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오시프 만델슈탐
스탈린 에피그램¹
오시프 만델슈탐
아래로 나라를 느끼지 못한 채, 우리는 살아간다.
열 발자국 뒤에서 들리지 않는 우리말,
그리고 말하는 사람이 반만 있어도 충분한 곳,
그곳 크렘린의 산악인이 생각난다.
그의 통통한 손가락은 벌레처럼
-기름기로 번들거리고
말은 무거운 저울추처럼 믿음직하다.
바퀴벌레 같은 콧수염은 웃고 있고
그가 신은 장화의 목 부분이 빛난다.
목이 가는 대장들의 무리가 그를 둘러싸고,
그는 반만의 인간인 자들의
-시중을 받으며 놀고 있다.
누구는 휘파람을 불고, 누구는 야옹대고,
-누구는 흐느껴 우는데
그 혼자만 지껄이고 명령을 내린다.
편자를 박아 넣듯이 그는 연달아 명령을 내린다,
누구는 살 속에, 누구는 이마에,
-누구는 눈썹에, 누구는 눈에.
그의 사형은 무엇인가―산딸기요,
오세트인²의 넓은 가슴이다.
[註]
1) 에피그램(Epigram)은 단시(短詩)·비시(碑詩)·묘시(墓詩)·경구시(警句詩)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리스에서는 묘비나 기념비에 쓰인 단시(短詩)를 의미했으나, 로마 시대에는 풍자시의 체재를 갖춘 단어로 쓰인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포프의 풍자시, 볼테르의 경구 등이 있다. 수사학(修辭學)에선 경구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2) 오세트인(오세트어: Осетин)은 캅카스 지방의 산악 지대에 사는 이란족계의 민족이다. 거주 지역은 주로 러시아의 북오세티야 공화국과 조지아의 남오세티야에 거주한다. 총 인구는 대략 72만 명이다. 사용 언어는 인도유럽어족의 이란어군에 속하는 오세트어를 사용한다. 주된 종교는 기독교로, 70% 이상이 러시아 정교회의 신도이지만, 오세트인들의 하위민족인 디고르인(15%)들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오세트인의 조상은 9세기에 사라진 고대 동유럽에서 활동한 알란족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았다. 오세트인들은 중세에는 아스라고 불렸다. 민족 명칭의 오세트는, 아스인(As)을 오브스(Ovs)라고 부르고 있던 조지아인이 아스인의 거주 지역을 오브세티(Ovseti)라고 말한 것이 러시아어가 이 단어를 차용하면서 생겨난 명칭이다. 무엇보다 중세에 불렸던 아스의 이름은 사라졌고, 오세트인이 자신들을 부를 때는 오세트어에 의한 명칭인 이론(Iron) 혹은 디고르(Digor), 디고론(Digoron)이라고 부른다. 스탈린의 고향은 조지아의 고리(Gori)로, 그는 1878년 12월 18일에 이곳에서 태어났다. (시의 두번 째 연 = 크렘린의 산악인)
고리(조지아어: გორი)는 조지아 동부에 있는 도시로, 시다 카르틀리의 주도이다. 므트크바리강과 리아 흐비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조지아에서 인구가 다섯 번째로 많은 도시다 . 고리라는 이름은 조지아어 ' 고라(გორა)'에서 유래했으며, '무더기', '언덕', 또는 '산'을 의미한다.
헬레니즘 시대부터 이곳에 자리 잡은 정착지로, 고리 요새는 7세기 무렵에 건설되었으며, 12세기에 도시 지위를 획득했다. 고리는 중세 시대의 중요한 군사 거점이었으며, 조지아의 동서부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에 위치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고리는 여러 차례 지역 강대국의 군대에 침략당했다.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 당시에는 러시아군이 이 도시를 점령 했다 .
고리는 또한 소련 정치가인 요시프 스탈린, 탄도 미사일 설계자 알렉산드르 나디라제, 철학자 메랍 마마르다슈빌리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
[詩評]
폭력의 실상을 보여준
가장 위험한 시(詩)
오시프 만델슈탐의 「스탈린 에피그램」은 20세기 문학사에서 ‘시가 어떻게 한 시대의 권력을 폭로하고, 그 대가로 어떻게 시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 이 시는 단순한 풍자시가 아니다. 만델슈탐은 은유와 리듬으로 꾸며진 고발문을 넘어, 스탈린 체제의 본질을 해부하고, 폭력의 구조를 인간적 이미지로 구체화하였다. 시 전체는 짧지만, 한 체제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에는 충분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1. 감각적 이미지로 재현된 “공포의 정치”
시의 첫 구절
“아래로 나라를 느끼지 못한 채, 우리는 살아간다.”
