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널 여름 내내 사랑할 거야 by 츠베타예바
난 널 여름 내내 사랑할 거야
“난 널 여름 내내 사랑할 거야”라는 말은 “평생 사랑할 거야”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무엇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진다.
ㅡ마리나 츠베타예바
위 인용구의 출처는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자필 수첩(Notebooks/Записные книжки)'에 기록된 짧은 단상에서 비롯되었다. 즉 이 문장은 시의 한 구절이 아니라, 1925년 12월 30일 그녀가 남긴 일종의 '메모' 또는 '설문 답변' 형식의 글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Я буду любить тебя всё лето” — это звучит куда убедительней, чем “всю жизнь” и — главное — куда дольше!
마리나 츠베타예바는 러시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20세기 초반 러시아에서는 소설(小說)보다 시(詩)가 더 유명했는데, 가장 유명한 시인 중 한 명이 츠베타예바였다. 인생에 대한 고찰,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 인간성에 대한 고민 등은 이 작가가 주로 다루는 주제들이다. 유명한 작곡가들은 츠베타예바가 쓴 시에 음악을 얹어 러시아 국민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국민 노래를 만들었다. 러시아 역사상 비극의 정점에 도달했던 시기에 여성 시인으로 활동했던 점이 눈에 띄는 작가 이력이다.
러시아 문학에서 시 장르는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앞서 간략히 설명했듯이, 보통 러시아 문학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말까지 두 번째는 20세기 초반이다. 전자는 ‘황금시대’, 후자는 ‘은의 시대’로 불린다. 분류 기준은 당시 유행했던 문학 장르다. ‘황금시대’는 해외에서도 이름을 날린 러시아 작가들이 소설 작품을 많이 냈던 시기다.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이 대표적이다. 다른 시대에 비해 유명한 작가가 많고 그만큼 작품도 많아서 ‘황금시대’라는 명칭이 붙었다.
‘은의 시대’는 소설보다 시가 더 유행한 시기다. 러시아어로 쓰인 시는 언어의 특징 때문에 노래처럼 들린다. 한국어에는 없는 러시아어 특유의 강세, 운율과 라임 때문에 시를 낭독하면 자연스럽게 노래처럼 시를 ‘부르게’ 된다. 물론 이런 이유로 시를 쓸 때도 강세와 음절 수를 고려하고 리듬과 라임을 맞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러시아 독자들은 시를 더 선호한다.
러시아 작가들은 강한 감정이나 인상을 주고 싶을 때 소설보다 시를 선택해 왔다. 20세기 초반은 더욱 그랬다. 사회주의 구호를 간단명료하면서도 감정 넘치게 전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지지하는 작가들은 시를 통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다. 소설은 작가로서 매력적이지 않은 장르였다. 집필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독자 입장에서도 소설은 시에 비해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자해야 하고 책 읽기에 적합한 환경도 필요하다.
반면에 시 한 편을 쓰는 일은 소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덜 들고, 읽는 시간도 1분을 넘기지 않는다. 시위대 앞 연단에 올라 구호처럼 외치거나 선전용 전단지 앞면에 쓰기에 딱 적합한 분량이었다. 감정적이고 표현이 거칠 수도 있다. 감정적이고 표현이 거칠 수도 있었던 시는, 예전에도 인기였지만, 정세가 급변하던 러시아의 20세기 초반에는 소설보다 더 중요한 장르였다. 이런 역사적인 이유도 있지만 ‘감성의 왕’인 시는 사람의 감정을 묘사하는 영역에선 항상 산문보다 더 사랑받았다. 러시아 문학을 읽어보면 사랑이나 미련, 향수 등과 같은 강한 감정을 다루는 작품은 소설보다 시가 더 많고 그만큼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츠베타예바는 사랑과 인생을 주제로 한 시를 주로 창작했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그녀의 시는 독자들의 감정을 깊이 사로잡으며, 문학적 아름다움을 한층 더 높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녀의 시를 바탕으로 만든 노래는 오늘날 러시아에서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격동기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는 러시아인들의 내면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힘을 가졌다. 또한, 츠베타예바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거의 최초의 여성 시인이었다. 이는 그녀를 더욱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으며, 러시아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했다.
