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감독의 <국보>

예술이라는 신(神)에게 바쳐진 잔혹한 인신공양인가?

by 김양훈

국보와 서편제 그리고 패왕별희

예술이라는 신(神)에게 바쳐진 잔혹한 인신공양: 이상일 감독의 <국보>가 그려낸 ‘절대미’의 심연

1. 박제된 아름다움, 그 이면의 선혈

예술은 종종 인간의 삶을 영양분으로 삼아 피어나는 잔혹한 꽃이다. 그 꽃이 만개하기 위해 예술가는 자신의 육신을 깎아내고, 영혼의 일부를 도려내어 제단에 바친다. 재일교포 감독 이상일이 요시다 슈이치(吉田 修一)의 대하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국보(国宝)>는 일본 전통 예술인 ‘가부키(歌舞伎)’를 무대로 이 오래된 비극적 테마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작품은 한국 전통 예술의 한(恨)을 미학적 정수로 끌어올린 임권택의 <서편제>(1993)와, 중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경극 배우의 삶에 투사한 천카이거의 <패왕별희>(1993)가 구축한 ‘예술가 영화’의 고전적 문법을 계승한다. 그러나 <국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상일은 재일교포라는 ‘경계인적 시선’을 필터 삼아, 국가가 공인한 절대적 미(美)인 ‘국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추악한 계급성과 정체성의 소멸을 현대적이고 잔혹한 필치로 그려낸다. 본 평론은 세 영화가 공유하는 ‘예술적 광기’의 지형도를 탐색하고, <국보>가 도달한 독자적인 비극의 성질을 분석하고자 한다.

2. 신체적 훼손과 자아의 소멸:

예술로 가는 가시권(可視圈)

세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불가능한 완성’을 향해 자신을 파괴한다. 이들의 예술은 신체적 결함이나 성적 정체성의 상실을 대가로 얻어지는 비극적 성취다.

<서편제>의 송화가 겪는 비극은 타의에 의한 육체적 거세에서 시작된다. 소리꾼 유봉은 의붓딸 송화에게 소리의 정수인 ‘한’을 심어주기 위해 그녀의 눈을 멀게 한다. 여기서 예술은 시각이라는 감각을 희생시켜 ‘청각적 심연’을 얻는 등가교환의 산물이다. 송화의 소리는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더 깊은 울림을 얻으며, 비로소 자연과 합일되는 무형의 예술로 승화된다.

반면, <패왕별희>의 두지(청다이)는 예술을 위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한다.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 태어나..."라는 대사를 틀릴 때마다 가해지는 매질과 스승의 훈육은 그를 남성에서 ‘우희’라는 여성적 기호로 재편성한다. 두지에게 경극은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한 유일한 도피처이자,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는 물아일체의 경지다. 그는 무대 밖에서도 우희로 살아가길 원했으나, 역사는 그를 남성 배우라는 현실로 끊임없이 끌어내린다.

이상일의 <국보> 속 기쿠노스케는 이 두 지점을 기묘하게 횡단하며 발전시킨다. 야쿠자의 아들이라는 ‘천한 핏줄’을 지워내기 위해 그는 가부키의 여성역인 ‘온나가타(女方)’의 길을 택한다. <서편제>가 시력을 앗아갔다면, <국보>는 기쿠노스케의 ‘남성성’과 ‘인간적 자아’를 앗아간다. 가부키의 온나가타는 단순히 여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양식화된 기호다. 기쿠노스케는 무대 위에서 완벽한 여인의 태를 갖추기 위해 무릎이 뒤틀리는 고통을 견디고, 일상의 모든 감정을 연기를 위한 재료로 치환한다. 이상일 감독은 가부키 분장 뒤에 숨겨진 배우의 파리한 얼굴과 마른 몸을 집요하게 포착하며, 예술이 자아를 잠식해 들어가는 과정을 ‘신체의 고통’을 통해 증명한다.

3. 계급의 장벽과 시대의 폭력:

예술을 억압하는 구조들

세 작품은 예술가를 둘러싼 외부 세계의 폭력을 다루는 방식에서 각기 다른 시대상을 반영하며, 예술의 사회적 위치를 질문한다.

<서편제>는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배경으로 한다. 여기서 판소리는 서구 문물과 ‘기계의 소리’에 밀려 길 위에서 죽어가는 소외된 예술이다. 유봉과 송화의 방랑은 전통이 어떻게 박해받고 사라져 가는지를 보여주는 애처로운 저항이다.

<패왕별희>는 중일전쟁부터 문화대혁명에 이르는 중국 현대사의 거대한 격랑을 배경으로 한다. 이데올로기는 순수한 예술의 영역을 침범하고, 배우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를 배신한다. 여기서 예술은 국가 권력에 의해 난도질당하는 나약한 존재다.

<국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 특유의 폐쇄적인 ‘이에(家) 제도’와 ‘박제화된 권위’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가부키는 일본에서 단순한 연극이 아니라 거대한 자본과 가문의 명예가 얽힌 권력 기관이다. 주인공 기쿠노스케는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배척당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결핍 때문에 누구보다 필사적으로 가부키의 정수에 매달린다.

