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레어 벨록(Hilaire Belloc)

by 김양훈

“No man becomes wise by chance. Wisdom is the fruit of long experience, of wounds remembered, of errors understood, and of the steady labor by which a man disciplines his mind to see clearly and his soul to judge rightly.” — Hilaire Belloc


​"어떤 사람도 우연히 지혜로워지지 않는다. 지혜는 오래 쌓은 경험의 과실이며, 상처를 기억하고 과오를 성찰함으로써 얻어낸 열매다. 또한 자신의 마음을 단련해, 세상을 명징하게 바라보고 올바르게 판단하도록 끊임없이 영혼을 정화해 거둔 노력의 산물이다."

일레어 벨록(Hilaire Belloc)의 이 문장은 지혜라는 것은 선천적인 재능이나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자기 투쟁과 성찰에서 얻어내는 결과물임을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권위를 받아들인다. 그들 집단 간의 차이는 그들이 어떤 종류의 권위를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 힐레어 벨록

​이 명언은 인간이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라기보다, 누구나 어떤 형태의 신념, 법, 전통 또는 인물을 정신적·사회적 지주(권위)로 삼고 살아간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즉, 권위 그 자체를 부정하는 집단은 없으며, '무엇을 따르기로 선택했는가'가 그 집단의 성격과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일레어 벨록 (Hilaire Belloc, 1870-1953)은 20세기 초반 영국 문단에서 다재다능하고 논쟁적이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그는 시인, 역사가, 수필가, 정치인이자 가톨릭 변증가였다.

​그는 친구인 G.K. 체스터턴과 함께 '체스터벨록(Chesterbelloc)'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당대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벨록은 근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를 비판하며 '배분주의(Distributism)'를 제창했고, 유럽의 전통과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의 글은 논리적이며 직선적이고, 인생의 고난을 관통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묵직한 권위가 실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註]'체스터벨록'은 20세기 초 영국 문학계와 사회 비평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두 인물, G.K. 체스터턴(G.K. Chesterton)과 일레어 벨록(Hilaire Belloc)을 하나의 유기체처럼 묶어 부르는 별칭이다. 당대 최고의 극작가이자 비평가였던 조지 버나드 쇼가 이들의 끈끈한 우정과 사상적 일치감을 보고 "체스터벨록이라는 네 발 달린 짐승"이라 지칭한 데서 유래했다.​ 이들은 단순한 친구 사이를 넘어, 근대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대안적 질서를 제시했던 지적 동반자였다.

흉터가 남긴 지도:
벨록이 정의한 지혜의 연금술

​존 스타인벡이 현대인의 회피와 소음을 경고했다면, 일레어 벨록은 그 소음을 뚫고 나아가 인간이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지향점인 ‘지혜’의 본질을 논한다. 벨록에게 지혜는 신비로운 영감이 아니라, 피와 땀이 섞인 '정신적 노동'의 결과물이다.

​① 우연이라는 신화의 부정

​벨록은 문장의 시작부터 "어떤 사람도 우연히 지혜로워지지 않는다"라고 단언한다. 이는 지혜를 타고난 기질이나 운 좋은 깨달음으로 치부하려는 태도에 대한 반박이다. 흔히 지능은 유전적 요인에 기인하지만, 지혜는 삶이라는 거친 현장에서 벼려지는 후천적 산물이며 도구다. 벨록은 지혜를 '열매(Fruit)'에 비유함으로써, 씨를 뿌리고 가꾸는 긴 시간과 인내의 과정이 필수적임을 암시한다.

​② 상처의 기억과 과오의 해석

​이 문장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은 지혜의 재료로 '기억된 상처(wounds remembered)'와 '이해된 과오(errors understood)'를 꼽았다는 점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통스러운 상처를 잊으려 하고, 자신의 실수를 부정하려 한다. 그러나 벨록은 그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기억'할 때, 그리고 실수를 단순히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일어났는지 '이해'할 때 비로소 그것이 지혜로 치환된다고 보았다.

​상처는 우리에게 한계를 가르쳐주고, 과오는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준다. 벨록의 관점에서 지혜로운 자란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흉터를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 흉터는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다시는 암초에 부딪히지 않게 해주는 해도(海圖)가 되기 때문이다.

​③ 규율과 단련: 마음의 명징함과 영혼의 판단력

​지혜에 이르는 마지막 단계는 '끊임없는 노력(steady labor)'을 통한 자기 통제다. 벨록은 'disciplines(길들이다/단련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인간의 마음이 본래 방치하면 흐릿해지고 흔들리기 쉬운 존재임을 시사하고 있다.