이 장에서 소개한 츠베타예바의 문장을 두고 러시아에서는 사랑에 대한 지적이고 신선한 고찰이라고 평가한다. 츠베타예바는 사랑도 다른 감정처럼 유효 기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듯이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널 영원히 사랑할 거야”라는 말은 거짓말과 다름없다. “평생”, “영원히”라는 표현은 자제하는 게 더 솔직한 태도다. 그보다는 “여름 내내 사랑할 거야”가 솔직한 마음이고, 실제로도 지킬 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평생”보다 “여름 내내”가 더 “길다”라고 한 것은 러시아의 문화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다.
러시아에서는 “여름은 곧 작은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뉘앙스를 알게 되면 러시아 문화의 또 다른 매력인 고맥락성(高脈絡性)¹을 엿볼 수 있다. 러시아 문화에서는 감정을 하루 중 특정 시간대나 계절에 비유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인생의 말기를 가을에 비유하거나, 어두운 기분을 밤과 같다고 표현한다. 첫사랑은 꽃이 피는 따스한 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츠베타예바 역시 마찬가지다. 1년 중 가장 따뜻하고 느낌이 좋은 여름을 사랑에 비유하면서 솔직한 감정으로 아름다운 시를 완성했다.
[註1] 고맥락성(High-Context)이란 의사소통을 할 때 말이나 글 자체의 내용보다 그것이 오가는 상황, 분위기, 인간관계, 표정 등 '맥락(Context)'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성질을 뜻한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이 제시한 개념으로, 한국을 포함한 동양권 문화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여름은 러시아 문화에서는 항상 긍정적이고 따뜻한 이미지를 가지는 계절이다. 러시아의 여름은 그렇게 길지 않고, 2~3개월이 채 되지 않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날씨가 따뜻하고 외부 활동이 쉬운 데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 계절은 항상 작가나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다. 기후가 이렇다 보니 러시아인들의 생활 패턴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때는 1년 중 가장 긴 여름 방학이고, 어른들도 여름 휴가철을 기대한다. 1년 중 가장 행복한 시기다. 날씨가 탐탁지 않고, 생활도 지겹고, 일과 공부가 많은 다른 계절보다, 자유롭고 여유가 넘치며 어릴 때부터 좋은 추억만 남기는 여름은 또 하나의 ‘작은 인생’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인식하는 여름은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후덥지근하고 습기가 높으며 매미 소리가 시끄러운 한국의 여름은 야외 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계절이 아니다. 점점 덥고 습해지는 한국의 여름은 즐거움과 열정보다는 불쾌감과 피로감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러시아의 여름은 이러한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러시아인들에게 여름은 항상 따스하고 즐겁고 여유로우며, 일 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물론 러시아의 땅덩어리가 워낙 크기 때문에 지역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내가 나고 자란 블라디보스토크의 여름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모스크바가 위치한 러시아 중부 기준으로 보면 여름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아름답고, 생활하기에 편한 계절이다. 열대야 현상도 없고, 낮에도 활동하기 딱 좋은 25~27도 정도다. 자유롭게 캠핑을 가고, 숲 산책도 가능하며, 마음대로 실외 활동을 하기 딱 좋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들에게 제주도가 있다면 러시아인들에게는 소치(Sochi)가 있다. 아름다운 흑해 해안에 위치한 이 도시와 주변 지역은 항상 따뜻하고 평온한 기후를 자랑한다. 러시아에서는 가장 유명한 휴양지다.
현대 러시아인들의 ‘여름휴가’라는 개념은 소련 시절에 있었던 ‘휴가 배정제’에서 기인한다. 소련에서 휴가는 개인이 직접 계획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근로자 복지 시스템’이었다. 각 지역에 있는 회사의 모든 인사과에서는 직원들에게 12월부터 대략 한 달간 다음 해 휴가 계획을 받는다. 티오(TO)가 채워지면 일정표를 짠다. 누가 언제 며칠 동안 어디로 간다는 식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여름에 휴가를 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7~8월의 휴가 일정표, 그것도 휴양지인 크림반도나 소치 같은 곳을 갈 수 있는 휴가 일정표는 경쟁이 치열하다. 휴가가 시기는 물론 휴가지도 국가에서 정해 주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인맥이 없거나 일을 잘 못하는 직원들은 3~4월에 휴가를 배정받고, 업무를 잘하거나 ‘지인’이 많은 사람들은 가장 인기가 높은 7~8월에 휴가를 간다. 한국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계획 경제의 일면이다.
