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베르의 독설과 냉소

부르주아의 베티즈(Bêtise)와 클리셰(cliché)

by 김양훈

"The whole dream of democracy is to raise the proletarian to the level of stupidity attained by the bourgeois."

Gustave Flaubert

"민주주의의 모든 꿈은 프롤레타리아를 부르주아가 도달한 그 어리석음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ㅡ귀스타브 플로베르


이 문장은 플로베르가 친구인 조르주 상드에게 보낸 편지나 지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드러난 그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부르주아의 '어리석음(Bêtise)': 플로베르에게 부르주아란 단순히 돈이 많은 계급이 아니다. 그는 부르주아를 "속물적이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정신적 깊이 없이 뻔한 상식(cliché)만을 읊어대는 존재"로 정의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 그는 민주주의가 외치는 '평등'이 인간의 정신적 고양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하층 계급인 프롤레타리아마저 부르주아의 천박하고 지루한 가치관에 물들게 하여 결국 전 사회를 하향 평준화된 어리석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라 우려했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 민주주의와 산업화가 결합하여 모두가 부르주아처럼 먹고살게 되더라도, 결국 그들이 지향하는 바가 부르주아의 속물적인 삶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진보가 아니라 '어리석음의 확장'일 뿐이라는 비판이다.

*헤세와 플로베르의 공통점: 두 작가 모두 부르주아적 삶을 경계했다. 헤세는 그것이 인간의 '강렬한 생명력'을 앗아가는 안락한 감옥이라고 보았고, 플로베르는 그것이 인간의 지성을 마비시키는 지독한 평범함이자 어리석음이라고 보았다.

이들의 통찰은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지향하는 성공과 평등이 결국 '안전하고 지루한 어리석음'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플로베르는 부르주아적 삶을 '베티즈(Bêtise)', 즉 '어리석음'이라는 단어로 압축하여 비판한다. 그에게 베티즈란 지능의 결핍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과 상투적인 문구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읊어대는 정신적 게으름을 의미한다. 플로베르는 민주주의가 가져올 미래를 냉소적으로 전망하며, 그것이 프롤레타리아를 고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가 이미 도달한 그 천박하고 속물적인 어리석음의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할 것이라 우려했다. 엠마 보바리가 싸구려 소설의 환상에 빠져 파멸했듯, 현대인들 역시 미디어가 주입한 허영과 고정관념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며 베티즈의 바다를 표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플로베르가 정의한 '베티즈(Bêtise)'의 가장 구체적인 증상이자, 헤세가 경계한 부르주아적 안락함의 도구가 바로 '클리셰(Cliché)'이다. 본래 인쇄판을 뜻하던 이 단어는 현대에 이르러 사유 없이 반복되는 상투적인 문구와 고정관념을 의미하게 되었다. 클리셰는 단순히 언어의 습관을 넘어, 인간이 자기 삶의 주권과 생명력을 포기하고 시스템의 부품으로 안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플로베르에게 클리셰는 사유의 게으름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복잡한 감정과 진실을 마주하기보다, 이미 세상에 나도는 '그럴싸한 말'들을 빌려와 쓰는 행태를 혐오했다. 그가 보기에 클리셰를 읊조리는 순간, 인간은 주체적인 사유자가 아니라 언어라는 기계가 찍어내는 복제품으로 전락한다. 이는 정신적 수동성이 극에 달한 상태이며, 타인의 언어로 자신을 포장하는 '베티즈'의 전형이다. 플로베르가 『통념 사전』을 통해 조롱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생각의 박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