[註]일본의 이에(家) 제도는 개별 가족을 넘어 가문의 명예와 가업(家業), 재산을 후대에 영속적으로 계승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일본 특유의 가계 공동체 체계다. 이 제도는 단순한 혈연보다 '가문의 지속'이라는 가치를 상위 개념에 둡니다.
가장 큰 특징은 가업 계승을 위해 혈연적 적통이 아니더라도 재능 있는 인물을 양자로 들여 성(姓)을 물려주는 등 '가문의 이름'을 유지하는 데 집착한다는 점입니다. 이 안에서 가주(家主)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며, 구성원은 개인의 자아보다 가문의 번영과 서열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것을 요구받는다.
전통 예술계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한 '이에모토(家元) 제도'가 발달했다. 가문이 특정 예술의 비법과 권위를 독점하고 제자들에게 자격과 성명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영화 <국보>의 주인공이 실력에도 불구하고 비천한 출신 때문에 겪는 갈등이나, 가문의 이름을 물려받기 위해 자신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과정은 모두 이 견고한 '이에'라는 시스템 안에서 발생하는 비극이다.

여기서 이상일 감독의 재일교포로서의 시선이 빛을 발한다. 일본 사회의 가장 보수적인 심장부인 가부키를 다루면서, 그는 내부자가 아닌 관찰자의 시선으로 ‘전통’이라는 이름의 허위의식을 들춰낸다. 전후 일본의 고도 성장기 속에서 가부키가 민중의 예술에서 국가의 ‘국보’로 격상되는 과정은, 예술이 생명력을 잃고 박제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서편제>의 예술이 잊혀짐에 대한 슬픔이라면, <국보>의 예술은 ‘국가에 의해 공인된 유물’이 되어가는 공포다.

4. 연출 미학: 관음적 시선과 잔혹한 정물화

이상일 감독은 전작 <악인>, <분노>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심리 묘사를 가부키 무대로 확장한다. 그의 연출은 <패왕별희>의 오페라적 과잉이나 <서편제>의 서정적 여백과는 확연히 다른 ‘잔혹한 정물화’의 미학을 띤다.

대비의 미학: 카메라는 화려한 무대 조명 아래의 기쿠노스케와, 무대 뒤 어둡고 비좁은 대기실에서 화장을 지우는 기쿠노스케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화장품 냄새가 진동할 것 같은 밀폐된 공간의 질감은 예술가의 고독을 시각화한다.

신체의 미학: 가부키 특유의 정제된 동작인 ‘미에(見得)’를 포착할 때, 감독은 관객의 감탄을 유도하는 대신 배우의 근육이 어떻게 떨리는지, 그 찰나의 미를 위해 신체가 어떻게 학대당하는지를 관음적인 시선으로 집요하게 따라간다.

[註]미에(見得)는 주요 인물의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배우가 표정과 움직임을 멈추어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무대연출을 말한다. 직역하면 남에게 보여주어 효과를 얻는다는 의미다.

정적의 미학: <서편제>가 판소리의 가락으로 공간을 채운다면, <국보>는 중요한 순간에 모든 소리를 소거한다. 가마 안에서 도자기가 익어가는 소리처럼, 무대 위 배우의 거친 숨소리와 옷자락 스치는 소리만이 강조되는 정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이 막히는 압도감을 느끼게 한다.

5. 무엇이 인간을 예술로 만드는가

결국 <국보>는 <서편제>의 ‘한’과 <패왕별희>의 ‘광기’를 일본 가부키라는 토양 위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비극적 전기영화이며 실사영화다.

송화에게 소리는 ‘살아남기 위한 비명’이었고, 두지에게 경극이 ‘사랑받기 위한 유일한 언어’였다면, 기쿠노스케에게 가부키는 ‘자신을 소멸시켜 도달하는 무(無)의 상태’였다. 그는 야쿠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을 지우기 위해 가부키의 이름 뒤로 숨었고, 결국 그 이름 자체가 되었다. 인간 기쿠노스케는 죽고 오직 ‘국보’라는 칭호만이 남은 셈이다.

이상일 감독은 이 세 인물의 연대기를 통해 예술이란 결국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 지불하는 가장 비싼 수업료임을 증명한다. 영화의 마지막, 늙고 병든 몸으로 무대 위에 올라 완벽한 여인의 춤을 추는 기쿠노스케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기보다 처연하고 서늘하다.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라, 오직 예술이라는 유령만이 남은 육신의 마지막 발악이기 때문이다.

<국보>는 국가와 시대를 초월해 예술이 인간을 구원하고 동시에 파괴하는 잔혹한 방식을 보여준다. 아시아 예술가 영화의 계보에서 <서편제>와 <패왕별희>가 전통과 역사를 노래했다면, <국보>는 그 전통이 권력이 되었을 때 예술가의 영혼이 어떻게 마모되는지를 탐구한 가장 현대적인 비극이다. 예술이라는 괴물에게 영혼을 내어주고 마침내 ‘국보’가 된 사내의 초상에서, 우리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도 슬픈 심연을 목격하게 된다.

서편제 스틸컷
패왕별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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