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인가?
발기는 음경이나 음핵, 유두가 자극에 반응하여 커지거나 딱딱해지는 생물학적 현상을 일컫는다. 발기 현상은 심리, 신경, 혈관, 호르몬 요소의 복합된 상호작용으로 나타나며, 보통 성적 각성과 관련이 있다.
남성의 발기는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력과 자존감, 관계의 친밀함, 그리고 존재의 의미와도 깊이 연결된 현상이다. 생물학적으로 발기 기능은 혈관, 신경, 호르몬, 심리적 요인이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하다. 나이가 들면서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하고 혈관 탄력성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발기의 빈도와 강도는 줄어든다. 그러나 “언제까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일부 남성은 80세에도 발기가 가능하고, 어떤 이는 40대에 이미 어려움을 겪는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신체적 건강과 심리적 안정이 함께 유지되는가의 문제다.
발기는 인간의 신체 중에서
가장 정직한 생리 반응이다.
혈관 건강이 조금만 나빠져도 즉각 반응하고, 마음이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도 쉽게 위축된다. 그래서 의학자들은 발기를 ‘남성의 건강 지표’라고 부른다. 실제로 발기부전은 심혈관 질환의 전조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혈관이 좁아지고 순환이 저하되면, 가장 말단인 음경 조직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즉, 발기의 변화는 단순히 성적 기능의 쇠퇴가 아니라, 전신의 노화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몸의 언어인 셈이다.
그러나 발기의 문제는 육체보다 마음과 더 깊게 연관돼 있다. 발기 불가능 상태가 지속될 때 남성은 생리적 불편함을 넘어, 수컷이라는 자존심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발기는 남성 정체성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 남성은 ‘능력 있는 존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 능력에는 직업적 성취뿐 아니라, 성적 기능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발기의 상실은 단지 신체의 문제를 넘어, 자신이 더 이상 ‘남성으로서 충분하지 않다’는 깊은 심리적 상처로 이어진다.
이때 나타나는 감정은 다양하다. 우선은 불안과 수치심이다. 처음 발기가 어렵다고 느낀 순간, 남성은 자신이 늙었다는 현실과 마주한다. “이제 나는 끝인가?”라는 절망감이 밀려온다. 이를 감추기 위해 일부는 농담으로 넘기거나, 상대에게 관심이 없다는 식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면에는 강한 자존감의 손상이 남는다. 반복되면 자신감이 무너지고, 사랑의 표현인 섹스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또 다른 현상은 우울감과 관계 단절이다. 발기의 어려움은 때론 사랑의 대화 단절로 이어진다. 성(性)은 육체적 행위일 뿐 아니라 감정과 신뢰의 교류이기 때문에, 자신의 발기 불능을 두려워한 남성은 파트너를 멀리하고, 상대는 그 거리를 식어버린 애정으로 받아들인다. 두 사람 사이의 침묵 속에서 문제는 더 커진다. 성적 기능의 상실이 곧 부부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행위의 실패’가 아니라 ‘소통의 실패’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발기상실 또는 발기불능은 반드시 노년 남성에게 절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또 다른 성숙으로 이어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리적 기능의 쇠퇴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의 이치다. 오히려 그 시점부터 남성은 자신의 존재를 새로운 차원에서 바라보게 된다. 육체적 능력이 아닌, 감정의 깊이와 관계의 진정성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발기의 가능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가능성을 잃었을 때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현대 의학은 약물이나 치료 기술로 발기 문제를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심리적 회복은 약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자신을 불완전한 존재로 인정하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여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심리적인 발기회복의 시작이다.
남성의 발기는 생물학적 기능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인 자기 객관화의 한 거울이다. 그것이 가능할 때는 생의 리듬이 조화롭고, 불가능할 때는 마음의 방향을 되돌아보라는 신호다. 발기가 끝나는 시점이 인생 끝장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자기 이해의 문이 열리는 순간일 수도 있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발기불능 앞에서 부끄러움 대신 성찰을 선택할 때, 남성은 생리의 주체가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