는 체제가 시민의 일상 감각까지 마비시키고 있음을 암시한다.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무감각의 선택이 아니라, 감각 자체가 억압된 상태이다. 이어지는
“열 발자국 뒤에서 들리지 않는 우리말”
은 감시가 일상화된 사회를 상징하는 구절로, 말이 사라진 공간, 혹은 말을 하더라도 들리지 않는 공간을 보여준다. 말이 사라진 사회는 곧 인간이 지워지는 사회이며, 이는 스탈린 시대의 공포정치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2. 스탈린의 신체 묘사 ― 권력의 '추함'과 '비루함'
시에서 스탈린은 거대한 영웅이 아니라 기괴하고 왜곡된 육체의 집합물로 나타난다.
“통통한 손가락은 벌레처럼 기름기로 번들거리고”
“바퀴벌레 같은 콧수염은 웃고 있고”
손가락을 ‘벌레’, 콧수염을 ‘바퀴벌레’로 비유하는 대목은 인간성을 제거한 해충의 이미지로 스탈린을 격하한다. 여기에는 단순한 혐오가 아니라, 스탈린 체제의 ‘비루함’과 ‘도덕적 오염’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다. 만델슈탐은 권력자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프로파간다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권력의 실체는 추하고 기생적이며, 인간적 존엄을 갉아먹는 벌레와 같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3. “반만의 인간”들 ― 권력 주변의 피동적 존재들
“목이 가는 대장들의 무리가 그를 둘러싸고,
그는 반만의 인간인 자들의 시중을 받으며 놀고 있다.”
권력 주변의 관료들은 ‘반만의 인간’으로 묘사된다. 이는 체제에 복속되어 자율성·도덕성·언어적 정체성을 잃어버린 존재들이다. 놀랍게도 시인은 스탈린보다 이들을 더 비참하게 그린다. 그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춤추고, 울고, 비명 지르는 ‘희극적 비극’ 속의 인물들이다. 이 장면은 전체주의 체제가 권력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구조적 맹목성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4. “편자를 박아 넣듯 명령을 내린다” ― 폭력의 기계화
가장 강렬한 구절 중 하나는 다음이다.
“편자를 박아 넣듯이 그는 연달아 명령을 내린다,
누구는 살속에, 누구는 이마에, 누구는 눈썹에, 누구는 눈에.”
여기서 스탈린의 명령은 인간을 향한 명령이 아니라, 쇠말뚝을 찍어 넣듯이 대상의 몸을 무력화시키는 폭력 그 자체이다. 명령이 향하는 신체 부위(살, 이마, 눈썹, 눈)는 죽음의 단계적 접근을 시각화하며, 체제의 살상 메커니즘이 얼마나 무자비하게 동원되었는지를 보여준다.
5. 마지막 구절 ― 아이러니한 “사형 선고”
“그의 사형은 무엇인가―산딸기요,
오세트인의 넓은 가슴이다.”
이 결말은 시 전체의 분위기를 전복하는 장면이다.
‘산딸기’는 달콤하고 순한 이미지, ‘오세트인의 가슴’은 유목민적 강인함을 상징한다. 만델슈탐은 스탈린의 고향 이미지(오세트=조지아)를 불러오면서, 폭력의 주체가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자연물과 지역적 상징만이 남는다고 말한다.
이는 권력의 허망함, 스탈린의 인물적 공허함을 드러내는 반어적 결말이며 동시에 그를 “풍자적 개인”으로 되돌려 놓는 해체 행위이기도 하다.
언어의 위험을 감수한
시인(詩人)의 용기
만델슈탐의 「스탈린 에피그램」은 풍자를 넘어, 언어가 폭력적 현실에 맞서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무기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작품이다. 그는 이 시로 인해 체포되었고 끝내 수용소에서 사망했지만, 시는 체제보다 오래 남아 스탈린주의의 실체를 증언한다.
오시프 예밀리예비치 만델시탐(О́сип Эми́льевич Мандельшта́м 1891~1938)은 러시아 문학사조인 아크메이즘(акмеизм)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는 1930년대 스탈린 체제의 탄압 중에 체포되어 아내 나데즈다 만델시탐과 함께 국내 유배되었다. 일종의 유예 기간이 주어지자 그들은 러시아 남서부의 보로네시로 이사했다. 1938년에 만델시탐은 다시 체포되어 소련 극동의 노동 교정 수용소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그해 블라디보스토크 근처 임시 수용소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