이렇다 보니 여름휴가는 더욱 소중해지고 가치가 올라갔다. 내 마음대로 휴가 시간과 장소를 고르지 못하니 잘 풀려서 여름에 소치로 휴가를 가게 되면 그 휴가는 그야말로 ‘작은 인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소련 사람들이 여름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좋은 계절로 인식하게 된 배경이다. 물론 지금 러시아는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기에 이런 시스템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여름의 소중함’이 남아 있다. 이런 배경을 알면 츠베타예바의 저 문장을 러시아 사람들이 왜 공감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름과 사랑은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단어다. 츠베타예바는 이것을 러시아인들이라면 공감하는 방식으로 한 문장에 엮어 냈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지만, 가장 빛나고 소중한 계절인 여름에 하는 사랑만큼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여름이 끝나는 것처럼 언젠가 사랑도 끝날지 모른다. 하지만 후회하거나 그리워할 필요는 없다. 내년에는 또 내년의 여름이 찾아올 테니까. -벨랴코프 일리야의 『러시아의 문장들』中.
[P.S.] 에피소드 하나
인공지능 AI 씨에게 "난 널 여름 내내 사랑할 거야"라는 글귀를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시(詩) 한 편이 주르륵 나온다. 러시아의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시(Poem)'라면서 말이다. 딱 속아 넘어가기 쉽다. 나도 그럴 뻔했으니까. 그녀의 시집을 뒤져도 이런 내용의 시는 없었다. 묻고 다시 물어서 이 문장은 츠베타예바의 시가 아니고 누군가, 그녀가 남긴 산문이나 편지 속의 문장들을 바탕으로 만든 ‘지은이 불명’의 글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그래도 시가 그럴듯해서 올린다.
난 널 여름 내내 사랑할 거야
지은이 불명
난 널 여름 내내 사랑할 거야.
그건 겨울 내내 사랑한다는 말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지.
'영원히'라는 말은 끔찍해.
그건 너무 길어서
어차피 지키지 못할 약속처럼 들리거든.
하지만 '여름 내내'라고 한다면,
그건 우리가 그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서로에게 얼마나 충실할 수 있을지
보여주는 약속이야.
가을이 오면 우리가 어떻게 될지 나도 몰라.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불면,
우리의 마음도 그 잎새들처럼 흩어질지 모르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뜨거운 공기와 매미 소리 속에서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그러니 나에게 영원을 맹세하지 마.
대신 이 짧은 여름이 다 가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나를 뜨겁게 사랑해 줘.
책 『러시아의 문장들』은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으로 귀화한 ‘대한러시아인’ 벨랴코프 일리야의 신간이다. 한국인에게 러시아를 친숙하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책으로 화제가 된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이후 두 번째 책이다.
『러시아의 문장들』은 고전부터 현대 문학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26인의 대표적인 문장 36개를 뽑아 러시아의 문화와 정서를 한국인들에게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다.
러시아인은 러시아 문학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크다. 유명 문학 작품의 문장이 각종 미디어는 물론, 일상의 대화에서도 인용되는 일이 흔하다. 그만큼 러시아인들은 문학과 친숙하며 문학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한다. 따라서 러시아 문학을 이해하는 것은 러시아인과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반대로 러시아 문화를 이해하면 러시아 문학이 더 친숙해진다. 러시아 문학이 어려운 이유는 한국인에게 낯선 이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러시아인 특유의 사고방식과 정서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 여성이 보수적인 사회에서 겪는 사회적 억압이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인의 눈에는 사회에 도전한 인간이 받는 심판으로 읽힌다. 독자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기에 명작이지만, 러시아인의 정서를 모르면 그만큼 놓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일리야에 따르면, 러시아는 기묘하면서도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싹틔운 러시아 문화는 러시아 문학을 불멸로 이끌었다. 『러시아의 문장들』은 문학을 통해 우리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러시아 문화로 창을 내어 들여다보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