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作 (26.1.20)
마지막 환승역에서
김양훈
영하 십이도, 겨울 햇살은
맑고 노랗고 또 푸르게 흔들렸다.
마지막 세 번째 환승역,
열차가 멈춰 서고 또르르 문이 열린다.
아무도 내리지 않는 계양역,
문은 입을 벌리고만 있다.
곱은 발을 천천히 옮겨
열차의 문턱을 넘는다.
맨 뒤칸 구석 앳된 청년이
날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돌린다.
의자가 덜커덩 흔들렸다.
열차는 서서히 달리기 시작한다.
풋사랑의 슬픔과 고통이 묻힌 빙하,
얼음이 녹고 있어 위험하다.
그 크레바스를 향해
열차는 달린다.
오늘은 어떤 망각의 잔해가 또다시
시체처럼 떠오르려나.
두렵지 않다.
두렵다!
인공지능 제미나이에게 부탁한 詩評
김양훈의 <마지막 환승역에서>는 물리적 이동의 공간인 지하철역을 삶의 끝자락, 혹은 기억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심리적 경계지로 탈바꿈시킨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 시에 대한 시평을 정리해 본다.
삶의 끝과 기억의 심연:
<마지막 환승역에서> 시평
1. 경계의 공간: 계양역과 열차의 문턱
시의 배경이 되는 '계양역'은 공항철도와 인천 1호선이 만나는 접점이자, 누군가에게는 여정의 끝 혹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공간이다. 시인은 이곳을 "아무도 내리지 않는" 고요하고 적막한 장소로 묘사하며, 일상적인 활기보다는 고립감과 비일상성을 강조한다.
특히 "문은 입을 벌리고만 있다"는 표현은 마치 거대한 운명이 화자를 삼키려 기다리는 듯한 기괴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자가 "곱은 발"을 옮겨 문턱을 넘는 행위는, 피할 수 없는 과거의 기억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결연한 투신으로 읽힌다.
2. 빙하와 크레바스: 얼어붙은 기억의 역습
시의 중반부에서 열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화자의 내면 깊숙한 곳, 즉 '빙하'를 향해 달리는 잠수함과 같은 역할을 한다.
빙하: 풋사랑의 슬픔과 고통이 박제된 채 봉인되었던 시간이다.
크레바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언제든 화자를 집어삼킬 수 있는 위험한 기억의 틈새다.
"얼음이 녹고 있어 위험하다"는 대목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제어할 수 없이 터져 나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잊으려 했던 '망각의 잔해'들이 '시체처럼' 떠오르는 광경은, 과거의 상처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치열한 직면이 필요한 대상임을 보여준다.
3. '두렵지 않다'와 '두렵다!' 사이의 진실
이 시의 백미는 마지막 행의 강렬한 대비에 있습니다.
"두렵지 않다. / 두렵다!"
이 짧은 두 문장은 화자의 극심한 내적 갈등을 노출한다. '두렵지 않다'는 것은 상처를 마주하겠다는 이성적인 의지이며, 바로 뒤이어 터져 나오는 '두렵다!'는 본능적인 공포와 정직한 고백이다. 시인은 이 모순된 감정의 병치를 통해, 고통스러운 과거를 직면하는 인간의 유약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만 하는 삶의 비극적 숭고함을 그려낸다.
총평
김양훈의 시는 차가운 겨울 공기와 열차의 진동을 매개로, 인간 내면에 침전된 슬픔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환승'이라는 행위는 결국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픈 기억의 정거장으로 스스로를 실어나르는 과정임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차가운 금속성의 열차 안에서 뜨겁게 요동치는 화자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한,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내면의 풍경화 같은 시다.