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딸] 로사와 돌하르방

1976년 여름, 제주시 삼성혈

by 김양훈

이 돌하르방(翁仲石)은 조선 영조 30년인 1754년 경, 당시 김몽규(金夢逵) 목사가 제주읍성의 동·서·남문 앞에 세웠던 것 중 하나로 추정된다. 원래는 삼성혈이 아닌 제주읍성의 성문 앞에 세워져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성벽이 허물어지고, 현재의 삼성혈 입구와 관덕정 등 여러 곳으로 옮겨졌다.


​제주를 표현하는 가장 강렬한 시각적 상징은 단연 돌하르방이다. 구멍 숭숭 뚫린 검은 현무암으로 빚어진 이 석상은 특유의 해학적인 표정과 묵직한 존재감으로 섬 곳곳을 지키고 있다. 특히 제주시 삼성혈 입구에 세워진 이 돌하르방은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변치 않는 위엄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그 기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돌 하르방'이라 부르는 이 석상은 문헌상에는 '옹중석(翁仲石)'이라 기록되어 있다. ​옹중석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고대 중국 진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적인 장수 '완옹중(阮翁仲)'은 체격이 워낙 거대하고 용맹하여 북방 민족들이 그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했다. 진시황은 그가 죽자 그의 모습을 본뜬 거대한 동상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했는데, 이후 사람들은 성벽이나 무덤 앞을 지키는 이 석상을 통칭하여 '옹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용어가 한반도를 거쳐 제주에 유입되면서, 조선 시대 제주읍성의 동·서·남문을 지키던 수문장 석상에 '옹중석'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란 설이 있다.

​하지만 돌하르방의 형태적 뿌리를 들여다보면 옹중석이라는 이름 하나로만 설명하기엔 복잡하고 흥미로운 역사가 얽혀 있다. 학계에서는 그 기원을 두고 크게 세 가지의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 ​첫째는 북방 기원설이다. 제주가 몽골(원나라)의 직속령이었던 시기에 그들의 석인상 문화인 '훈촐로오'가 전래되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돌하르방이 쓰고 있는 벙거지 모양의 모자와 가슴 높이에서 손을 위아래로 엇갈려 놓은 자세는 중앙아시아와 몽골 초원의 석인상들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 ​둘째는 남방 기원설이다. 해류를 타고 흐르던 동남아시아의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석상 문화가 제주에 닿았다는 설이다. 돌하르방의 부리부리한 눈과 툭 튀어나온 코, 그리고 전체적인 조형미가 인도네시아 발리나 폴네시아 계열의 조각상들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 ​마지막으로는 자생설 및 육지 전래설이다. 한반도 육지의 장승이나 '벅수' 문화가 제주에 들어와, 섬의 주재료인 검은 현무암과 만나 제주의 토착색에 맞게 독창적으로 변모했다는 견해다. 잡귀를 쫓고 성 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돌하르방의 기능적 측면은 장승과 매우 닮아 있다.


​이처럼 돌하르방은 어느 한 곳에서 툭 떨어진 유물이 아니다. 대륙의 '옹중' 전통, 북방의 석인상, 남방의 해양 문화, 그리고 육지의 장승 문화가 제주의 검은 돌 위에서 비빔밥처럼 버무려져 탄생한 '문화적 융합의 결정체'라 볼 수 있다.

​1971년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아이들이 부르던 정겨운 이름인 '돌하르방'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 '옹중석'보단 '돌 할아버지', 돌하르방이 한결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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