하나는 바이오 컴퓨터(Bio Computer), 즉 생명 그 자체의 화학반응을 계산 체계로 삼으려는 생명적 두뇌다.
둘은 모두 인간의 ‘사유 능력’을 확장하려는 시도이지만, 그 원리는 극명하게 다르다.
인공지능은 0과 1의 이진 논리, 전자 신호의 흐름 위에 세워졌다.
신경망은 단순한 수학 함수의 집합이지만, 그 연결 구조와 학습 알고리즘을 통해 놀라운 창조력을 발휘한다.
AI의 학습은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통계적 계산의 결과다. 즉, 지능이란 확률적 규칙의 집적으로 환원된다. 이 방식의 장점은 속도와 정밀성이다. 초당 수조 번의 연산을 수행하며, 기계는 인간이 포착하지 못하는 미세한 규칙을 찾아낸다.
반면 바이오 컴퓨터는 생명의 분자 구조를 계산 도구로 삼는다.
전류가 아니라 DNA의 결합, 효소의 작용, 단백질의 접힘이 논리 연산을 대신한다. 여기서 정보는 전자 신호가 아니라 화학적 반응의 결과물로 존재한다. 이런 계산은 느리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생명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시킨 병렬적이고 자기 조직적인 질서가 깃들어 있다. 1g의 DNA에 200페타바이트의 정보를 담을 수 있고, 수십억 개의 분자가 동시에 반응하며 문제를 “병렬적으로” 푼다.
AI가 전기 신호로 만들어진 ‘인공적 지능’이라면, 바이오 컴퓨터는 생명 분자가 스스로 계산하는 ‘유기적 지능’이라 할 수 있다.
이 둘의 차이는 지능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물음으로 이어진다.
AI는 “지능을 계산 가능한 함수로 볼 수 있다”는 전제를 따른다. 기계는 경험을 데이터로 변환하고, 패턴을 수학적으로 일반화하며, 그 결과를 다시 출력한다.
이 과정은 ‘의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이오 컴퓨터는 계산 그 자체가 생명 현상과 얽혀 있다. 세포는 정보를 단순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그 정보는 유전, 복제, 돌연변이, 그리고 진화의 맥락 속에서 스스로 변형된다. 즉, 생명 기반의 계산은 환경에 적응하며 자기조직화한다는 점에서, 지능의 생물학적 근원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AI가 “생각하는 기계”를 지향한다면, 바이오 컴퓨터는 “살아 있는 계산”을 지향한다.
AI는 인간의 사고를 외부로 모사하는 기술이지만, 바이오 컴퓨터는 생명 내부의 계산을 재발견하는 기술이다.
AI가 진화의 산물이 만들어낸 ‘두뇌의 모델’을 흉내 낸다면, 바이오 컴퓨터는 진화 자체를 계산 과정으로 삼는다.
이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은 가까운 미래에 있을 것이다. AI가 데이터 해석과 논리 추론의 영역을 맡고, 바이오 컴퓨터가 유전자 조작이나 세포 반응 같은 물질세계의 계산을 담당한다면, 우리는 ‘전자두뇌’와 ‘생물 두뇌’가 공존하는 복합적 정보 생태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조합은 단순히 빠르고 효율적인 계산을 넘어, 생명과 지능이 하나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음을 증명할지도 모른다.
바이오 컴퓨터는 아직 실험대 위에서 태동 중이고, 인공지능은 이미 사회 곳곳에 뿌리내렸다.
그러나 그 방향성의 차이는 명확하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수학적으로 복제’하려는 기술이라면, 바이오 컴퓨터는 생명의 질서 속에서 지능을 ‘자연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전자회로는 명령을 따른다. 하지만 DNA는 스스로 변이 하며, 환경에 적응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지능이란, 계산의 정교함에 있는가, 아니면 변화를 수용하는 생명력에 있는가?
바이오 컴퓨터와 인공지능은 바로 이 물음의 양쪽 끝에서 서로를 비교하게 된다. 하나는 정밀한 모방의 지능, 다른 하나는 살아 있는 진화의 지능이다. 그 둘이 만나게 될 때, 인간은 비로소 “생명과 계산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