'명징하게 보는 것(to see clearly)'은 편견과 감정의 구름을 걷어내는 지적인 훈련이며,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to judge rightly)'은 도덕적 가치와 영혼의 무게 중심을 잡는 영적인 훈련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될 때, 인간은 비로소 삶의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판단의 준거를 갖게 된다.

​④ 고통의 승화

​일레어 벨록의 위 경구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위로와 경종을 동시에 울린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실패가 무의미한 소모가 아니라, 지혜라는 값진 열매를 맺기 위한 필수적인 자양분임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벨록은 인생을 치열한 전장으로 보았고, 그 전장에서 얻은 부상병의 훈장이야말로 지혜라고 믿었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자신의 상처를 정직하게 대면하고 그 과오를 스승으로 삼는다면, 우리 또한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서의 지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소음과 혼란을 넘어, 삶을 명징하게 관조하고 영혼으로 판단하는 '완성된 인간'으로 가는 길이 된다.

​벨록의 철학은 고통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매우 강인한 정신력을 요구한다. 이 글에서 언급된 '기억된 상처'가 개인의 삶에서 어떻게 지혜로 변모하는지, 그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 더 이야기해 볼까요? 혹은 벨록처럼 고난을 긍정했던 다른 작가의 글귀를 소개해 드릴까요?


길 위에서 마주한 명징한 영혼:
벨록과 스타인벡이 건네는 고독의 초대

​현대인은 유례없는 연결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유례없는 '자아의 상실'을 겪고 있다. 손 안의 기기에서는 쉼 없이 정보가 쏟아지고, 알고리즘은 우리가 생각할 틈도 없이 다음 즐길 거리를 눈앞에 대령한다. 이러한 풍요 속에서 존 스타인벡과 일레어 벨록, 두 거장이 남긴 문장은 우리가 외면해 온 삶의 본질적인 구멍을 서늘하게 비춘다.

​존 스타인벡은 그의 저서 《찰리와의 여행》에서 현대인의 심리적 허약함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우리는 깨어 있기를 두려워하고, 홀로 있기를 두려워하며, 우리가 '오락'이라 부르는 소음과 혼란이 없는 단 한순간조차 두려워한다"는 그의 진단은 60년이 지난 지금 더욱 유효하다. 스타인벡이 통찰한 '오락(Entertainment)'은 즐거움의 수단이 아니라, 사실은 거대한 '마취제'다. 홀로 남겨졌을 때 들이닥칠 존재론적 고독, 그리고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소음의 성벽 안에 가둔다.

​스타인벡이 지적한 이 '정신적 가사(假死) 상태'를 극복하고 진정한 인간의 품격에 도달하는 길을 제시한 이가 바로 일레어 벨록이다. 그는 "어떤 사람도 우연히 지혜로워지지 않는다"라고 단언하며, 지혜란 "기억된 상처와 이해된 과오, 그리고 영혼을 단련하는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정의했다. 벨록에게 지혜는 안락한 거실의 소파 위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길 위에서 획득되는 전리품이었다.

​벨록의 철학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지점은 그의 걸작 《로마로 가는 길》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이탈리아 로마까지 1,200km가 넘는 거리를 오직 두 발로만 걷겠다는 서약을 하고 길을 떠났다. 기차라는 근대의 편리함을 거부하고 알프스의 험준한 산맥을 몸소 넘은 그의 여정은, 스타인벡이 경고했던 '소음'을 끄고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엄한 투쟁이었다.

​벨록에게 길 위에서 입은 육체적 상처는 '기억된 상처'가 되었고, 길을 잃고 헤맨 시간은 '이해된 과오'가 되어 그의 영혼에 새겨졌다. 그는 편안한 직선로 대신 고통스러운 우회로를 택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길들였고(discipline), 마침내 사물을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떴다. 그에게 로마는 단순히 지리학적인 종착지가 아니라, 소음과 혼란을 뚫고 도달한 '정신적 각성'의 상징이었다.

​두 작가의 목소리를 종합해 보면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홀로 있음'과 '정적'은 사실 지혜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관문이라는 점이다. 스타인벡이 우려했던 것처럼 우리가 끊임없이 오락의 소음 속에 자신을 방치한다면, 우리 영혼은 결코 벨록이 말한 지혜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상처를 기억하고 과오를 대면하는 일은 분명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깨어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로마로 향하는 거창한 순례길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내면의 고요를 견뎌보는 것, 내가 저지른 실수를 소음으로 덮지 않고 정직하게 응시하는 것, 그리하여 타인이 설계한 오락이 아닌 나의 의지로 삶을 판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스타인벡의 경고를 새기고 벨록의 지혜를 실천하는 현대적 의미의 '로마로 가는 길'일 것이다. 지혜는 우연히 오지 않는다. 그것은 소음을 끄고 고독의 길을 자처한 자만이 맛볼 수 있는 달콤한 열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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